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에서의 첫째 날
쉐다곤 파고다
전날 잠을 잘 못 자기도 했고 마하시 선원에서 기력을 쪽 뺀 탓에 다음 일정을 두고 고민의 기로에 서버렸다. 쉐다곤 파고다를 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여차하면 여행 마지막 전날에 봐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쉐다곤 파고다로 향하는 쪽을 택했다. 아무래도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제 연락처를 나누지 못했던 부산 내외분이 왠지 이곳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던 내 스케줄에 맞춰 나를 찾아오실 것만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느낌에서였다.
"몇 시에 여기서 만나요." 같은 약속은 없었지만 무시할수만은 없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버스정류장을 찾고 맞는 버스를 찾는데 애를 먹긴 했으나 결국 꽤 긴 기다림 끝에 올라탄 버스, 이번에도 도와주시는 버스 승객 아저씨 덕분에 쉐다곤 파고다로 가는 길이 보이는 곳까지 배웅을 받았다. 미얀마에 온 지 이틀 만에 미얀마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에 매 순간순간 감동의 일렁임을 맛보고 있었다. 하늘과 더 가까워 보이는 황금 탑은 더 이상 아저씨의 배웅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거대한 길잡이가 되어 내 발걸음을 이끌었다.
다가갈수록 거대해지고 내 바로 앞에 다가와줄 것 같던 쉐다곤 파고다를 만나는 일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저 멀리에서도 보일만큼 우뚝 솟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쉐다곤 파고다를 향해 가는 길엔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이 마지막 최종보스 관문처럼 나를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10층 높이쯤 되려나? 휴... 숨 한번 크게 몰아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 그 끝에 올라섰을 땐 "우와~"소리가 절로 나왔다.
무교인 내게 특별히 종교적인 일렁임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었고, 예술을 바라보는 수준 높은 시각에서의 감탄도 아니었다. 무지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내뱉은 감탄의 느낌은 직관적으로 '정말 큰 황금탑이다.'에 대한 아주 단순한 감탄사였다. 태어나 이토록 많은 황금 사이에 둘러 싸여 보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감탄할 시간도 잠시 첫발을 내딛자마자 맥반석 위에 올라간 오징어가 된것만 같아 폴짝폴짝 난리법석을 떨어댔다. 뜨끈하다 못해 절절 끓는 대리석 바닥의 열기에 피곤해서 축 쳐졌던 일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서서히 해가 저 구름 속 너머로 저물어 감에 따라 바닥의 열기도 식어갔다.
파고다라는 말은 미얀마 어로 불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첨에 뭣 모르고 종로 파고다 어학원의 파고다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고민했었더랬다. 1453년에 건설되었다는 쉐다곤 파고다는 높이 100m 둘레 426m의 거대한 불탑으로 안에는 부처의 유품이 담겨 있는, 불교 쪽에선 성지순례를 올만큼 불자들에겐 뜻깊은 장소라고 한다. 처음부터 황금빛을 뗬던 건 아니고 1990년 이후부터 관리위원회에서 일반 신도들에게 금판 기증을 권유해 붙이기 시작했다는데... 글쎄, 과연 붓다께서 이런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이 불탑을 얼마나 반기셨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사실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감명을 받았던 티벳의 고승분들이나 한국에서도 수련을 오래 하시고 큰 깨닳음을 얻으신 스님들께선 하나같이 많은것을 가지려 하는것은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행위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신걸 여러 매체등을 통해 전해 듣곤 했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스님께서도 자신이 가진 두 박스의 짐을 보고 너무 가진 것이 많다란 말씀을 내게 몇번 이야기 하셔서 그 얘기를 듣던 마음이 제발 저리듯 콕콕 찔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붓다께서는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금부치들 앞에서 과연 얼마나 기뻐 하시려나? 기뻐 하시긴 할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이런 삐딱한 시선을 가져서일까? 불교와 무관한 사람이라서 일까? 생각만큼 쉐다곤 파고다가 흥미롭거나 남다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왔으니 둘러보자라는 마음으로 빙빙 돌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날이 완전히 저물고 쉐다곤 파고다를 향해 조명이 켜지자 이 곳이 유명해진 이유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히 장관이라 할 만큼 황금부치 옷으로 치장한 불탑들은 요란한 황금빛을 뽐내고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은 몇 배가 더 늘어나 있었고 이 장관의 모습을 찍기 위해 바쁜 사람과 기도드리기 위해 바쁜 미얀마 사람들이 뒤엉켜 북적이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 온 사람의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누가 뭐래도 사진이라고, 그 북적임 사이에서 혼자 셀카봉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셀카라는 걸 원래도 잘 찍지 않거니와 셀카봉이란 걸 미얀마 여행을 위해 처음 사서 써보는 탓에 사진기술은 영 꽝으로...도통 어떻게 찍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뚝딱 거리며 이 방향 저 방향 돌려가며 사진을 찍어보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나를 톡톡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혹시 사진 찍느라 누군가에서 피해를 준 건가 싶어 "sorry"를 외치며 돌아본 뒤에는 어제 만났던 부산 내외분이 계셨다.
인연의 끈
"아니,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혼자 사진이나 찍고"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우리 쫌 전에 와서 이미 여기 한 바퀴 둘러보고 왔지. 오늘 저녁에 여기 온다고 해서 우리도 맞춰 왔지"
"아? 정말요? 저도 혹시 오늘 뵐까 싶어서 안 올까 하다가 와봤는데 만났네요."
"우리 아저씨가 어제 도움받은 것도 많은데 밥 한 끼는 사줘야 되는데 하면서 윤오씨 엄청 찾았다.
연락처도 안 받아놔서 여기 오면 볼까 싶어서 왔지"
사람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날 한눈에 알아보시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무작정 찾아왔던 쉐다곤 파고다 인파 속에서 그렇게 여행이 이어준 인연의 끈은 또 한 번 만남의 순간을 이어주었다.
어제는 아무것도 준비를 못한 채 훌쩍 와버리셨다고 하셨던 분들이셨는데 하룻밤 사이에 나도 써보지 않은 그랩 어플로 우버택시 콜까지 벌써 이곳 여행에 능수능란해져 있으셨다. 두 분과 함께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차이나 타운 건너편 끝골목의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젊은 사람에게 괜히 연락처 물어보면 민폐일까 봐 물어보지 못했었는데 밥 한 끼도 못 사준 게 생각나서 오늘 날 만나러 그곳에 오셨었다는 두 분의 이야기에 별로 드린 도움도 없이 거창한 감사 인사를 받는것 같아 부끄러웠다.
왜 혼자 떠나는 여행이 온전히 혼자일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여행 오기 전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은 외딴 나라에 나 홀로 뚝하니 떨어져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외로움 싸움이라도 되는 양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 홀로 여행은 의외로 혼자 이기에 더 혼자가 아닌 여행이란 사실을 이 부산 내외분을 다시 만나며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찬 여행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