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4.
심심한 양곤을 떠나 바간으로
양곤 둘째 날
2019 10월 21일
두 번째 아침
양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또 잠을 설쳤다. 또 맞은편 침대의 두 명 때문에... 어제는 4시에 들어와서 난리법석, 오늘은 4시 퇴실하느라 난리법석, 제발 제발~ 불 좀 키지 말아 달라고, 소곤소곤 이야기해놓고 짐 싸느라 그 새벽에 우당탕 대면 무슨 소용이냐고, 어제 아침에 나한테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더니 또 이러기냐고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영어가 부족한 게 이럴 때 한이라면 한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내 잠을 다 깨워놓은채 홀연히 떠나버렸다.
두 번째 날 조식은 빵으로 선택! 먹어보니 밥보단 빵이 먹을만했다. 한창 조식을 먹고 있자니 어제 도착하신 동행 두 분 중 B님이 어느새 양곤 시내를 산책하고 돌아오셨다. 꽤 일찍부터 나가신 산책은 햇빛이 너무 강렬해 혀를 내두르고 1시간 만에 복귀 하셨다는데 이미 땀으로 모닝 샤워를 하신 상태였다.
B님과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며 조식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퇴실 준비를 했다. 배낭 짐 싸기는 아무리 해도 해도 손이 너무 많이 간다. 짐이 많아 자칫하면 짐이 다 안 들어갈 수도 있고 자주 꺼내는 건 위쪽에 배치해야 길바닥에서 배낭에 뭘 갖고 다니는지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 배낭 짐 싸기는 몇 번을 해야 능수능란 해지는 건지 테트리스 못하는 사람은 이런 것도 원래 못하는 건지... 몇 번 싸고 풀고를 반복하며 숙소에서의 마지막 정리를 마무리했다.
심심한 도시 양곤
오늘은 양곤을 떠나는 날이지만 야간 버스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오늘 낮은 동행 두 분과 함께 양곤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서 문을 나서는데 아... 오늘 날씨도 어마어마, 어째 전 날 보다 더 심한 것 같은 건 그냥 내 느낌이려나? 솔직히 양곤이란 도시 자체가 그렇게 재미난 도시는 아니다 어딜 가볼만한가요?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말하는 게 쉐다곤 파고다와 기차 타고 근처 시장을 다녀오는 정도 등이 대부분의 후보이다.
한 마디로 일명 노잼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도시가 난 참 묘하게 매력 있었는데 가보지도 않은 홍콩에 대한 추억에 젖어들게 한달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홍콩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옛날에 봤던 홍콩영화 속 도시들의 느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공통 아픈 역사가 있던 도시여서일까? 양곤은 옛날에 보았던 홍콩 영화 속 도시 분위기를 닮아 있었다. 80년대 홍콩 영화 속에서 보이던 덥고 습하고 찐득찐득하지만 묘한 낭만이 있을 것 같던 그 도시가 있는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쉐다곤 파고다보다 양곤의 골목골목을 다니는 게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져 좀 더 느릿느릿 골목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싶었지만 동행분들과의 여행 취향이 다르다 보니 이번엔 내 취향을 누르기로 했다. 골목투어는 여행 끝무렵으로 미루기로...
시내를 돌다가 첫 번째로 간 곳은 999 샨 누들 음식점이었다. 베트남에 쌀국수가 유명하고 타이에 팟타이가 유명하다면 미얀마는 샨 누들이라는 국수가 대표 면요리이다. 999샨누들은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미얀마 대표 체인 음식점으로 언제나 북적북적 인기가 많은 곳이다. 어제 부산 내외분의 추천으로 이 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는 대체적으로 꽤 먹을만하다고 느꼈지만 자칭 초등학생 입맛이라고 하시던 A님은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다는 느낌이셨다고 하니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이다.
그 뒤로 정션 시티몰을 구경하거나 했지만 역시... 그런 백화점은 어느 나라를 가던지 별로 재미가 없다. 그저 우리의 땀을 식혀준 것에서는 감사한 장소였지만, 계속해서 목적지도 없이 땡볕 아래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자니 어느새 3시가 되어 있었다. 어딜 이동하기도 뭣하고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기도 뭣하고 뭘 먹기도 뭣한 시간 우린 이번에도 부산 내외분께 추천받은 맛사지샵으로 향했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 맛사지샵은 어제 먹었던 삼겹살집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라고 추천 받을 때 사장님께서 넌지시 알려주셨다. 1시간에 4000짯이라는 어마 무시하게 싼 가격으로 나름 꽤 시원하게 호사를 누렸는데 보통 태국 마사지급의 시원함을 기대하면 안 된다. 2000원에 맛보는 호사로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와 근처 차이나 타운에서 맥주 한 잔과 음식들을 먹긴 했는데... 미얀마 물가 자체도 다른 동남아에 비해 저렴한 건 아니지만 차이나 타운은 우리나라 외식 금액에서 아주 약간 낮은 수준? 정도로 미얀마에선 서민들이 사 먹기엔 매우 가격대가 있는 편이다. 차이나 타운이라곤 하지만 그냥 골목 하나 정도가 그런 이름으로 불릴 뿐 대단한 규모의 차이나 타운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아서 기대하고 가게 되면 실망이 대단히 클 수 있다.
