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그로성의 제목 같지만 어그로가 아니라 실제 요근래 내가 하는 생각이다.
창피해서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싶지만 솔직히 좀... 웃겨서 안 쓸 수가 없다. 머리론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절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지금도 내 입은 웃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설명하려면 일단 2주 전에 받은 산전검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쓰면서도 이건 너무 사적인 정보가 아닌가 싶지만 몰라 모르겠다. 이 웃긴 일을 너무 말하고 싶은 내 안의 이야기꾼 기질이 나를 주체하지 못한다.
나와 정기는 아직 결혼식을 하지도 않았고, 혼인신고는 더더욱이나 안 했지만 단지 신혼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신혼부부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신혼부부란 모름지기 계란후라이 하나만 해도 소독기를 가져와 후앙(주방 후드)과 인덕션, 조리대까지 청소를 하는 등 집의 청결상태를 결벽증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며, 반드시 주말엔 근처 공원으로 나가 배드민턴을 하고 그게 끝나면 아이스크림을 물고 돌아와야 한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늦게 퇴근한 사람을 마중 나와야 하고, 하루에 20회 이상의 뽀뽀는 필수 조건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 상대방에게 나 없는 자유시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 왜냐? 신혼부부니까. 신혼부부는 원래 그런 거다. 연애초로 돌아온 것처럼 서로가 너무 좋아서 떨어질 수가 없는 것.
그러나 우리의 신혼부부 바이브는 2주를 못 갔다. 그래, 우리는 5년 째 연애 중이며 그 중 4년은 같이 살았다. 2주면 오래 버틴 거다. 신혼부부 놀이가 금세 지루해진 우리는 다른 영역으로 흥미를 돌려보기로 했다. 아기를... 가져보는 거 어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기를 가져볼 마음의 준비를 해보는 게 어때? 이거 조금 신혼부부 같은 수도?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이다.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는 취지는 아니었고 그저 신혼부부만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신선한 데이트를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우리는 서로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들었다. 이럴 땐 참 텔레파시가 잘 통한단 말이야.
우리는 산전검사 데이트를 나갔다. 마음이 간질간질. 오오 내가 이런 것도 해? 나 진짜 어른이야? 나 진짜 신혼부부인 거냐고! 푸헬헬 (손가락질 하며) 홍정기 너 그 방에 들어가서 뭐했냐! 낄낄. 병원에서 뭐 틀어줬냐! 깔깔깔. 내 웃음은 일주일을 못 갔다. 산전검사 결과, 난소 나이 37세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네? 37세요? 저 만32세인데요. 아니 37살이면 노산 아니야? 자연임신이 가능한 나이기는 해? 시험관 준비해야 하는 나이 아니야?
청천벽력이었다. 어째서 나보다 내 난소가 더 나이를 먹은 거지? 어디로 먹은 거지?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 동안의 비결이 난소가 대신 나이 먹어주기 때문이었다니? 야, 뱉어내. 뭘 얼마나 많이 먹은 거야? 뱉어내라고. 하지만 난소 나이는 내가 뭘 어찌해도 되돌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이슈 앞에서 너무 급하게 조급해졌다. 혼란스럽다. 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었나? 모르겠다. 나는 아직 임출육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가 그걸 원하는지 원하는지 않는지도 확실히 모르겠는데 내 난소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나를 보챈다. 애가 보채니까 어떡해. 뭐 일단... 일단 나랑 정기는... 해야 할 일을... 예... 뭐... 그렇습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생리가 아직 12일이나 더 남았는데 아랫배가 붓고 가슴이 묵직해졌다. PMS인가. 그런데 화장실에 갔더니 휴지에 소량의 갈색피가 묻어 나온다. 갈색? 소량의? 피? 잠깐, 이거... 착상혈 아니야? 착상혈에 대해 찾아봤다. 배란일 5일~12일 사이에 나온단다. 뭐야! 시기가 딱 맞잖아? 생각해보면 전과 다르게 낮잠을 자기 시작한 나. 자도 자도 졸리고 피곤하다. 요새 너무 졸려서 차로 출근하길 포기하고 버스 타고 출퇴근했거든!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어딘가 아프고 불편한 감각도 느껴진다. 요가를 하는데 왜인지 복압도 잘 잡히지 않더라니! 몸이 전보다 더 더워진 느낌도 들고! 헉! 나 임신 아냐? 피임 한 번 안 했다고 이렇게 한 방에?
