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보냈더니 10시간 안읽씹하는 사람

by 고니크

결혼 준비가 거의 다 끝이 났다.

나에게 남은 거라곤 다이어트와 청첩장 모임 뿐이다.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는...! 뭐요. 어쩌라고요. (갑자기 시비 걸기) 죄송합니다. ... 다이어트는 결혼을 앞두고 급격히 조급해질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현 시각 내 유일한 고민은 청첩장 누구까지 줘야 하나다.

결혼 선배릠들은 나에게 "일단 다 돌려. 다 돌리고 선택권을 그들에게 맡겨."라고 했지만 난 조금 머뭇거리게 된다. 왜냐하면 안 친한 지인에게 청첩장을 받고 너무 어리둥절했던 경험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운동을 한두 번 같이 했던 지인이(이름도 모른다) 갑자기 모청을 보내와 "와줘잉이이잉 와줘이이이이잉"라고 했을 때나 동갑이었는지 언니였는지 헷갈리는 8년 전 직장동료가 엄청나게 긴 전체보기 카톡을 보내며 모청을 전달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어... 어라... 너무 미안해지잖아...! 나를 엄청나게 친하다고 생각했나 봐! 나는... 나는... 미안하지만... 나는... 나는 아니었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글을 그들이 본다면 엄청나게 서운하고 상처 받아하리라는 것을 안다. 나였어도 그럴 테니까. 그래서 더 맘 한 켠이 안 좋다.


여튼! 그래서 나는 내 청첩장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을 사람에게만 청첩장을 주고 싶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 청첩장을 안 준다

: 우리는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제 결혼식 소식을 몰라도 됩니다. 제 결혼식 소식을 몰라도 우리가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변함없을 거예요.


- 모바일 청첩장을 준다

: 나는 너를 좋아합니다. 너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상처를 받지는 않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할 거예요.


- 청첩장 모임을 한다

: 내 결혼식에 안 오면 나 진짜 너무 서운할 거야!


왜냐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사랑은 상대적이다. 나는 원체 사람을 자주 만나는 스타일도 아니고, 연락을 자주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만나지 않은지 6년이 넘은 사랑하는 후배도 있다. 그녀와 일 년에 단 두 번 연락을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일상과 고민과 신념을 모르지만 그냥 과거 함께 했던 기억만으로 난 아직도 그 아일 사랑해. 그리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마워, 예진아.


왜 자길 만나주지 않냐고, 자기 카톡에 왜 답장 하지 않냐고 나를 들들 볶는 친구들에게 나는 부처의 미소를 지으면서 괜히 말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 내일 날씨도 좋겠지? 하하하하하하. 그러면 눈치껏 나를 내버려둬주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엔 고집이 있는 친구가 꼭 있다. 한 단계 투정을 더 끌어올리는 거다. 너무나 서운하다고 내게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나를 모서리로 몰아넣는다. 그럼 나는 고개를 조아린다. 아니이... 나는... 그래... 나도 너가 좋아... 좋은데! 근데 나는... 내가 제일 좋아... 그래서 아주 가끔 그리고 아주 오래 만나는... 가늘고 긴 관계가 좋아... 나는 내가 제일 벅찬데... 친구한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내가 너한테까지 스트레스 받아야 한다면... 그냥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주면 안 돼...? 그제야 상대가 흰 수건을 내던진다. 나는 이겼지만 진 기분으로 흐흐 하고 입으로만 웃는다.


아무리 오랫동안 보지 않아도 상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그대로인데, 연락을 안 해도, 내 일상을 시시콜콜 공유하지 않아도 난 여전히 상대를 나의 베스트 프랜드라고 생각하는데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친구들이 참 많은 것 같다.(당연함)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잇는 데에 문제가 있는 나로선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큰 관문이다. 백퍼 내 연락을 고깝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거란 말이야. 내가 (위에 썼던) 운동 한두 번 같이 했던 지인이나 8년 전 직장 동료에게 느낀 황당함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보며 느낄 것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청첩장을 돌리며 나는 상처 받겠지ㅠ 나는 상처 받는 것이 싫어서 결혼식이 하기 싫어진다.


용기를 내서 청첩장 모임을 할 친구들을 추렸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결혼식에 꼭 참석해줬으면 하는 고마운 사람들, 참석하지 못해도 식사대접을 하며 결혼소식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 청첩장 모임을 갖자는 내 연락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사람으로만 꾸렸다. 확신해! 이들은 내 연락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응해줄 거야.


띠로리.

내 생각이 틀렸다.

아침 10시에 보낸 내 카톡의 1이 저녁 8시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하루종일 핸드폰을 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일부로다. 미리보기로 읽고 답장하길 포기한 것이다. 나는 초조해졌다. 이 친구가 단단히 오해한 것 같아. 나를 오랫동안 연락하지도 않았으면서 축의금 삥 뜯으러 연락한 양아치로 보고 있는 게 틀림 없어. 어쩌지.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어쩌냐. 어찌하냐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인간관계 아무렇게나 방임하며 살아왔던 34년의 부메랑이 이렇게 돌아오는 것이다. 후회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랑도 여전히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나는...! 왜!


나는 구구절절의 변명을 쓰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 연락이 부담스러웠으면 난 정말 괜찮으니까 내 연락은 잊어 달라는 말... 나는 정말 진심으로 축하받고 싶은 마음에 연락했다는 점... 다른 꿍꿍이는 없었다는 불필요한 첨언... 결혼소식을 알리며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을 뿐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는 아까 했던 말의 반복... 결혼식 초대 당하는 사람의 부담이 뭔지 나도 너무 잘 안다는... 너무나 더 부담을 주는 멘트... 나는 이 결혼식에서 그 어떤 금전적 이득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나는 그지가 아니라는 (그지임)... 사람들이 빈손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괜히 호탕한 척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아아... 전체보기가 넘어간다. 이제야 8년 전 직장 동료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녀도 상처 받고 싶지 않았구나. 그래서 미리부터 자신의 진심을 구구절절 써놓은 것이었구나. 내가 그 마음을 몰라주다 이제야 알다니.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전체보기 메시지가 보내지자 마자 카톡의 1이 사라졌다. 내 심장도 함께 사라진 기분이다. 청첩장 모임 초대 톡은 10시간 째 안 읽었으면서 왜 내 구질구질한 전체보기는 바로 읽는단 말이야. 왜! 왜! 뭐라고 답장이 오려나. 오늘 하루 너무 바빴다고, 이제야 확인했다고, 너무 공교로운 연락텀이라고, 세상은 참 이렇게 허무하게 웃긴 게 매력이라고 하려나. 아니면 사실 미리 보기로 읽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우리 예전엔 친했지만 이제는 자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정중히 거절하려나. 아니야. 그렇게 말할 리는 없다. 그건 너무 정중히 상처를 주는 행위잖아. 그래 아무래도 이 친구가 오늘 하루 많이 바빴나 보다. 아니면 어제 회식 후 과음을 해서 오후 늦게 일어난 것일 수도 있지. 아니면 원래 밤낮이 바뀐 사람이라거나. 이 친구에겐 지금이 아침인 거야!


그때 답장이 왔다.


[ㅎㅎㅎ 결혼 축하합니다~]


...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

...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말은 오지 않았다.

...

그렇게 끝이었다.

...

결혼을 축하한다는 긍정의 메시지였지만 내 기분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다. 차라리 정중히 상처를 주는 행위가 더 나은 것 같다. 너무나 정중한 축하의 메시지. 그리고 정중히 고요해지는 내 마음. 어쩔까. 지금 너무 정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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