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1.
출발 그리고 여행이 만들어준 인연

by 오늘윤

2019 10월 19일



출발


날이 밝고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공항철도를 갈아타며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행 전철까지 타고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져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도 좀 내려놓고 문 앞에 서서 미세 먼지 하나 없이 파랗고 말갛기까지 한 가을 하늘과 선선한 가을 날씨를 두고 떠나려니 발걸음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남 항공사를 찾아 티켓팅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예상보다 줄이 꽤 길었다. 시간이 촉박할 느낌, 줄을 서며 입고 있던 긴 외투를 벗어 부칠 짐 속에 쑤셔 넣고 신고 있던 운동화와 양말도 집어넣고 크록스와 반팔 운동복 바지 등으로 출국 복장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자리 마다 옛날 학교 양호실에서나 보았던 두툼한 하늘색 담요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혀 덮을 생각이 없던 나로선 저 담요가 여간 성가셨던 게 아니다. 대충 담요를 수납하고 비행기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베트남 항공 국적기는 처음 타보는데 비행기는 쾌적하고 좋았지만 좌석이 자국민 체구에 맞추어진 건지 좌석도 간격도 좁아 체격이 큰 남자일 경우엔 쉽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짐을 싸느라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어 2시간밖에 자지 못했는데 도통 잠은 오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푹 자면 될 것 같아서 그걸 믿고 안 잔 것도 있는데 어쩜 이렇게 정신이 말똥말똥할 수가

베트남 에어라인 / 기내식이 괜찮았다.


기내식까지 챙겨 먹고 나자 그제야 식곤증이 몰려와 잠이 들었다. 한참 단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보니 비행기에서는 어느새 하노이에 착륙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선 1차 6시간 비행은 이렇게 끝이 난 듯 보였다. 좁은 좌석에 갇혀 앉아 있는 것도 우선은 끝이다! 베트남 첫 방문이 하노이 공항 경유가 될 줄이야.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많은 승객들이 공항 밖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한국인 중에서는 나만이 경유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젠 남은 건 4시간의 지겨운 기다림과의 사투다.


인연의 시작


챙겨간 전자책도 읽어보고 수첩에 글도 써보고 핸드폰에 넣어간 드라마도 보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이 지루한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다 문득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 다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 입구에는 직원 한 명 도착하지 않은 상태. 무슨 일이지? 왜 오픈을 안 할까? 혹시 게이트가 변경되었는데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인도에서 이런 일을 한 번 겪은 뒤론 이런 상황에 무척 불안해한다.) 그때 내 앞에 앉아 계시던 한국인 부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혹시 미얀마 양곤행 비행기 타시나요? 지금 3시 반이 다 되었는데 왜 출발 안 하는지 혹시 아시나요?"

"지금 한시밖에 안 넘었는데 3시 되려면 멀었어요"

"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내 시계엔 분명히 3시 반이라고.......... 앗차차;;; 시간을 바꿔놓고 오질 않았다.

핸드폰도 비행기 모드를 아직 끄지 않아 여전히 한국시간이었다. 민망한 웃음만 지으며 멋쩍어 하자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던 두 분은 부산에서 오신 부부분들로 연차를 모아 미얀마로 4박 5일 배낭여행을 떠나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혼자 왔어요?"

"네, 시간이 좀 생겨서 혼자 왔어요"

"아이고 아가씨가 멋지네~ 그래 젊을 때 그렇게 다녀야 된다."

"네^^"


그렇게 이야기의 물꼬가 트이고 가져온 간식도 서로 나누며 각자 다녀왔던 여행지 이야기라던지 미얀마 여행 계획이나 여행 루트 등에 대해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었다. 중년의 두 내외분은 패키지여행보다는 두 분이서 자유롭게 다니는 여행을 선호하시는 편이라고 하며 이번에도 작은 배낭 하나씩 둘러메고 떠나오셨다는 이야기에 주렁주렁 18킬로짜리 내 짐들이 생각났다. 가뿐하고 산뜻해 보이던 작은 백팩 하나씩을 짊어진 두 내외분의 뒷모습이 훨훨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였다.


미얀마행 비행기 환승


역시 시간 때우는 데는 수다만 한 게 없다고 두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지만 아직 우리 게이트 창구는 여전히 오픈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문제가 터진 것은 분명한데 나 역시 영어가 부족하고 주변에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어 보이고 어쩌나 하고 있던 찰나 방송이 흘러나와 게이트가 변경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여긴... 방송을 해주기라도 하는구나. 그럼에도 일정은 꼬이고 밀려 비행기 탑승은 지연되었고 출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4시가 넘어서야 탑승은 시작되었고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미얀마 시간으로 저녁 7시가 되어 양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 국외선보다 자리가 더 넓고 좋았던 미얀마행 비행기
베트남항공은 기내식이 참 맛있다.


드디어 미얀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습하고 후끈한 공기에 동남아에 와있음이 절로 실감 났다.

