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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Dec 05. 2019

더 추워지기 전에, 연어랑 따뜻한 와인 어때요?

11/30 토요일 테이블

그때 알리에노르가 들어와서 로지에 옆에 섰다.

“자, 이거 하나 드세요.”

알리에노르가 케이크 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로지에 르 브룅이 웃었다.

“조르주, 자네 작업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네만, 자네 집 여자들이 모두 해결해주는구먼.”

그는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_트레이시 슈발리에,『여인과 일각수』(권민정·허진, 강)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면서 낙성대 집을 정리하고 내려왔을 때, 이제 서울이라면 학을 떼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인 듯하다. 경제학자 팀 하포드는 저서 『경제학 콘서트 2』에서 대도시에 사는 것은 합리적인 자기 강화 과정의 하나로 직업, 삶의 질과 사랑 등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따뜻한 내 집, 의지할 수 있는 동료, 어렵기도 하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는 업무. 보석 같은 안정감이 내 삶에 스며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너그럽고 당당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흠모하는 경제학자가 한 단원에 걸쳐 장기간 도시에서 일할 수록 똑똑해지고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하니 한번 더 생각해볼 밖에.


 입사 2년 차에 다다른 지금, 토요일마다 쾌적한 내 집에 친구를 불러 만찬을 즐기는 게 무엇보다 즐거운 이 시점에 정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걸까? 경험 많은 친구의 조언이 필요했다. 마침 날씨도 걷잡을 수 없이 추워지고 있으니, 연어와 따뜻한 와인이 좋은 핑계가 되겠다.



토요일 다섯 시, 연어 오븐구이에 쓸 야채 손질

 루이 Louie는 영국에서 온 원어민 교사로, 지난해까지 부산 북구의 모 초등학교에서 근무했고 올해 초 서울 서초동의 한 중학교로 전출되었다. 한적한 부산 북구를 생각하면 강남 서초구와의 온도 차이가 상당할 듯한데. 루이는 내 친구의 친구로, 모처럼 부산에 휴가차 방문한 그를 우리 집으로 불렀다. 메뉴는 연어 오븐구이와 따뜻한 와인으로, 계피를 통째로 넣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볼까 한다.



.연어 오븐구이

1. 레몬, 양파, 표고버섯, 알감자를 0.5센티미터 두께로 썰기

2. 종이 포일에 올리브유 약간 두르고 레몬을 깐 뒤 연어 fillet, 알감자와 미리 손질해둔 야채 얹기

3. 190도 예열해둔 오븐에 연어를 30분간 굽기



 루이는 영국 런던에서 차로 다섯 시간 걸리는 한적한 소도시에서 자랐다. 한국을 알게 된 건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서였다. 15년간 군만두만 먹는 최민식보다, 유지태의 살라바사나 요가보다 그를 매료한 것은 서울의 풍경이었다. 혼잡한 거리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사이를 헤치며 걷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아시아에서의 삶이 궁금했다고.


까만 한강 좌우로 가로등 빛이 콕 콕 줄줄이 박혀있던 한강 다리를 건너며 출퇴근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꾸린 가족은 없고 경력은 있으며 제대로 성취한 게 없는 지금이야말로 아직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이 글을 쓰고 있는 하단의 한 13층 카페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니, 서울에 있을 적 자주 갔던 광화문 교보문고가 떠올랐다. 북적이든 인파 틈바구니에서 이곳은 조용히 글 쓸 공간조차 찾기 힘들다고 불평했었다. 실제로 서울은 1㎢당 1만 6천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부산의 4배(4천 명/㎢), 뉴욕 8배·도쿄 3배에 가까운 수치다. 집 값, 인구밀도, 임금 격차 따위를 비교해보면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는 분명해진다.




. 글루바인 Gluwein

1. 오렌지, 귤, 자몽 등 과일을 0.5센티미터 두께로 썰기

2. 냄비에 와인 1병을 붓고 계피를 넣어 끓인 뒤, 썰어둔 과일과 설탕으로 당도 맞추기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세상에 집과 같은 곳은 아무 데도 없어(There's no place like home)’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시민들이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데는 지자체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부산이 인구가 적어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부산(3.4백만 명)은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 시카고(2.7백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2위 로스앤젤레스(3.8백만)와도 비등하다. 그럼 사람들은 무엇이 부산에서 누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일까? 박물관, 멋진 레스토랑, 콘서트 같은 것? 1년에 며칠이나 이러한 문화생활에 투자하시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부산에 부족한 것은 플랫폼 platform 즉 사람과 기업을 모으는 구심점이다. 인터넷, 항만, 자본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도심과 산업지대를 잇는 도로시설이 필요하다. 내가 일하는 강서구에서 부산 시내까지는 자차로 20-30분 내외가 소요되지만, 시내와 이어진 가교가 2개밖에 없어 매일 2시간가량 출퇴근에 사용하게 된다. 서면까지 25km가 채 안 되는 거리를 30분 안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지역 내 분산된 역량 즉 기업, 학생, 시민이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



토요일 열 시 반, 선물로 받은 디저트로 마무리


 끝내 루이에게 서초동과 화명동 중 어느 곳에서의 삶이 더 마음에 드냐는 질문은 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기의 어떤 면을 더 좋아하느냐 하는 질문처럼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자리바꿈은 선택보다 결심의 문제이고, 결심은 방향성의 문제이므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디에 살 것인가? 한 가지는 알겠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이 도시를 사랑하려고.



At the table

. Louie(35), 원어민 교사

. J(?), 초등교사

. H(26), 요리사

. S(24), 영어 강사

. HZ(25), 퍼스널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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