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행 티켓팅을 하다.
2019년 9월 30일 2년 9개월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회사를 다니며 알게 모르게 속앓이를 하며 힘들었던 회사였기에 퇴사를 하고 나면 홀가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10월 1일 아침, 그토록 간절하던 늦잠도 오지 않고 마음이 쿵쾅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새로운 취업은 잘 될까? 나 잘한 짓일까? 한 달 정도는 백수의 단꿈에 빠져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퇴사 다음날 아침, 나를 엄습해 온건 백수의 달콤함이 아니라 현실의 불안감이었다.
오전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안했다.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퇴사한 회사인데 회사를 벗어났음에도 또 다른 스트레스는 내 발목을 놔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환점이 필요해. 그때 생각한 게 퇴사 후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였다. 퇴사 전 달콤한 백수생활을 꿈꾸며 적어두었던 내 버킷리스트 첫 줄은 미얀마로 여행 가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가장 저렴한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으로 훌쩍 여행 떠나보기
둘 다 이때가 아니면 실행할 수 없는 버킷리스트였다. 지도에서 보듯이 미얀마의 면적은 6,765만 9천 헥타르, 한국 면적의 6배가 넘는 넓은 나라로 일명 국민 코스라고 불리는 양곤, 바간, 인레, 만달레이 이 각 지역을 각각 이동하는 데만도 꼬박 평균 10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최소 2주의 시간은 갖고 떠나야 하는 여행지였기에 평범한 직장인의 신분으로선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여행지였다.
언제나 그렇듯 결심하는 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스카이 스캐너에 접속하고 평소처럼 날짜에 맞춘 티켓 검색이 아니라 가장 싼 티켓이 있는 일정에 맞추기로 했다. 미얀마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여행지가 아니다 보니 직항은 대한항공뿐이지만 60만 원이 넘는 고가로 백수 주제에 너무 사치였다. 경유는 기본 옵션인 동남아 lcc저가 항공들 사이에서 특가로 나와 딱 1자리 남아있던 베트남 국적기였던 베트남 에어로 10월 19일~10월 31일 왕복 티켓팅을 순식간에 마쳐버렸다. 티켓팅을 마친 뒤 평소처럼 설레기만 할 줄 알았건만 나는는 계속해서 '정말 잘한 걸까?' 스스로에게 되묻기를 반복했다.
13일, 2주가 약간 못 되는 여행 기간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가장 긴 여행 일 수였고,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혼자 떠나보는 가장 긴 여행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긴박하게 끊어본 티켓팅이기도 했다. 모든 조건이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영어 한마디 못하고 무사히 잘 다닐 수 있을까? 혼자 이 긴 여행이 너무 외롭진 않을까?
걱정은 걱정을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걱정의 늪으로 나를 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할 시간도 사치였다. 시간이 없었다. 무작정 될 대로 돼라 식의 여행자라면 떠날 날만 기다려도 충분하겠지만 보통 6개월은 준비하고 떠나는 겁쟁이 여행자로서는 20일도 안 되는 이 시간 동안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곳을 갈지를 정하는 게 가장 첫 번째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정하는데서 꽤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미얀마는 비교적 쉽게 정해졌다. 위에도 언급했던 국민 루트라고 불리는 관광객들이 흔히 가는 루트를 어느 순서로 가느냐 정도를 정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저 국민 루트를 따를 생각이었다. 그러다 인레 근처에 있는 껄로라는 시골마을에서 트레킹 하는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과감하게 만달레이를 빼버리기로 했다. 여러 방면으로 고려해 보았지만 억지로 한 곳을 더 추가해서 발자국만 남기고 오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고 굳이 빼야 한다면 혼자 도시내 이동이 어려운 만달레이를 빼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다녀온 지금까지 이때의 결정에 후회는 없다.
미얀마 내에서 지역 간 이동은 보통 야간 버스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뭐 비용적으로 좀 여유가 있다면 국내선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야간 버스 이동을 선호하고 있는 편이다. 인도인들의 다리가 기차라면 미얀마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주는 것은 이 고속버스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 예매를 하거나 숙소 인셉션에서 대리 예매를 부탁해도 되지만 나는 직접 예매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예매하는 방법을 택한다곤 하는데 나는 겁쟁이니까. 적어도 첫 이동과 마지막 이동만큼은 예매해서 마음 편해지는 쪽을 택했다. 버스 티켓 못 구해서 비행기를 놓치는 일 따위는 없길 바라니까
미얀마의 고속버스 시스템은 우리와 조금 다른데 우린 터미널에 다양한 회사의 버스가 시간대별로 골고루 섞여 있어서 행선지와 시간을 먼저 정하는 반면, 미얀마는 회사별로 터미널이 나뉘어 있고 버스의 등급이 나뉘어 있어서 어느 회사 버스를 탈 것인지, 어느 등급의 버스를 탈 것인지를 정한 뒤에야 시간을 골라 예매할 수 있다. 10시간은 족히 걸리는 긴 이동길 편하게 가기로 했다. 버스 상태가 꽤 괜찮다는 평의 페이머스 회사의 vip석을 예매했다. 양곤 > 바간, 인레 > 양곤 두장의 티켓의 예매도 마쳤다.
이 또한 많은 여행객들이 직접 가서 둘러보고 예약하길 권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마지막 양곤에서의 하룻밤 묵을 숙소를 제외하곤 숙소 예약을 하고 가기로 했다. 아직까진 여행하면서 호텔을 숙소로 정해 본적은 없었기 에이번에도 당연한 듯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했는데 1인실이 있는 게스트 하우스보다는 도미토리룸만 있는 게스트 하우스들 뿐이라 더럽지 않다는 평이 있는 적당해 보이는 위치의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했다. 전 여행지에서 인생 최악의 숙소는 이미 경험한 터라 베드 버그만 나오지 않는다면 어디든 못 자겠는가.
캐리어보다는 배낭이 이동시 편하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45리터 배낭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샴푸, 비누 등의 기본적인 생필품부터 카메라, 옷가지, 먹을 것, 인도 라다크 때 화장실 휴지가 부족해 애먹었던 경험이 생각나 두루마리 휴지, 물티슈, 트레킹 시 필요할지도 모를 우비 등등등 줄이고 줄여보았지만 45리터 가방에 터질 듯이 담고도 부족해 25리터 백팩을 또 가득 채우고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다닐 크로스백까지 18킬로가 넘는 짐 꾸러미가 완성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이 꽤 많았다. 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막상 구한 동행이 아니 구한 만 못할 땐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많았지만 우선은 미얀마 여행 카페를 통해 첫 번째 동행을 구하고 미얀마 여행 단톡 방에서 두 번째 동행까지 합류해 두 번째 루트인 바간까지만 함께 하기로 일정을 맞추었다.
대충 이렇게 여행 준비의 윤곽이 잡혀가자 시간은 어느덧 10월 19일에 다다라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진짜 떠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