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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D-280, 최애를 보고 유럽여행을 결심하다

마흔 하나, 이뤄 놓은 건 없지만 열심히는 살았던 나의 돌파구 발견!

by 하담

화려한 싱글을 꿈꿨던 내 20대에 내가 그리던 40대의 모습은 없었다.


20대에 그릴 수 있었던 먼 미래는 30까지였고,

그 시절 내가 꿈꾸던 30대의 나는 커리어우먼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부와 명예, 아름다움을 가진 싱글이었다. 20년이 이렇게 빨리 지날지 꿈에도 몰랐던 나의 인생 계획은 이미 고갈된 지 오래였고,

10여 년 뒤를 계획하는 꿈 꾸던 소녀였던 나는 오늘 계획에도 허덕이는 마흔의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아서 내 한 몸 먹여 살리고, 남들에게 밥도, 선물도 사줄 수 있고, 내가 갖고 싶은 것도 대부분 살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인생을 함께하는 신랑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20대에 꿈꾸던 30대의 내 모습을 40대가 된 지금도 이루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불쑥불쑥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애써 그 씁쓸함을 저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꾹꾹 눌러버렸다.


그리고 열심히만 살았다.


최근 3년은 커리어의 영역을 넓히고 일이란 것의 범주를 넓히는 성장의 시기였으나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실제도 몸도 마음도 쉼이 절실하고 충전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2024년을 자체 안식년으로 정했다.


잠재적 실업자라며 프리랜서 방송작가 생활을 자조하던 나에게 안식년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백수의 삶을 살겠다는 것에 어느 정도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이 안식년이지 않나 싶었다.

주변에 안식년을 선언했고, 실제 하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리고 채움을 위한 계획을 했다.


우선 제일 먼저 계획한 것은 영어였다. 여느 한국인들이 그러하듯 나도 신년 계획으로 빠지지 않고 넣지만, 이내 포기하게 되는 바로 그것, 영어.

영어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깊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변명은 항상 같았다.


‘바쁘기 때문!’


이제 일을 완전히 쉴 예정이므로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는 댈 수 없을 테니, 안식년은 영어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신랑에게 영국 영어를 배우겠노라 선언했고, 신랑도 지지해 줬다. 우리는 같이 서점에 가서 영어 교재를 고르고 그도 모자라 나는 영어 학습지와 3개월만 하면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장답하는 온라인 영어 강좌까지 등록했다.


그리고 두 번째 계획은 웹소설과 작사가 과정의 강의를 듣고, 웹소설 작가와 작사가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17년 넘게 살았으니, 이 계획은 나의 능력을 토대로 커리어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고 과감하게 투자를 했다.


물론 모두 온라인으로.


그 외 에도 하루 1시간 책 읽기,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하기, 수요일 낮 공연 보기, 수요일엔 서울 탐방하기… 등등 그간 하고 싶었던 것들을 계획했다.


계획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왠지 허전했던 그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한편으론 ‘과연 이걸 다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것이 일을 멈추는 것에 대한 불안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으니까.

열심히 배우고 채워져 가는 나의 내면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다 잡았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웠다. 계획을 보고 또 봐도 뭔가를 더 넣을 수도 없었고,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빈 조각이 딱 맞춰지는 계기가 있었다.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늦덕앓이 중 보게 된 최애들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당시 나는 세븐틴을 덕질한 지 2년 차가 되어가고 있었다.

세븐틴은 13명의 멤버들의 관계성이 너무도 좋았고, 착했고, 예뻤고, 인성도 좋았고, 실력도 좋았고...

또 너무나 열심히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뭐라고 힘들다고 하는 것인가? 이렇게 잘나고 이쁜 이들도 이렇게 노력하는 데, 내가 뭐라고 노력하지 않는 것인가?'라며 나를 채찍질하고 유사 육아에 가까운 덕질을 하는 것이 나의 일상 중 힐링 타임이었다.


어쨋든 그렇게 덕질을 하던 세븐틴이 출연한 나나투어를 보며 저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여행의 로망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나의 20대에 꿈꾸던 30대의 모습 중 하나는, 내가 휴가 때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섹스 엔 더시티'드라마의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커피에 샌드위치를 먹고, 영화 ‘중경상림’의 배경지인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왕페이의 몽중인을 들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안타깝고 애처로운 내 첫사랑, 장국영이 가고자 했던 이과수 폭포 투어도 하고, 도쿄의 뒷골목에서 드라마 ‘심야식당’과 가장 닮은 ‘심야식당’을 찾아 야식을 먹고, 언제가 읽었던 튀르키예 여행기처럼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난 내 밥벌이에 허덕이느라 여행은 고사하고 휴일도 챙기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다가 마흔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 투어를 끝내고 급작스럽게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 여행자가 된 세븐틴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 휴가 다운 휴가도 한 번을 못 갔잖아. 해외여행은 계속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잖아. 올해는 나의 안식년이잖아.’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정당성을 찾고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17년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을 했고, 아니 일만 했고 최근 3년은 제작사 대표도 맡아 자영업자의 노고까지 경험하며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까지 탈탈 털린 상태로 2024년을 안신년으로 선언한 터였다.


잠깐,

이렇게 쓰다 보니 나의 삶이 되게 억울한 것 같은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일상의 다른 재미들도 있었기에 세계 여행은 자연스럽게 내 인생 계획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게 된 것임을 밝혀야겠다.

나는 화려한 싱글은 아니었으나 안정적인 더블이 되었고, 가장 예쁠 때 꿈꾸던 것만큼의 물리적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그렇게 불운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경우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갈된 ‘내 안의 무엇인가’를 채우는 다양한 방법들 중에 마지막 조각은 바로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다.

바로 세븐틴의 나나투어를 보며.


‘세계 일주는 못하더라도 해외여행은 가자. 나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범주에 들자. 그래서 나의 최애들이 보고 감탄한 로마 풍경을 함께 보고, 행복해하며 먹었던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어야지. 피렌체에선 조깅을 하고 푸드 트럭에서 파는 햄버거를 사서 신랑과 나눠 먹어야지. 그러면 그들이 느끼는 그 행복을, 평화를, 해방감을 우리도 느낄 수 있겠지. 뭔가 나를 채우는 시간이 되겠지 그러면 나의 2024년은 완성될 거야. 이 여행은 그간 소모 되었던 내 속이 채워지는 마지막 조각이 될 거야.’


최애들의 여행 코스를 신랑과 함께 밟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아,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가기 전부터 행복감을 주는 것이구나.’


잠시 스포를 하자면,

이때가 내가 첫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금까지 포함해 제일 행복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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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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