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이를 보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훌쩍 자라는 키, 인중을 채우는 검은 그림자, 점점 발전하는 예민함. 신체 및 정신적 성장을 보며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더구나 아이가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담긴 검붉은 빛깔 단어들은 성교육이 시급하다는 또 다른 적색경보였습니다.
올해 2월, 성교육 전문 기관을 통해 4인 1조로 진행하는 수업을 찾았습니다. 지방에서 진행되는 만큼, 인원을 맞춰야 하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친구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수업이라 아이도 덜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수업을 통해 성에 대한 개념과 올바른 가치관을 배울 수 있었기에 올해 가기 전에 다음 단계 수업을 듣자며 약속했습니다.
7월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이가 같은 학원에 다니는 6학년 형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겁니다. 아이는 장난치다 그랬다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위험한 신호라는 걸. 즉각적으로 사과하고 마무리했지만, 집에 감도는 기운은 차갑디 차가웠습니다. 순간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경고등이 꺼지지 않았거든요. 지난번 아이 성교육을 담당해 준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저녁시간을 할애해 주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명확히 하고, 반성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날 이후 한 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추가 상담 및 수업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절망 속에서 시작한 수업에서 저와 아이는 공교육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넘어, 자기 몸과 마음의 경계를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 아이에게 어떠했는지 물었습니다. 포스트잇에 "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어요."라고 적더군요. 그 한 문장에, 모든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성교육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거죠. 아이가 가볍게 사용하는 욕설에 담긴 실제 의미, 생명의 탄생 과정,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 이외에도 배운 모든 것이 자신과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성교육을 해보고 나니 여기저기 권하고 싶었습니다.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요. 하지만 주변 반응은 다소 안일했습니다.
"그런 거 학교에서 다 배우지 않나요?", "아직 어린데 굳이 그런 걸 가르칠 필요가 있나요?", "우리 때는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는데..."
게다가 우리 지역의 보수적인 정서 때문인지, 성교육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는 절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거야"라며 필요성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공교육을 맹신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성교육을 마친 후 아이가 그러더군요. 궁금해하던 것을 속시원히 알려줘서 좋았다고요. 학교에서는 대충 가르쳐 줘서, 궁금해도 물을 수 없었었다고요. 25년 전 제가 받았던 것과 지금 교육에 간극이 없는 거죠. 여전히 표면적인 내용만 다루고, 실질적인 고민과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왜곡된 성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도 있는데 말입니다.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져나가는 정보가 아이들이 성에 대한 가치관으로 형성될까 봐 더욱 걱정인데 말이죠.
하나 더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성교육 관련 수업료도 아까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매달 영어, 수학 학원비로 30만 원 이상을 지출하면서도, 일 년에 몇 번 하는 성교육은 '비싸다'라고 망설이더군요. 성교육은 매년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하면 되는데도 말입니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피해가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요.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핵심인 성교육을 등한시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제는 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부디 부모부터 그렇게 되길, 제발 그렇게 변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