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으면 이걸 안 쓰고 있겠지)
하지만...내가 한 말은...
아이들 새벽 수유를 하고
겨우 잠이 든 터였다.
가뜩이나 잠을 못 자서
피곤하고 예민해 죽겠는데,
짐을 바리바리 싸서 들어오는
엄마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엄마는
이 동네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장을 봐왔다고 했다.
......
그러네.
결혼하고 10년 간,
엄마가 우리 집에
온 일이 있었던가?
한 번...많아봐야 두 번일 것이다.
(자고 간 적은 없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엄마를 살뜰하게 살폈지만,
엄마의 삶과 내 삶을
섞으려 하지는 않았다.
중구난방 꽃무늬 벽지,
군데군데 까진 마루,
출신을 알 수 없는 장식품 같은 건
엄마의 삶에나 어울리는 거지,
우리집은 하얗고, 깨끗하고,
생선냄새 같은 건
전혀 날 것 같지 않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며!
철저하게 구분을 지었다.
엄마와 나 사이
보이지 않는 금 하나.
엄마는
그 선을 넘은 적이 없었다.
동네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사왔다는 말에
전투력을 상실하고
식탁으로 장바구니를 올려
정리를 시작했다.
검은봉지에 줄줄이 싸여있는
채소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겠으니
패스하고,
1) 꽃게
내가 좋아하는 것
2) 만두
엄마집 앞에 있는 전국구 맛집.
내가 좋아하는 것.
3) 찰떡
떡 싫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먹는
떡집의 떡. 촌구석의 무림고수.
4) 오곡밥
내가 좋아하는 것
5) 시리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말에
굉장히 고심해서 사온 것 같은
그래놀라 뭐시기 시리얼.
(아마도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한 것.)
...다 내가 좋아하는 거네?
입을 다물고 장바구니를
뒤지던 내 손에
뭔가가 보였다.
계란이었다.
식당 아줌마.
식당 아줌마는
엄마의 친구다.
아줌마가 만든 김치짜글이는
가히 최고의 맛이다.
그런데, 그건 엄마집에서만
가능한 일이지
내 집에까지 끌어들이고 싶은
냄새는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엄마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지랄할 준비를 마쳤다.
빌어먹을 계란 때문에
첫 판부터 모든 게 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