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 첫째 날
바간 입성
잠은 못 잤지만 습기 하나 없이 청량한 바간의 공기가 사뭇 기분 좋게 해주는 시작이었다.
우리 셋은 우선 택시를 타고 뉴바간으로 향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가 있었고 동행분들이 예약한 숙소도 그 근처였기 때문에 짐이 많은 두 분의 숙소로 우선 행선지를 정했다.
가는 길에 바간 도시세 25000짯을 내기도 했다. 미얀마에선 관광도시 몇 군데는 도시세를 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 내가 간 경로에서는 바간과 인레가 그러했다. 유적지 중에서는 도시세 영수증을 가끔 확인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잘 챙겨두어야 한다.
도착해서 방 키를 받고 프런트에서 이런저런 이야길 듣고 있는데 우릴 데려다준 택시기사님이 다시 돌아와 택시비를 계산하신 A님께 돈을 건넸다. 이야기인즉슨 A님께서 0 하나가 더 붙은 지폐를 착각하고 내버린 것이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이미 택시는 떠난 지 몇 분이나 지난 상태에서 택시기사님이 발견하고 돌아와 주신 것. 처음엔 택시비가 비싸서 '우리가 바가지를 쓴 걸까요?'라는 이야길 하던 셋은 우리의 의심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과 감동이 동시에 느껴지던 순간에 허기짐도 함께 몰려왔다. 원래 버스에서 식사류를 챙겨주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탄 버스에서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어제 오후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맥주와 안주가 식사의 끝이었던터라 배가 고플만도 했다. 감사하게도 호텔 측의 배려로(A님의 흥정 기술인가?) 그 호텔에서 함께 조식을 해결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옥상에 차려진 야외 식당엔 뷔페 음식들을 보고나니 허기짐은 더욱 심하게 몰려왔다. 다행히 우리밖에 없어 별다른 줄서기 없이 바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는데 한 입 먹는 순간 "아... 너무 맛있다."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틀 동안 배 채우기식의 조식을 먹다가 식사다운 식사를 하니 눈이 번쩍 뜨이고 위장이 춤추는 기분이었달까
별로 비싸지 않던 호텔이었는데 나도 차라리 이곳에서 묵을걸... 난 왜 그렇게 빨리 숙소를 예약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올 만큼 이곳은 조식 맛집이었다.
여행 오기 전에 분명히 미얀마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요리가 맛 없기로 유명한 나라라고들 했는데 소스류가 비싸서 제대로 간 된 것도 적고 음식이 다 밍숭 밍숭 맛이 없으니 음식에 대해선 별 기대말라고들 하느 이야기에 정말 기대감은 온전히 내려놓고 왔는데 왜 먹는 것 족족 이렇게 다 맛있는 건지 내 입맛의 허들이 낮은 건지 그런 평을 써놨던 그분들 입맛 허들이 높은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어쩄건 식사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식사까지 마치고 이젠 내 숙소로 향하기 위해 A님이 바이크를 빌려 나를 태우고 500m쯤은 떨어진 내 숙소까지 배달시켜 주셨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내일 모레 떠날 버스예약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양곤에서 바간, 인레에서 양곤으로 가는 처음과 끝의 버스는 모두 예약했지만 껄로행을 갈지 말지에 대해서 떠나는 그 날까지도 마음속으로 확정 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지를 남긴채 오긴 했지만 결국 원래 계획대로 내일모레 저녁 껄로행을 결심했다.
드디어 숙소에 입성하고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도 여성 4인 도미토리룸으로 현재 머물고 있는 인원은 1명밖에 없는 듯 보였다. 우선 좀 씻고 빨래도 하고 숙소 건물 뒷마당 햇빛이 잘 드는 명당자리에 빨래를 널었다. 9시가 넘어가자 7쯤의 그 상쾌한 바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양곤보다 더 강렬한 햇빛으로 바간을 데우고 있었다. 양곤이 습기를 머금은 찜통더위라면 바간은 들들 볶아버리는 프라이팬 더위라고나 할까?
E-Bike는 처음이라서
별거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오전은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버렸다. 아침나절 동행 분들은 모두 바이크를 빌리셨고 나 또한 바이크를 빌려 동행 분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바이크 샵으로 가 E-bike를 8시간 이용에 5000짯을 내고 대여했다. E-Bike는 이름 그대로 전기로 충전해서 탈 수 있는 바이크로 스쿠터보다 사이즈도 작고 최고 운행속도도 40-50km 정도이고 그나마도 너무 오래된 모델은 이 속도조차 안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면허가 없어도 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스쿠터를 빌리기 위해서 국제면허증이 필요하지만 국제면허증은 고사하고 면허증 자체가 없는 나로서는 선택권이 자전거와 E-bike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영 겁이 나서 자전거를 빌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체감온도가 40도를 웃도는 바간에서 몇십 킬로미터씩 한낮에 자전거 이동은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고 결국 선택권은 단 하나였다. E-bike를 배워서 타는 수밖에
자전거만 탈 줄 알면 쉽게 탈 수 있다고 했지만 대여를 하고 대여해주시는 할아버지의 지휘 아래 연습을 해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간신히 간신히 할아버지께 ok사인을 받고 동행분들이 계신 방향으로 향했다.
두 분 다 나와 달리 바이크 타시는 본새가 능숙하셨다. 그에 비해 난 시속 20km에도 벌벌벌 온몸의 근육 조직들이 다 뻣뻣하게 긴장된 상태로 굳어 버렸다. 특히 날 힘들게 했던 건 자전거 탈 때의 습관 때문에 오른쪽 핸들을 안으로 감아 돌리는 버릇이었는데 결국 그 때문에 두 번 정도는 바이크를 넘어뜨렸고 한 번은 발목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나마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고 어떤 이는 아예 발목이 찢어져서 여행을 그만두었던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마냥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햇빛을 막기 위한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 그 위에 헬맷까지 강제 땀복이 따로 없어 이 또한 고역이었다.
