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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K Sep 13. 2024

X세대 혈액형, MZ세대 MBTI,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의 성격 분류 문화

너 혈액형이 뭐야? 아 A형! 나랑은 정말 잘 맞겠네, 아니면 난 A형 하고는 딱 반대던데. X세대라면 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요즘 한국 TV를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MBTI가 뭐세요? 아 T구나. 그럼 딱 이렇겠네요 아님 저렇겠네요. 난 T랑은 정말 뭘 해도 안되던데.


20여 년 전에 이민을 와서 현재까지 북미에서 살고 있다. 북미 문화의 사람들과 혈액형이 아님 MBTI가 어때서 나랑 맞다거나 맞지 않다거나 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본인의 혈액형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혈액형이나 MBTI는 마치 사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열쇠처럼 여겨진다. 간단하고 편리하게 사람을 분류하고, 그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는 방식은 한국에 사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북미에서 경험한 개인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와 비교했을 때, 이러한 단순한 분류법이 사람들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편견을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의문해 본다.


분류의 편리함과 그 함정

한국에서 혈액형이나 MBTI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기 좋은 주제인 것 같다. 처음에 할 말이 찾기 쉽지 않을 때 혈액형을 물어보고, 쉽게 "넌 B형이니까 자유분방하겠네요", "ENFP라면 외향적인 성격이니 이런 일을 잘하겠네" 같은 식으로 상대방을 규정하고, 그 틀에 맞추어 이해하려는 경향. 이로 인해 간단히 사람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지만, 이는 큰 함정일 것이다.

내가 북미에서 느낀 것은, 사람을 단순히 분류하려는 시도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카테고리로 묶기보다, 각자의 배경, 경험, 신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바로 사회가 개인의 다양성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가치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물론, 북미에도 분류나 편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을 유형화하는 대신, 그 사람의 특성을 열어두고 서로 배워가며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고유한 특성은 고정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혈액형이나 MBTI 같은 분류에 의존하는 것은 사람을 쉽게 이해하려는 욕구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빨리 이해해서 무언가를 빨리 같이해야 한다는 냄비근성(?) 이랄까?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북미에서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색깔, 태어난 곳, MBTI와 같은 단순한 분류가 아닌 대화와 행동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가진 유연성과 변화 가능성을 존중하려 한다. 북미에서 이분법에 대한 위험성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북미의 회사 안에서 누군가가 내성적이거나 외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특정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바로 인사부로 불려 올라갈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놓인 상황과 환경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는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혈액형이나 현재 티브이에서 많이 보아지는 MBTI로 성격을 규정하던 경험과 크게 달랐다. 그 당시에는 나 자신조차도 "내 성격은 이래서 이런 행동을 한다"라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북미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스스로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변화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자기 한정과 자기실현적 예언의 위험성

한국에서 내가 경험한 성격 분류는 때때로 사람들을 스스로 한정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내성적이니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거나, "나는 B형이니까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할 거야"라는 식의 자기 한정적 사고는 사람의 성장을 막을 수밖에 없다. 마치 자신이 규정된 틀 안에서만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 틀을 벗어나면 내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실수도 범하는 것 같다. 다른 이들도 네가 아닌 것 같다라며 변화를 칭찬하고 인정하기보단 외부인으로 취급하는 듯한 말투.

반면, 내가 북미에서 배운 것은 사람의 성격은 하나의 고정된 틀이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뭔가 다른 모습으로 말하고 행동했다면 멋지다고 이야기해 주는 문화. 자기 자신을 새로운 도전 속에서 시험해 보고,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를 장려하는 문화를 추구한다. 내가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때,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관계 속에서의 다양성 존중

한국에서 성격 유형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때로는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특정 성격 유형으로 정의하고 그에 맞추어 기대를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때 실망이 생기거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혈액형 O형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예민한 거지?"라는 식의 생각은 전혀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발상이다.

북미에서는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을 특정 틀에 맞추기보다는 그 사람의 개별적인 특성과 경험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더 크다. 계속되는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려는. 바로 많은 이들이 실천하려는 오픈마인드라는 개념이다. 그러한 노력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더 유연하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상대방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편견을 버리는 태도는 건강한 관계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혈액형이나 MBTI 같은 분류법은 사람을 쉽게 이해하는 도구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진정한 다양성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을 키우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북미에서 내가 배운 것은 사람을 단순한 틀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개별적인 경험과 변화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는 사람을 단순히 성격 유형으로 규정짓기보다는,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다양성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성격은 복잡하고,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과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한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깊이 있고 풍부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개인의 가능성도 더 넓게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성격 유형으로 구분하는 대신,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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