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함께하던 강아지 마시가 내 곁을 떠났다. 마시의 죽음에 대한 나의 감정을 글로 쓰는 일은 아주 먼 훗날이 될 것이다. 오늘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는 또 외로움에 대해서다.
원래 인간은 두 명이 한 몸으로 합쳐져 있었다. 어느 날 인간이 뭔 천인공로할 죄를 지어서 분노한 신이 우리 몸을 두 갈래로 나눠버렸는데, 그때부터 인간에게 외로움이 생겼다. 영원히 자신의 짝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영화 <헤드윅>에서 그랬다. 잘 만든 영화니까 이렇다 할 근거가 있는 주장이겠지...
그래서 그런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다. 외로움은 내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니는 필기구였고 난 그걸 아주 자주 썼으며 그래서 많이 필요했다. 내 키가 너무 작은 이유는 무거운 가방을 오랫동안 매고 다녔던 탓이다. 내가 영화 <헤드윅>을 좀 일찍 봤더라면 '반쪽을 찾아 외로움을 해결한다'는 미션을 빨리 시작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난 그 영화를 21살에 처음 봤고 따라서 내 연애 역사는 그 해부터 시작됐다.
20대 내내 나쁜 남자, 착한 남자, 미련한 남자, 불같은 남자, 돈 많은 남자와 없는 남자, 귀여운 남자, 마초 남자를 찍어 먹었다. 한 남자를 조금 오래 맛봤던 적도 있지만 영원히 먹고 싶지는 않았다. 뭘 찾아도, 어떻게 찾아도 신이 쪼개버린 내 반쪽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미 반쪽을 만났는데 내가 못 알아본 것은 아닌가 의심하던 찰나, 20대의 끝자락에서 정기를 만났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건 내 반쪽이다. 아주 옛날 저 아이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생겼던 상처가 간질간질 가려웠다. 이곳저곳을 긁어도 시원해지기는커녕 간지러움은 점점 안으로 파고들었다. 종국엔 심장이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졌다.
당연히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린 원래 한 몸이었으니까 앞으로 영원히 함께하는 거야. 내 반쪽 정기와 함께 마시를 4년 정도 키웠다. 나보다 더 마시를 애지중지했던 정기. 마시 때문에 몇 달을 잠 못 들고, 퇴근해 오면 마시의 똥오줌을 한 시간 내내 치우면서도 한 번도 짜증 내지 않았던 정기. 슈퍼싱글 침대에서 어깨를 접고 잠들었던 정기. 내가 마시를 사랑하는 만큼 정기도 마시를 사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시가 죽고 나서 가장 많이 운 것은 정기였다. 나 포함 우리 가족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마시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나보다 더 할 말이 많았던 정기는 수의사를 옆에 오래오래 세워놨다. 운전을 하면서도 울고 집에 와서도 울고 물건을 치우면서도 울고 달항아리에 마시의 유골을 보관하면서도 울던 정기는 달항아리를 껴안고 잘 기세였다. 나는 정기에게 고마웠다. 역시 내 반쪽. 내가 슬픈 만큼 정기도 슬퍼하는구나.
그리고 다음 날. 마시가 죽은 바로 다음 날. 정기는 친구들이랑 1박 2일 여행을 갔다. 나를 남겨두고. 여행을 갔어.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오는 여행. 신나는 여행. 술을 잔뜩 먹고 물에 빠져 힘껏 신나 하는 여행. 행복한 여행을 갔다. 얼마나 신났는지 연락이 잘 되지도 않는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새벽 5시에 일어나 울고, 집을 청소하고, 울고, 마시 사진을 넣을 액자를 사면서 울고, 마시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실패해서 울고, 빈 액자만 걸어두고 울고, 마시를 위해 켰던 새벽의 조명을 보고 울고, 달항아리를 쓰다듬으면 우는 동안 정기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다. 내가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맥주 한 캔을 억지로 털어 넣을 때, 정기도 술을 마셨다.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는 곳에서 웃고 떠들며.
우리는 같은 슬픔을 겪고 다르게 슬퍼한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슬픔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정기는 이미 끝이 난 모양이다. 나는 정기가 내 반쪽인 줄 알았는데,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내가 울 때 정기는 웃는다. 나는 절망스럽다. 평생을 외롭지 않기 위해 애써왔는데, 이제는 외로울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모든 게 헛수고였다니. 나는 지금 외롭다. 나의 슬픔은 온전히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감각으로 느껴진다. 이러지 않으려고 반쪽을 찾아 헤맸던 건데. 심지어 반쪽을 찾았는데. 나는 왜 외로운 걸까.
영화 <헤드윅>이 틀린 걸까. 남들이 으레 하는 말처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영원히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정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 반쪽을 찾으면, 내 편을, 내 사람을 가지면 외로워지지 않을 줄 알았다. 이럴 수가. 내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닌가. 정기가 내 반쪽이 아닌 건가. 내가 잘못 봤나. 내 진짜 반쪽은 어딘가에서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내가 애먼 사람을 붙잡아 내 옆에 앉혀놓았던 걸까. 마음이 불안하다. 나는 정말 이제는 내가 외롭지 않게 될 줄 알았다. 난 내가 울 때 같이 울고, 혼자일 때 옆에 있어줄, 내 공허와 무한대의 불안을 함께 견뎌줄 사람이 너무나 필요했다. 실종. 실종이다. 미제 실종사건. 어디에 있는 걸까. 찾을 수 없는 걸까 아님 사실은 없는 걸까. 없다면 이걸 정말 나 혼자 해내야 한단 말이야? 말도 안 된다. 나는 자신이 없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까맣게 타서 온 정기가 마시에게 편지를 쓰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기가 울면 나도 자동으로 울었는데, 내 눈은 건조하다. 마시가 죽었는데 어떻게 놀러갈 수 있단 말이야. 너의 슬픔은 이제 나를 공명시키지 못 한다. 역시 반쪽이 아니었던 건가. 나는 정기가 밉고 정기에게 서운해서 점점 나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를 말릴 수가 없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영원히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정기가 내 반쪽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덜 상처가 되는 방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