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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별 Jun 13. 2024

사과

알지만 하기 힘든 말

 사과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면

내 마음속에 삐죽 솟은 미안함


한 시간 지나 요만큼

두 시간 지나 이만큼

쑥쑥 커져 이미 꽉 차 있지만  

   

밖으로 꺼내기가 너무 힘들어

가슴만 자꾸 답답해질 땐   

 

조용히 뒤로 가서는

가만히 안아 봅니다

말없이도 맞닿아 전해지도록




  누군가와 싸우거나 내가 잘못했을 때,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잘못을 인. 정. 한다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친구와 다투거나 부모님께 꾸중을 들으면서 감정이 격양되어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는, 나의 속상한 마음이 앞서 나의 잘못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져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도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 내가 조금만 참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볼걸, 이때 이런 말은 하지 않을걸... 등등 후회되는 부분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다음 단계로는 인정한 잘못을 상대방에게 말. 하. 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내 잘못을 알고 있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잘못을 뉘우치는지 미안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 역시 잘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사과무드를 만들면 서로 사과하면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단계가 참 힘들었다. 친구들이랑은 그다지 싸울 일도 없었고,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르겠는데, 가족들에게 유난히 어려웠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눈치 보지 않고 투정 부리고 짜증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내가 뭘 해도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특히 어머니께 미안하다고 말씀드리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머리로는 잘못한 걸 아는데 입으로 나오지가 않는 것이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 부분이 더욱 후회가 되더라.


  그래서 지금은 가족들에게 사과를 잘하는 편이다. 신혼시절 남편과 다툼이 있을 때, 남편의 잘못이 더 커 보여 끝까지 말을 안 하고 있어보기도 했는데, 어차피 같이 살 거면 빨리 푸는 게 내게도 편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화를 좀 가라앉히고 나서, '내가 이런 부분은 잘못했다, 그런데 너의 이런 부분에 화가 났으니 이제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이성적인 대화를 다시 시도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내가 먼저 삐지는 경우도 여전히 있긴 하다. 그런데 우리 남편도 10년의 경험으로 나를 다루는 기술이 터득이 된 건지, 이제 먼저 장난스럽게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미안하다고 인정하고 말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사과만 바래서는 안 된다. 부모의 고집 때문에 아이들이 속상해할 때도 있고, 뭔가 사실을 잘못 알고 혼을 낼 때도 있다. 그렇게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는 지체하지 않고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아까는 미안했다고 사과를 한다. 그러면 아이의 속상한 마음도 빨리 풀리게 된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우리 둘째의 영향이 컸다. 첫째는 나를 닮았는지 먼저 미안하단 말을 전혀 못 한다. 동생이랑 싸웠을 때도 내게 억지로 등 떠밀려서 겨우 할 뿐이다. 나에게 크게 혼날 만큼 잘못을 했을 때도, 내가 물어서 인정한다고 고개는 끄덕였지만 입 밖으로 '미안해요, 잘못했어요'라는 말은 나오지 않더라. 꼭 어릴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어린이집 시절에도, 욱하는 마음에 나에게 짜증을 내었다가도 잠시 뒤 나에게 와서 '엄마, 미안해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거나 내 옷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그러면 화가 안 풀릴 수가 없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꽁해있던 얼굴이 미안해졌다. 나도 사람인지라 아이를 훈육하고 나서도 기분이 빨리 풀리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게 표정이나 행동으로 다 드러나서 아이가 알아챈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렇게 사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예뻐서, 나도 고민하지 않고 먼저 사과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진짜 실감했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한다면, 나에 대한 실망도 틀어진 관계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부끄러워서, 혹은 지기 싫어서 망설이지 말고 내가 먼저 말해보자. 첫 한마디면 된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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