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컴퍼스 어디있어요?"
"엄마! 바나나우유 좀 갈아주세요!"
"엄마! 내일 체육 수업 있어서 체육복 입고 오래요!"
저녁식사 준비와 동시에 '엄마'는 분주하다. 하루에 몇 번이나 불릴까. 앉았다 싶으면 일어나야 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한 번에 말하면 될 것을 하나 준비하면, 또 하나, 또 하나가 이어진다.
분명 피곤했는데, 잠이 오기 시작했는데. 밀려오던 졸음은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횟수에 비례하며 사라지나 보다.
나의 24시간은 크게 세 번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오전이다. 아이들 등교 전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나면 내 공간으로 출근한다. 글쓰기 수업이나 티 수업을 하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 먹고, 오전에 정리 못한 살림을 대충 정리한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한 시간 간격으로 교문을 나선다. 각자 다른 스케줄이 있는 아이들은 흩어진다. 영어, 수학 학원으로. 아이들이 이동한 걸 확인 후 다시 내 공간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 시간인 오후 2시 30분부터는 강의 자료를 만들고, 관련 영상을 본다. 매일 발행하는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 요즘 들어 서평 의뢰 들어오는 책이 대부분 두껍다. 벽돌 책이라 부를 만큼 많은 페이지를 소화하려면 하루에 계획한 분량만큼 읽어야 한다.
낮에도 수업이 있는 날이 있다. 오전에만 운영한다지만, 아이가 근처 학원에 있는 동안 수업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있다. 그들과 두 시간 정도 보내다 보면 우리 아이들 일과도 끝난다.
여유가 있는 날이면, 틈틈이 SNS에 글도 올린다. 오늘 했던 수업에 대해 짧게 요약하거나 정리한다. 소통 세계에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 나누다 보면 금세 어두워진다. 바람도 차고, 배꼽시계도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시간.
셀 수 없는 '엄마' 호출이 울린다. 주방과 거실을 왕복 스무 번 넘게 하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면 열 시에 가까워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부름이, 아이들이 씻고 나오면서 잠잠해진다.
나를 수십 번 부르든 소리가 만들어낸 마법인가. 머리도 맑고, 마음도 가볍다. 때론 운동화 끈 동여매고, 이어폰 꽂은 채로 나가고 싶다. 막바지에 접어든 가을밤 하늘 한 번 제대로 담지 못했다. 어두운 밤하늘이라도 보고 싶지만,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 식탁에 앉는다. 고요해질수록 머릿속에는 할 일,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찬다. 책을 읽기도 하고, 밀린 강의를 듣기도 한다.
누군가가 물었다. 왜 이 시간에도 '굳이' 일하느냐고. 온전히 나를 위한,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순간일 뿐이다. 가끔은 유행이 지난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SNS 속 사람 사는 세계를 보기도 한다.
우리 모두 같은 하루를 살지만 어떻게 나누고 채우느냐는 저마다 다르다. 아직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키우는 주부라면 자기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매번 아이들과 같이 있는 건 아니다. 매번 살림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아니다. 매번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선물처럼 찾아오는 나만의 마법 같은 시간은 분명 있다. 찾으려 하면 보일 뿐.
지금 이 순간, 아이를 재우고 피곤에 겨워 누워있다면 일어나길. 티 한 잔을 우리며, 책 한 페이지를 넘기며, 혹은 일기를 쓰며 하루의 마지막 조각을 당신만의 색으로 채우길 바란다.
* 지금 쓰는 이 글은 두 번째 시간,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