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할 것 같은 걸 해낼 때의 기쁨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태어나서 가장 길게 달린 거리는 3km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새로 오신 체육선생님께서 애들 몇 명을 뽑아 육상부를 만드셨는데, 거기에 내가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몇 번의 강제 훈련(?) 끝에 장거리 선수로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게 3km였던 걸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어린 시절의 나는 힘든 것도 잘 참아내고 욕심도 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ㅎㅎ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 꾸준히 운동도 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 달리기를 해보니, 고작 1km도 쉬지 않고 달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러닝을 꾸준히 하게 되면서 연속 1km 달리기가 가능해지고, 3km, 5km, 10km를 거쳐 하프코스까지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하프코스를 달린다는 것도 처음엔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거리였다. 남편은 도전 정신이 워낙 넘치는 사람이라 빨리 러닝 거리를 늘려갔다. 그리하여 나보다 먼저 대회에서 하프코스에 출전하고, 1년 만에 풀코스에 도전하기도 했다. 나는 사실 처음엔 그렇게 긴 거리까지 달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살이 찌지 않게 관리하고 하체에 근력을 기르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러닝 목표는 최대 10km를 달리는 것이었고, 대회에서도 10km를 계속 나가서 그 기록을 점점 당기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의 같이 하자는 부추김(?)과 처음에 힘들어 죽을 것 같던 거리도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 힘듦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올해는 풀코스 신청을 해 버렸다. 일단 그냥 중간에 걷더라도 경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이제 두 달 정도 남은 시점이라, 남편은 30km 정도까지는 미리 달려봐야 한다며, 주말에 같이 해보자고 했다. 진작에 한 번 해봤어야 했는데 풀코스 신청 이후로는 너무 더운 여름날이 계속되어 감히 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여름에는 해를 피해 숲길로 20km 정도 달리는 것도 몸이 쳐지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라 더위도 견딜만하겠지 싶었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토요일 아침, 둘이서 긴 여정을 떠났다.
할 수 있다면 새벽 5시쯤에 시작해야 해를 피하기 더 좋았을 텐데, 우린 그러지는 못하고 7시에 밖으로 나갔다. 우리 동네에서 출발해 해변도로를 따라 2개의 해수욕장을 지나 '동백섬'이라는 곳을 찍고 다시 돌아오면 얼추 30km 정도 되는 코스였다. 6분에서 6분 30초 페이스 정도로 뛰면서, 때로는 우리 둘이서만 때로는 많은 관광객들을 지나며 달려갔다. 그래도 그동안 훈련한 것이 있는데, 일단 목적지까지 갈 때까지는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강해지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더워졌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를 뛰는 거리가 많아지면서, 점점 갈증이 나고 지쳐가지 시작했다. 그래도 달리기 짬빠(?)가 있는데 동백섬까지는 중간에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청사포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가는 코스에서 우리처럼 땡볕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만났다. 덕분에 '이 날씨에 우리만 미친 사람처럼 뛰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 힘을 내어 달리게 되었던 것 같다.
동백섬에 도착하니 약 16km 정도.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벌컥벌컥 수분을 섭취하고, 얼음을 씹어먹었다. 그러니 좀 살 것 같았다. 더 쉬고 싶었지만 길게 앉아 있으면 퍼질 것 같아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에겐 온 만큼 다시 돌아가야 할 거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수분도 섭취하고 좀 쉬어서 힘이 나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힘들어졌다. 다시 더워졌고 다시 다리가 무거워졌고, 남은 거리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20km 이후로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달리고 있는 도중에 정신이 약간 어디로 나갔다 들어왔던 것이다. 다리와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잠깐 졸다가 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은 그렇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갈증 때문에 25km쯤 되었을 때 다시 편의점에 들렀다. 땀을 많이 흘린 만큼 몸이 계속해서 수분 섭취를 요구하고 있었다. 마셔도 마셔도 밑 빠진 독처럼 자꾸만 목이 말랐다.
그 시점에서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더운 날씨에 할 만큼 했으니 그냥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까?'
그런데 나는 이렇게 참고 달려온 25km가 너무 아까웠다. 나머지 5km를 이참에 꼭 채우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함께 발을 내디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거니 받거니 마셔가며, 뛰었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하며 끝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한 2km를 남기고서는 길가에 있던 정자에서 누워 쉬기도 하고, 달달한 슬러시를 하나 더 사 먹기도 하면서 결국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획했던 30km를 채웠다. 그러고 집까지 도착하니 최종 35km였다.
너무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나의 최장거리 하프코스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았다. 그동안 성공 못 할 것 같아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뤄왔던 거리였는데, 내 생각보다 내 몸과 정신은 더 강해져있었나 보다. 아직 풀코스까지는 더 거리가 남아 있지만 이제 예전만큼 두렵지만은 않다. 나는 또 도전하고, 도전해서 끝내 해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