여행 취향이 제각각인 세명이 만나 할 것 없는 양곤에서 하루를 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없고 날씨는 찜통이고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구경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것뿐. 그러다 보니 지금 이렇게 그때를 떠올려보며 이야기를 짜내 보려 해도 마땅히 할 얘기가 없다란 사실에 정말 양곤에서 둘째 날이 내 기억 속에 얼마나 희미한 존재가 되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맥주 한잔으로 땀을 식히자마자 나와보니 노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바간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해야 할 시간, 숙소로 가는 길에 B님께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 보는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느냐며 길거리 밥집에 털썩 자리를 잡으셨다. 식탁 의자라기보다는 욕실의자 정도의 작은 의자와 낮은 식탁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주변에서 먹는 밥 한 그릇을 시키시더니 꽤 맛있게 드시며 나에게도 한번 먹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주셨지만 예전에 인도에서 라씨 한 그릇 잘못 먹고 세균성 장염으로 고생을 한번 한 뒤로는 길거리 음식에 대해 겁부터 먹게 된다.
바간행 버스
식사시간까지 끝나고 돌아가 숙소의 배려로 옥상 샤워실에서 샤워까지 마친 후 그랩 택시로 버스터미널까지 이동, 내가 탈 버스 회사와 동행분들의 버스회사가 각각 달랐기에 두 번에 걸쳐 하차를 해야 했지만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었다. 버스 대합실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예매한 용지를 내밀어 티켓을 받고 vip전용 2층 대합실에 올라가자 한국 어르신들이 바글바글, 패키지여행을 오신 단체 어르신들의 들뜨고 긴장된 감정이 들리는 대화 속에 뭍어나고 있었다.
드디어 탑승시간이 되고 짐에 번호표를 붙여 짐칸에 실은 뒤 버스에 올라탔다. 미얀마 vip 버스는 우리나라 우등버스 그 이상으로 잘 되어 있다. 기사님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해줄 승무원 1명이 함께 탑승하며, 물과 식사도 제공 한다. 핸드폰 충전을 위한 플러그까지 준비된 특급버스지만 단, 냉방까지 도를 넘게 특급이다 보니 그 찜통더위의 나라를 여행하러 가는데 긴 외투를 챙겨야 하는 이유가 이 버스 때문이기도 하다. 난 바람막이와 경량 패딩을 챙겨갔는데 이번 버스에서는 바람막이 하나와 구비된 담요로 해결이 되었는데 올라오던 버스에서의 그 추위는... 경량 패딩을 입고도 으슬으슬할 만큼 굉장했다.
미얀마 버스는 잘 달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모두 강제로 내리게 한 뒤 식사 시간을 주는데 정확히는 기사님의 식사시간이다. 식사가 하고 싶지 않아도 30분은 무조건 밖에 나와서 대기를 해야 하는데 운행 초반 시간 때도 아니고 3시간은 족히 달리고서 이런 시간을 갖다 보니 자고 있다 날벼락 맞듯 깨워져서 비몽사몽인 채로 쫓겨나 있어야 할 때도 있다. 다행히 이 때는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한 때에다 단체여행객분들의 가이드분의 설명을 듣고 당황하지 않고 내릴 수 있었는데 후덥지근한 휴게소에서 30분을 멍하니 기다리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다시 버스는 출발 했고, 나의 3일째 밤잠은 또 망해버렸다. 원래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잘 자는 사람이었는데 이 120도 젖혀진 버스에서 앉아 자는게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미얀마에서 따라와주지 않은 운이 바로 잠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2일간 잠에 설쳐 3일째 만큼은 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건만...3일째까지 망해버렸으니 말이다.
잠은 날라갔지만 양곤에서 바간까지 총 10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바간은 오전 7시의 싱그러운 아침 공기로 그나마 피곤한 몸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미얀마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아침이었다.
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