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푹자는게소원 Jul 14. 2024

외래가 일상이 되기까지

[에드하임체스터병 투병기]

내가 다녔던 건국대학교병원은 도어 투 도어 걸으면 40분, 지하철로 20분 내로 도착이 가능하다

예측이 어려운 부작용을 대비하는데 있어서 집과 병원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좋다는 점을 깨닳았다 


자가면역질환자인 나는 빠르면 한 달에 한 번씩, 길면 서너달에 한번 씩 외래 진료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확실히 병원이 가깝다면 연차를 한 번 쓸거 반차를 두 번 써서 다녀올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장기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직장인에게 연차는 생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주요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는 혈액 수치를 효과적으로 회복시켜주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나의 경우도 14알 → 10알 → 5알 → 2알 점점 줄여나가는 치료를 받았었다


나 역시 문페이스(얼굴이 달덩이처럼 붓는 부작용)를 피할 수 없었는데 마른 몸매인데 얼굴만 점점 부풀었기때문에 어딜가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코로나 시국인 덕분에 마스크를 매일 매일 써서 얼굴을 커버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의식 되는건 많이 불편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병에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었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솔직히 그냥 저냥 살만했다 적응을 하고 나니 일반인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살게 되더라


그러다 코로나가 슬슬 끝물이던 2022년 겨울에 여전히 대학병원은 보수적으로 마스크 의무화를 유지했었고 입원을 하려면 코로나 검사가 필수였던 시기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저녁부터 시작된 코피가 30분 동안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 30분 정도면 멈췄는데 그때 당시는 도무지 멈출 기미가 안보였다 그래서 나는 응급실을 생각했다 적어도 건국대학교 응급실에서는 나를 당연히 받아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피가 멈추지 않는 코를 부여잡고 긴급하게 택시를 잡아 응급실로 향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나를 받아 주지 않았다 입구에 당직 서던 의사가 무작정 내보내는 것이었다 아직 코로나 시국이라서 더 이상 환자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입뺀을 당해 거의 쫓겨나다시피 응급실 밖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서러운 감정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다른 응급센터를 가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시국에 아직까지 보수적으로 응대하는 상황이고, 응급실은 포화 상태였던것이다 결론은 나는 포기하고 집까지 무작정 걸어왔다 이 코피가 제발 멈추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걸어오는 도중에 다행히 코피가 자연스럽게 멈췄다


이후 해당 에피소드를 전담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응급실로 갈 수 있는데 왜 안갔냐고 말씀을 해주셨다 같은 병원임에도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 응급실과 당연히 갈 수 있었다는 진료과.. 나는 무엇을 믿어야 했던걸까? (그냥 그렇다고)


이로써 인간이 코피를 1시간 가량 흘려도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점내가 생각하는 응급 상황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 두가지를 이해하게 됐고, 그렇게 나의 병과 함께 하는 일상에 점점 융화되어 갔다.


[에드하임체스터병 투병기]

[에드하임체스터병 투병기

이전 05화 통풍 넌 또 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