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AI가 쓴 협박장
Chapter 1: 완벽한 문장
2025년 3월 26일.
산업 현장과 기업 동향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시사 주간지의 박철민 기자.
그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서 정체불명의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사무실에, 누가 어떻게 편지를 두고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편지는 명백한 협박장이었다.
'박철민 기자에게 경고한다. 진행 중인 취재를 당장 멈춰라. 당신이 가진 자료와 당신의 사생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 우리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자비다.'
내용은 전형적이었지만, 박 기자를 소름 돋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편지의 문장이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완벽했고, 단어 선택은 지적이고 냉철했으며,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 속에 어떤 감정도, 인간적인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기계가 쓴 것처럼.
그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편지에서는 어떤 지문도, DNA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건설사의 단순 협박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박 기자는 이 사건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직감했다.
결국 그는 '미스터리 수사대'에 의뢰했다.
Chapter 2: 기계의 필체
"이 문장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정 인물의 문체를 학습한 것도 아니에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논리적이고 위협적인 문장을 생성해낸 결과물입니다."
사건을 맡은 화이트해커 이지수와 프로파일러 강태우는 편지 내용을 분석하며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범인은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협박장을 작성한 것이다.
강태우가 말했다.
"AI를 이용했다는 건, 범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심리적인 공포감을 극대화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감정이 없는 기계가 나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소름 끼치는 건 없으니까요."
이지수는 편지가 인쇄된 용지와 잉크 성분을 분석했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일반적인 사무용 프린터가 아닌, 특정 제조사의 구형 도트 프린터로 출력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첨단 AI 기술과 낡은 아날로그 장비의 기묘한 조합.
"이상해요. AI를 쓸 정도로 기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왜 구형 프린터를 사용했을까요?"
이지수가 의문을 제기했다.
추적은 난항을 겪었다. 그때, 강태우가 편지 내용에서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문장을 보시죠. '당신의 사생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 AI가 썼다면 굳이 '그 모든 것'이라는 표현으로 반복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 부분은 AI가 생성한 문장에, 범인이 자신의 감정을 덧붙인 흔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문장 속에 숨겨진, 유일한 인간적인 실수였다.
"범인은 기술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박 기자 주변에 있는 내부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Chapter 3: 아날로그의 흔적
강태우의 프로파일링을 바탕으로, 팀은 시사 주간지 내부 인물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시작했다.
이지수는 회사의 프린터 사용 기록을 몰래 확인했지만, 문제의 도트 프린터를 사용한 기록은 없었다.
포기하려던 순간, 이지수는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낡은 카트를 끌고 있었고, 카트 한구석에는 아주머니의 손녀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순간, 이지수의 뇌리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아주머니에게 혹시 회사에서 이상한 점을 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상한 건 아니고... 경비 할아버지가 좀 안쓰러워서. 밤마다 혼자 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몰라. 얼마 전엔 내가 버리려던 낡은 프린터도 고쳐 쓰겠다며 가져가고... 손주한테 컴퓨터 편지라도 써주려나 봐."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범인은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73세 노인, 김태수였다.
팀이 그의 경비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낡은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ChatGPT 창이 열려 있었다. 그의 옆에는 협박장에 쓰였던 것과 동일한 구형 도트 프린터가 놓여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
"제 아들이... 2021년, 박 기자님이 지금 취재하시는 그 건설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부실 공사로 인한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태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건설사는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겼고, 아들의 죽음은 억울하게 묻혔어요. 저는... 박 기자님이 건설사의 주장을 옹호하는 기사 대신에 진실을 파헤쳐서 제 아들 같은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는 고개를 숙였다.
"손주에게 선물 받은 컴퓨터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밤마다 경비실에서 AI 사용법을 익혔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어요."
그가 쓴 '그 모든 것'이라는 표현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억눌린 분노와 슬픔의 다른 표현이었다.
Chapter 4: 할아버지의 편지
김태수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되었지만, 그의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선처를 탄원했다.
그의 서툰 복수극은 역설적으로 건설사의 비리와 산업 재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후, 박철민 기자는 김태수로부터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AI가 쓴 완벽한 문장이 아닌, 삐뚤빼뚤하고 때로는 틀린 글씨로 가득한 편지였다.
기자님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제 아들 같은 억울한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좋은 기사를 써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 김태수 올림
박 기자는 편지를 가슴에 품고,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의 눈앞에는 더 이상 대기업이 뿌린 홍보자료 아니라,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가장 완벽한 기술보다 인간의 서툰 진심이 더욱 날카로운 창이 될 수 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