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냥냥별 May 11. 2024

눈물

네가 울면 나도 ...



눈물



꽁꽁 싸매도

꼭꼭 숨겨도

꾸역꾸역 삐져나와

두 눈 끝에 달랑달랑

    

엄마의 차가운 한 마디에

손 놓쳐 또르르 미끄러진다

    

따스한 엄마 두 손이 닿으면

사르르 사라져 어딜 갔나 했더니   

  

저기 벚꽃처럼 물든

엄마의 두 눈 끝에

또다시 매달려 달랑달랑






  사람의 흘리는 눈물의 양은(물론 개인의 성격이나 감성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어린아이 일 때 가장 많은 것 같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무터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갓난아기 때는 참 많이 울게 된다. 아직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나 요구를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축축해도, 엄마가 보고 싶어도 앙앙 울어댄다. 초보엄마는 그 울음의 이유를 빨리 알아내지 못해 당황하지만, 계속 경험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옹알이를 시작으로 어느 정도 말을 하게 되면, 엄마 아빠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의사 표현을 좀 더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고 콕 집어 말하면서 요구사항도 많아진다. 하지만 그 요구사항을 전부 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아니다, 안된다'라고 거절할 때도 있다. 그러면 이때 아이는 '눈물'이 무기가 된다. 마트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줄 때까지 울기, 친구가 갖고 노는 인형을 나에게 줄 때까지 울기, 내 말을 안 들어준 오빠를 엄마가 혼낼 때까지 우는 것이다. 이럴 때 당장 이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어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끝을 내면, 아이는 눈물이 무기로 잘 먹힌다고 생각하고 계속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울어도 소용없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면 아이는 점점 그 무기를 쓰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물론 부모가 그것을 전달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울고 떼쓰는 아이를 훈육하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를 위해서 꼭 필요한 단계이다.


  이렇게 크다 보면, 아이가 우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 유아기 때는 감정기복도 심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분노든 요구든 눈물로 발산이 되었지만, 이런저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아이도 자기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된다. 초등학생 정도 되면 작은 일에 눈물부터 보이는 건 아기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엄마 앞에서 울며 떼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것이 더 잘 먹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설득의 기술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또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그것을 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게 된다. 친구나 부모님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버리거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혹은 다른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기분을 바꿔보기도 한다. 이러면서 조금씩 커 가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이 많~~ 이 상했을 때는 눈물이 나오곤 한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아들은 이제 거의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지만, 딸은 어쩌다 한 번씩 보일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많이 속상한 마음을 엄마가 알아줬을 때이다. 처음엔 그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다가, 내가 그 이유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많이 속상했겠다고 다독거려 주면,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버릴 때가 있다. 이런 눈물은 한 번씩 필요한 것 같다. 꾹꾹 눌렀던 나쁜 기분이 눈물이 되어 밖으로 흘려버리고 나면 뭔가 정리된 것 같고 상쾌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엄마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꼈을 때이다. 그냥 매일 하는 잔소리는 아이들도 습관처럼 네네 하며 흘려버리곤 하지만, 좀 크게 잘못을 했을 때  즉, 선을 넘었을 때는 내 표정과 말투가 달라진다. 그러면 아이도 눈치를 채고 웃음기 빠진 얼굴로 듣고 있다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를 때가 있다. 그때 왜 우냐고 억울하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그리고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하는 아이를 안아주면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 같이 슬픈 영화를 봐도 나만 안 울 정도로  눈물이 메말랐던 내가, 이제는 아이가 우는 것만 봐도 아니 남의 아이의 재롱잔치 무대만 봐도 눈물이 난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참 많은 것을 바뀌게 하는 호칭인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역할, 혹은 상황에 따라 눈물 발생 시점이 변하기도 하고, 나이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아이 시절 그 많던 눈물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줄어들어  심하면 메말라버리기도 하지만, 더  나이를  먹고 늙어가다 보면 다시 눈물이  많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쨌든 눈물의 이유나 용도는 다 다르지만, 내 앞에서 흘리는 그 누군가의 눈물의 의미를 잘 알아차리는 센스를 기른다면, 눈물에 속는 사람도  눈물에 핀잔주는 사람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눈물을 너무 부끄러워하지도 말자. 때로는 억지로 감정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풀어놓았다가 다시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이전 12화 편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