그런 생각이 든 순간부터 나는 나를 임산부로 규정 지었다. 몰라. 모르겠고. 나 임신했어. 그냥 그렇게 정해. 그렇다면 그런 거야. 그래 좀 이상하잖아?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 싶어지지 않나. 귤 냄새를 맡으면 입맛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원래 피자를 안 좋아하는데 새벽 1시에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어지더라니까? 어떻게 했냐고? 당장 시켜 먹었지. 한방이가 먹고 싶대잖아. 그래, 난 태명도 지었다.
나는 쳇GPT로 아기가 태어날 날을 미리 산정해서 사주도 봤다. 26년 5월 25일 오후 3시 이후에 낳으면 딱이겠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넌. 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임신, 출산, 육아 릴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깔아야 하는 어플, 보건소 가서 뭘 신청해야 하는지, 주수 별로 아기는 어떻게 크는지, 임신 중 검사는 어떤 어떤 것들이 있고 얼마인지... 그러다 보니 자연분만할 때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부터 아기가 이유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목에 걸렸을 때 취해야 할 시기별 하임리히법까지 익혀놓을 정도가 됐다. 이제 애만 나오면 돼.
룰루~ 정기한테 이 사실을 언제 말하지? 깜짝 이벤트를 해줘야겠다! 임신도 확인할 겸 이벤트도 준비할 겸 임테기를 샀다. 선명한 두 줄이 나오면 임신이다. 나오겠지. 나올 수밖에 없지. 이미 내 몸의 증상들이 내가 임신임을 말해주고 있는 걸!
5분 후 내 표정.
한 줄이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매직아이로 보아도. 너무나 선명한 한 줄. 야 내 몸, 너 미쳤냐? 미친 거야? 너가 임신이라매. 왜 나 들뜨게 했냐. 나는 내 몸을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었다. 내가 판사라면 내 자궁에게 징역 5년 정도는 때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자궁이 출소할 때쯤엔 난소 나이가 42세일 테니까. ssibal...
억울했다. 나 새벽에 피자 먹은 거 그냥 야식 먹은 사람이었던 거야? 너무 졸려서 회의 시간에 꾸벅꾸벅 존 거, 그냥 업무 태도 불량이었던 사람인 거냐고. 나는 그냥 복숭아랑 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잖아. 아무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내가 잡을 수 있는 거라고 내 뱃살 뿐이었다. 아랫배가 조금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살이 찐 거였다니... 임신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내가 아기를 얼마나 갖고싶어 하는 사람이지를 알게 됐다.
이번엔 실패니 다음엔 꼭 성공해야지. 얼른 다음 배란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빨리 생리가 터져야 하는데... 생리 예정일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생리가 당겨지면 당겨졌지 미뤄진 적은 내 평생 한 번도 없었다. 나름 규칙적인 주기도 가지고 있다고. 뭐지. 왜 생리를 안 하지? 생리를 왜 안 하느냐는 말이야... 혹시? 나는 뇌를 풀가동해 임테기 고장이 잦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을 찾아낸다. 그리고 검사를 너무 일찍하면 한 줄이 뜰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떠올린다. 설마...? 나는 다시 임테기를 샀다.
5분 후 내 표정.
진짜 작작하세욘, 내 자궁아. 당연히 한 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생리는 터지지 않았고, 아랫배는 불룩하며, 자주 졸리다. 임신이 아니라는 걸 내 마음과 내 뇌는 받아들였는데 아무래도 내 몸은 아직 못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내 인스타그램도... 폰만 켜면 아직 임출육 릴스가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나는 이런 내가 너무 킹받아서 피식 웃음이 난다.
지난 2주 동안의 내가 너무... 너무... 나같잖아. 한번 기대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거. 정기에게 프러포즈를 뜯어낼 때도 이랬지.('반지 들고 무릎 꿇어. 아니 꿇어주세요'편 참고) 이런 나 정말 진절머리난다. 하지만! 웃겨. 그러나! 킹받아. 네버더래스! 귀여워. 하우에버!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얼쏘! 설레발로 친구에게 미리 털어놓지도 않을 거야. 친구가 태어나서 상상임신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놀린다. 미안한데 나도 처음이야... 참내.
...내 몸이 얼른 상상임신을 끝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