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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May 07. 2021

단지 술을 좋아하는 여자아이

레시피 화양연화 #5 딸기튤립 샌드위치

1.

 윤기가 흐르는 하얀 포르셰가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하이힐이 먼저 착륙, 늘씬한 다리가 다음, 차에서 빠져나온 고개를 들자 긴 생머리가 찰랑였다. 이곳은 사회과 대학원 연구동, 저녁 7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 화장도 고치지 않은 채 달려온 나와 거의 동시에 그 여자가 도착했다. 나의 대학원 동기이자 빛나는 아기 엄마, 통칭 빛나맘은 이제 막 돌 지난 아기 엄마이자 박사과정 준비생. 완벽한 옷매무새와 세련된 말투로 그는 첫 만남에 나를 압도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구겨진 셔츠를 입은 나, 애는 내가 키우는 몰골이었다.


‘은재씨, 논문 주제는 정하셨어요?’


 야간 수업이 마치고 그가 말을 걸었다. 가로등 아래서 보는 얼굴에 은은한 광채가 났다. 백설공주 앞에 선 일곱 난쟁이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직요… 교수님 면담도 요청 못 드렸는걸요.’ 다른 차원에서 온 듯한 광채, 박주임과 동일한 부류의 광채였다. 빛나맘은 수업이나 논문과 관련해서 몇 가지 물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나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다. 선생님 실례지만….


‘어떻게 하면 예뻐져요 선생님처럼?’


 아차!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내게도 사정은 있었다. 지난 5주 동안 피트니스 1백만 원, 피부과 1.6백만 원, 의류비 0.6백만 원에 미용 시술비 0.5백만 원을 들였지만 괄목할만한 변신은 없었던 바. 빛나맘은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런 질문이 한두 번은 아닌지 곧 미소를 되찾았다.


‘화사한 색을 써보세요. 빨간 립스틱을 바르거나 밝은 색 상의를 입는 거예요.’


인사를 건네고 아우디로 돌아서는 그 뒷모습에 빈틈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장미색 립스틱과 흰 티를 한벌 샀다. 그를 스승으로 삼겠다고 되뇌면서.



2.

- 맥주 한 잔 마시면 안 될까? 제발 제발 제발 나와줘


 과외교사로 일하는 진이(28, 수영구 거주)를 꾀어내 맥주를 마실 생각이다. 오후 4시 광안리는 한 풀 꺾인 햇빛에 파도가 반짝였다. 연인이 점령한 해변을 감내하고 나는 가출을 감행한 참이었다. 토요일 오전 아버지는 결혼식을 다녀와서는 맥주를 한 캔 땄다. ‘얼굴도 직장도 네가 더 나은데 왜!(이하 중략)’ 신랑이 꽤 마음에 들었던 눈치. 아버지는 요즘 데릴사위라도 들일 요량으로 동창회며 향우회를 알아보고 다녔던 바. ‘너도 나이가 서른인데 시집을 가야 마음이 놓이지’.


그럼 뭘 해. 난 단지 술을 조금 좋아하는 여자아이인걸….





‘내가 못한 게 뭔데? 난 공부도 열심히 했고 학교생활도 최선을 다했고 회사에서도 성실했어.’


미처 치우지 못한 맥주병이 테이블에 줄을 설 때쯤 예의 그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술은 입에 대지 않는 진이는 삼겹살을 쏙쏙 집어넣었다. 손해 보는 기분이었지만 이미 피부과며 트레이닝이며 쓴 돈이 얼만데 삼겹살 몇 조각 손해 보는 일쯤이야.


‘왜 누구는 남편의 서포트로 피트니스 모델이 되고! 누구는 아우디 타고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받는데!’



야.

진이가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네가 그 사람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봤어? 과외한다고 애들 집 가보면 우리보다 어린 주부 많아. 밖에서 몸 만들고 공부하는 일은 두세 시간이잖아. 나머지 시간은 지지리 말 안 듣는 애 돌보는 거라고. 그게 아니어도 너 일하는 거 부러워할 사람 많아. 그 절절한 패배감의 이유를 모르겠네.’

‘….’

‘그리고 너, 그런 말 할 때마다 못나보여.’

…!


예뻐지고 싶다면서 못생겨지는 말만 하냐, 한숨을 내뱉고 진이는 다시 젓가락을 집었다. 나는 망부석이 되어 튀어 오르는 돼지 껍질만 쳐다봤다. 진이가 옳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꼬였을까? 나는 단지 술을 조금 좋아하는… 언젠가 르꼬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하와이에서 살겠다던 평범한 여자아이였는데.


다음 주 어린이날이 있었다. 나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할 때가 되었다. 



TIP: 해수욕장 놀러 갈 땐 딸기튤립 샌드위치


-식빵 4장, 키위 2개, 딸기 2개, 단단하게 휘핑한 생크림


1. 식빵의 테두리는 자르고, 딸기는 반으로 키위는 3 등분 썰기

2. 랩을 깔고 식빵 위에 휘핑한 생크림 바른 뒤 딸기를 세로로 깔기

3. 키위 1조각-생크림-키위 순으로 올린 뒤 생크림으로 딸기와 함께 덮기

4. 나머지 식빵을 덮은 뒤 랩에 단단하게 싸서 냉장보관


*랩은 코스트코 글라스랩

**갈 때 보냉팩에 넣어 이동, 빵 칼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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