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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Apr 12. 2024

스토너

존 윌리엄스


활기찬 일상을 만들려다 예상치 못한 공허함을 맞닥뜨렸을 때는 스토너를 떠올린다.

그러면 또다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스토너처럼.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타고난 근성을 가진 스토너는 영문학에 매력을 느끼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며 본인의 일에 몰두하는 교육자의 삶을 잘 살아갔다. 어쩌면 실패작이라고 보일 수 있는 결혼생활 중에서도 희망을 맛보게 해 준 딸을 얻었고 중년이 되어선 강렬한 사랑 또한 해보았다.

인생에서 장애물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또한 마주하지만, 그는 늘 그렇듯 그저 묵묵히 모든 일들을 관조하며 받아들인다. 그리고 삶의 끝에서 자신의 인생을 회상해 본다.




경솔하게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버린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의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무언가가 이루어질 거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같은 가능성의 흐름 보단 내가 걸음 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탐험가처럼 장래를 생각하는 건 좋은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큰 감정 변화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건지, 견디는 건지 아님 그냥 별 다른 생각이 없는 건가 싶은 스토너의 삶에서 긍정적인 빛이 나타나던 시절은 마음을 몽골거리게 했다.

물론 이 시점도 단순히 해맑은 긍정이 아닌 현실적이고 담담한 그의 표현법이 좋았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소설 속에 창조된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그의 죽음까지 다 달았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지금껏 살아온 삶을 회상하며 되묻는 스토너의 물음에서 나 또한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걸까를 고민했다.


항상 내 꿈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삶이 끝날 때가 돼서야 내 꿈을 이루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으니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스토너가 지혜를 생각했지만 자신의 삶은 무지였다고 하는 단락을 보며 어쩌면 지혜라는 꿈은 영영 못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끝으로 깨달은 점이 ’ 무지‘라는 것이 지혜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삶을 관조하는 스토너 성격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감정에 휘몰아치기보단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묵묵히 나아가는 그의 성격이 마음에 들고 무심하게 회피하기보단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하는 듯한 태도가 좋다.

그리고 정해진 의미 없는 인생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마무리하는 죽음 또한 스토너 같았다.




 “스토너는 ’평범한 ‘ 사람이다. 근대 이후 소설은 눈물겹게 평범하여 오히려 비범해진 인물을 그리는데 그 본령이 있기도 하다.
(…) 그의 삶은 뜻밖의 ’ 기회‘와 그에 따르는 ’ 비용‘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작자는 세상의 모든 인생에 주어진 수학 문제를 대표로 푸는데, 삶의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0이다. 그의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해서 어떤 아름다움에 이른다.”

-신형철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읽다 보니 평범한 스토너의 삶이 비범해 보이는 이유는 실망과 총합이 0이어서였다.

특별할 것 없이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사는 이 인물의 담백한 모습에 괜스레 위안을 얻게 되고 건조한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게 되어 신기하고 기묘한 책이었다.




텅 빈 공허함에서 오는 낭만을 사랑해 보려 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빚지는 마음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겠다. 그리고 글도 더 부지런히… 써…. 보겠다…. 고 다짐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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