우리는 내 바이크 연습 겸 드라이브 겸으로 도로를 달리다가 1시 반쯤 점심식사를 위해 꽤 그럴듯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밖에는 "마스터 셰프 미얀마 2등 000"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현수막이 벽면 가득 커다랗게 붙어있었고 실내도 굉장히 넓었고 전반적으로 꽤 고급식당이란 건 마스터 셰프 준우승자 현수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을 고를까 하다가 best메뉴라고 하는 피자를 시켰는데... 맛이 있긴 한데 막 그렇게 뛰어난 맛도 아닌 것이 솔직한 감상으론 그냥 비싼 피자였다.
쉐지곤 파고다
다음 발걸음을 아니 핸들이 향한 곳은 바간의 유적들 중 1호 지정되어 있다는 '쉐지곤 파고다'였다. 미얀마 파고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부처님의 머리뼈와 앞니 사리가 봉인되어 있고 미얀마 파고다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쉐다곤 파고다를 많이 닮아있다라고만 생각했는데 파고다들의 모델 격이라고 하는 걸 보면 쉐다곤 파고다가 쉐지곤을 닮았다는 말이 맞는 말일 듯하다.
그리고 쉐지곤 파고다에는 재미난 보물찾기 장소가 숨겨져 있다. 사실 보물찾기 장소라기에도 무색하게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라 무심히 지나칠래도 지나치기 어려울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처음엔 왜 저 바닥의 작은 웅덩이 앞에서 왜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어 서고 빤히 들여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칠 뻔하던 그곳의 비밀은 A님의 호기심 어린 관찰로 덩달아 우리까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도 아니고 호수도 아닌 저 손바닥 만한 작은 웅덩이는 커다란 쉐지곤 파고다를 온전히 품고 있었고 그 모습이 황금으로 번쩍이는 쉐지곤 파고다보다 더 멋지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미 양곤에서 쉐다곤을 보고 와서일까? 쉐지곤과 쉐다곤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 나에게 새삼스럽게 흥미로운 장소는 아니었고 닮은꼴에 규모만 작아진 쉐다곤 파고다를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웅장함이나 규모면에선 쉐다곤이 압도적이라 쉐지곤이 새롭게 다른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후 2-3 시멘트 바닥은 발을 딪고 다닐 부분이 거의 없을만큼 달궈져 있었다.
일몰이 아름다운 바간
쉐지곤 파고다를 나와 드라이브 바람에 땀을 좀 식히기로 했다. 물론 시속 20km로... 땀이 좀 식었을 무렵 일몰을 보기 위해 냥우 타운 쉽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엔 여유로운 출발이었는데 도착할 무렵엔 길을 헤매는 바람에 하마터면 일몰시간을 놓칠 뻔하기도 했지만 운 좋게 아름다운 일몰 타임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었다. 바간에 있는 내내 3일간 일몰을 보러 다녔지만 내 기억에 가장 아름다운 일몰은 바로 이곳이었던 것 같다.
노을 지는 석양과 그 아래 같이 붉게 물들어간 강물과 그 위의 작은 배들은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동행분들께서도 인도가 떠오르는 풍경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셨다. 미얀마를 여행하며 순간순간 나는 인도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석양으로 불게 물드는 이 강의 풍경도, 강물에서 목욕과 빨래와 물놀이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라던지 양곤의 오래된 기차역 플랫폼을 보고도 나는 순간순간 인도가 떠올랐었다.
아름다운 일몰까지 본 것까지는 좋았지만 돌아갈 길이 문제였다. 일몰 다음은.... 칠흑 같은 암흑뿐이었으니까 낮 운전도 온몸에 신경이 바짝 서는 기분이 들만큼 긴장이 되었지만 밤 운전은 더욱 긴장되었다. 가끔이지만 옆에서 큰 트럭이라도 지나갈라치면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스피커가 달려 저 멀리까지 요란하게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동행분들의 오토바이 불빛을 따라 어찌어찌 따라가긴 했으나 동행분들 숙소에서 내 숙소까지 갈 때는 지도 확인하고 달리고 확인하고 달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얼마나 확인했던지 차라리 걷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은 심정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바이크를 반납하고 나자 긴장이 풀린 온몸이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루 종일 힘주고 있던 손목도 시큰거리고 허기짐도 덮치듯 몰려왔다.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 먹고 할 정신도 없고 기력도 없어 가져온 컵라면을 하나 뜯고 숙소에서 밥 한 공기를 사서 김과 함께 먹고 있자니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프랑스 가족의 어린 아기들이 김에 큰 호기심을 보였다. 왜 검은 종이를 먹고 있냐는 반응이었다. 검은 종이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내 모습에 파란 눈동자는 심히 당황들을 하고 있었다. 괜히 장난칠 요량으로 더 김을 먹어댔더니 점점 내 곁에 다가와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별생각 없이 한국 과자를 가져와 건네주었더니 신이나 폴짝폴짝 뛰어가 아빠에게 가서 자랑하다가 압수당하고 시무룩해진 자매 둘의 모습에 내가 괜한 짓을 한 거 같아 미안해졌다.
저녁까지 어찌어찌 해결되고 처음 타본 바이크에 진을 다 빼버렸던 바간의 첫날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처음이라서 힘들었지만 내일은 이보다는 좀 낫기를... 간절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