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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Mar 17. 2023

내가 결국 다시 서울로 이사하는 이유

있는 힘껏 불평해 본다




  이틀 후 나는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한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온 지 5년 만의 귀환이다. 꽉 막힌 도로,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 각박한 서울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은 한적한 경기도로 내려갔었다. 지하철로 겨우 서울이 발끝에 닿는 경기도에 살면서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지방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깊이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내 몸뚱이가 “이럴 거면 날 포기해” 하고 자주 고장 나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높여보려고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체력 만들기는 프리랜서인 나에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형’ 같은 것이었다.









  프리랜서 뮤지션인 나에게 일감이 많은 곳은 당연히 서울이었다. 대부분의 합주는 서울 강의 북쪽에서 이루어졌고 공연도 강의 북쪽인 홍대, 이태원, 종로, 혜화, 이런 곳이 주를 이루었다. 차라리 내가 일산이나 파주 쪽에 살았으면 좀 가까웠을 텐데,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용인이다. 분당과 맞닿은 지역이다. 이렇다 보니 강북은 다녀오면 하루의 체력을 다 써버리는 아니, 이틀 치 체력정도를 끌어 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이사를 결심한 다른 이유는 내가 문화생활을 ‘멀다’는 이유로 자꾸 포기해서였다. 곡을 쓰고, 편곡하고, 즉흥연주를 하는 일들은 모두 내 안에서 밖으로 표출해야 하는 것들이기에 나에게도 새로운 문화적 자극이 필요하다. 재즈공연을 본다거나 좋아하는 연주자의 음악을 듣거나 뮤지컬을 보는 등 음악적인 것도 좋은 자극이지만 때로 독립서점에 가거나, 미술 전시나 사진전시를 보는 것도 누군가의 생각과 시선을 알게 되는 좋은 자극이 된다.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선 결국 서울로 와야 한다. 서울에는 소비할 수 있는 문화가 넘쳐난다. 그러나 서울 이외의 지역에는 문화적 기반이 너무 얕다는 것이 문제이다. 서울에는 사람만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모여있다.





문화시설 갯수: 수도권 vs 지방전체






  문화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사람이 많은 곳에 소비할 문화가 많은 게 당연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 저변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 과 “지방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다르게 평가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문화는 정답이랄 것이 없다. 법이나 도덕적인 선을 넘지 않는 이상, 결국은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좋다, 나쁘다가 결정이 된다. 그런 데다가 “서울”과 “지방”으로 까지 선을 그어버린다면 서울에서 활동하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비한 문화를 지역 밖으로 더 잘 성장하도록 지역에서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며, 서울에서의 다양한 문화도 여러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경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도 꼭 서울에 살아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이사가 더욱 간절해진 이유는 이동거리 내내 서있어야 했기 때문도 있다. 최근 1년 새에 내가 타는 지하철에 이용객이 너무 많아져서 이전에는 80%의 확률로 앉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8%의 확률로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도 그랬다. 그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졌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모든 경기도민들이 존경스럽고 안쓰럽다.



앉고 싶다 무조건





  꽤 오래전에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서울은 왜 출퇴근 길이 이토록 막히는가에 대해 설명했던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출퇴근길 혼잡이 없는 나라들은 건물의 1층으로 출근하고 위층으로 퇴근하는 방식의 삶을 산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상복합 같은 건물에서 저층부는 일을 하는 가게나 업무공간이 되고, 고층부는 사람이 사는 거주용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렇게 한 건물 안에서 혹은 옆 건물이나 옆 블록 정도의 가까운 거리로 출퇴근을 한다면, 사람으로 꽉 막히지도 않고 즐거운 길이 될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거주지역과 상업지역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동거리 자체를 줄여버리는 것, 그것은 아주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대한민국에서는 꿈도 못 꿀 테지만 참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로 다시 이사하면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지방의 한적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걸어서 한강에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집을 알아보았다. 게다가 집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약간 더 행복해졌다. 창문을 열어도 바로 옆건물이 보이는 곳이 아니라 조금은 탁 트인 곳으로 집을 찾았다. 서울로 다시 집을 구하려니 힘든 것도 많았다. 멀리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집 값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전셋값은 지금 사는 곳의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출처: 치즈덕






  빌라왕이니, 전세사기니 하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런 시기에 이사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래서 열심히 알아보면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이사하는데 무슨 돈이 그리 많이 드는지. 집에 정리할 물건은 또 왜 이리 많은지. 휴, 더 좋은 데로 이사를 가는 데도 이 놈의 머릿속은 불평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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