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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Nov 01. 2024

모든 이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

공간의 시작

석 달 전, 입시 학원만 300여 곳 가까이 들어선 거리에 나를 위한 공간을 오픈했다. 차와 글이 함께 하는 뜻을 담아 <티앤북 클래스>라고 이름 지었다. 오픈한 이유는 단순했다. 글쓰기 강사이자 티 소믈리에로서 일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학원가 한복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찾아올까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여러 변화를 보며, 그래도 하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짙어진다.



아이들의 성장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건 아이들이다. 학원 가는 길에 들러 숙제하고, 간식 먹고, 쉬어간다. 어느 장소보다 안전한 쉼터가 되고 있다. 냉장고 안은 점점 간식으로 가득하지만, 학교와 학원 숙제로 실랑이하는 일도 없어졌다.

느지막이 오후가 되면, 큰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들른다. 때로는 친구도 데려온다. “우리 엄마 학원에 가서 같이 숙제할래?" 하면서. 작은 아이는 수학 수업 전에 들러 간식을 먹으며 방금 다녀온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누구랑 딱지치기를 했는데요." "내일은 이 단어를 외워야 하는데요." 소소한 대화가 이어지는 덕분에 아이 일상에 대해 더 상세히 알게 된다.


수업 준비하는 엄마, 글 쓰는 엄마, 강의하는 엄마, 티 수업을 하는 엄마, 학생과 소통하는 엄마 일상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교육이 되었다. 마흔이 넘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얼마 전, 둘째가 그랬다.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도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하고, 잘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거 같았다.


어른들의 발견

어른들을 위한 문화적 공간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입시 학원이 즐비한 거리에서, 이곳은 작은 오아시스가 된다. “여기만 오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티 수업을 마치고 나면 "티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집에서도 마셔보고 싶어요."라며 관심사를 발견하곤 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각자 가진 서사를 글로 담고, 차에 대해 알아가고, 차를 통해 잠시나마 여유를 찾는 모습은, 어른들이 사는 세계에 작지만 무거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얼마 전, 은행에 사업자 카드를 만들러 갔다. 그때 직원이 말했다."학원가에 어른들을 위한 글쓰기 공간이라니, 오랜만에 뭉클하네요." 이 말에, 이 공간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입시와 성적이라는 획일화된 가치 속에서, 우리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던 거다.



함께 피어나는 우리

엄마가 일하는 건,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서 여러 의미가 있다. 아이들에게는 삶의 다양한 가능성, 경험, 도전을 보여준 교육이고 어른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전하다고 할까.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작은 변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힘이 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 사람, 차를 통해 일상의 쉼을 찾은 사람, 그리고 엄마의 도전을 보며 자란 아이들까지.


집에서 5분 거리를 걸어가며 수시로 생각한다. 오늘도 이곳에서 누군가는 글 쓰고, 차를 마시고, 쉬어간다고. 그들이 머무는 모든 순간이, 고유한 이야기가 되어간다. 문을 열 때마다 설렌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어떤 변화가 시작될까 하고.

성공이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설정한 방향을 따라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 작은 걸음에 내가 운영하는 공간이 함께 하고 싶다.


이 작은 공간이, 나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여기를 찾는 모든 이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바쁜 일상 속 쉼표가 되고, 가능성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그것은 곧 내가 이 공간을 운영하는 가치와도 연결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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