국내선에서 떨어져 앉았던 부산 내외 분은 먼저 내려 나를 기다려 주고 계셨다. 두 분을 만나 우선 공항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환전과 유심칩! 보통 다른 나라에서는 공항에서 환전하거나 유심을 사는 것이 훨씬 비싸지만 미얀마는 특이하게도 공항에서 하는 환전이 가장 가격을 잘 책정해준다고 한다. 유심칩 또한 마찬가지


한국에서 검색으로 알아왔던 가격을 잘 쳐준다는 환전소를 찾아 저 구석 게이트 앞까지 가서 200달러 환전을 했다. 내 환전 액수에 두 분은 깜짝 놀라시며 그걸로 어떻게 다니려고?라고 기함하셨는데 바간에 가서도 환전할 수 있다고 해서 소액으로 나눠 환전하려 한다고 말씀드리자 두 분은 안심하셨다. 그러나 두 분이 놀라실만한 사실은 그 뒤로 추가 환전은 없었다.


환전을 마치고 게이트 앞 유심을 살 수 있는 대리점에 가자 바로 옆 환전소 환율이 우리가 굳이 찾아간 환전소보다 훨씬 환율이 좋았다. 내 돈이야 소액이라 상관없었지만 두 분은 한 번에 큰돈을 환전하셨던 터라 여간 죄송한 게 아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아저씨께서


"얼마 차이도 안 나네, 저기도 손님은 있어야지. 구석이라 위치도 안 좋구먼. 이런 걸로 일일이 신경 쓰지 마요"


라고 선수 치며 나의 마음을 보듬어 주셨다. 유심은 사전조사에서 추천이 많았던 mpt모바일 유심으로 7000짯 짜리 유심을 선택했다. 친절하게도 직원이 일일이 끼워주고 설정까지 해주는 특급 서비스(?)를 해주는 바람에 챙겨간 클립을 꺼내야 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유심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도 붙고 직원도 붙어 도대체 왜 안되는지 이유를 찾아보려 했으나 도통 답이 나오지 않아 두 명뿐인 직원 중 한 명이 아주머니 핸드폰에 매달려 그들의 일에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답을 찾아냈는데 바로 아주머니 핸드폰이 보급형 모델이었던 것. 이렇게 또 하나 몸소 배우게 되었다.

아주머니 유심 문제까지 해결(?)되고 우리 앞에 택시기사분이 우릴 호객 행위했으나 우리는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두 내외분 숙소도 마침 버스가 다니는 코스라 함께 버스로 이동하기로 한 것


"죄송해요. 우린 버스 탈 거예요"


그 한마디에 난 너무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릴 호객 행위하던 택시기사님은 직접 공항 문까지 열고 나가 어딜 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직접 손가락으로 일일이 설명해 주시더니 다시 호객행위를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뭔가 감격스러울 만큼 놀라운 경험이었다. 두 달 전 인도에 가서 택시기사 때문에 눈물을 한 번 쏙 뽑아본 경험이 있던 터라 그런지 그 순간이 유달리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공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공항버스

후덥지근 습한 공기와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와 등에 등 쪽에 고여있는 후끈한 공기가 간신히 여름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내게 여름의 쓴맛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20분 정도 기다리고 나니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깔끔하고 꽤 신식이었다. 버스요금은 500짯 고정 금액이다. 버스를 30분쯤 탔을까? 두 내외분은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호텔이 가까운 정류장에서 그렇게 인사를 고하고 나는 20분은 더 달려 술레 파고다 정류장에 다다라서야 내릴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술레 파고다? 술레 파고다?라고 물어본 뒤에 친절한 미얀마 사람들 덕에 정류장에 제대로 내려 구글맵을 켜고 숙소를 찾아 또 20분은 넘도록 걸어 거의 10시가 다 되어서야 나의 숙소 백팩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떠나온 지 16시간만이었다.

술레 파고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보인 맞은편 건물
술레 파고다 / 모든 길을 설명할 때 술레 파고다를 기준점 삼아 이야기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빛을 향해 몰려든 모기떼
양곤 내 첫 숙소 백패커 게스트 하우스
숙소에서 내어준 웰컴 드링크

이미 몸은 땀범벅 기운은 쥐어 짤래도 짤 수 없을 만큼 바닥나 있었다. 2층의 프론트에선 5층의 방을 소개해주었는데 4인용 여성 도미토리룸이었고 방에 화장실까지 딸린 방이었다. 침대엔 커튼까지 달려 나름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주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방이었다. 이미 도착해 있던 내 윗 침대를 쓰는 분께 먼저 인사를 건네자


"우리 아까 봤죠?"

"네? 언제...?"

"아까 하노이 공항에서 제가 베트남 항공분들 탑승 시작하신다고 알려드렸던.."

"아~ 네, 기억나요. 어쩜 여기서 또 뵙네요. 아까는 감사했어요."


우리 게이트 쪽엔 일정이 꼬인 비엣젯 항공과 베트남 항공 탑승객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부산 내외분과 떠드느라 탑승 시작 소릴 미처 듣지 못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 한 여성 한국인 분이 우리에게 탑승 시작을 알려주신 고마운 분이 계셨는데 급하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릴 뜨느라 얼굴을 유심히 보지 못했었다.

심지어 유심 살 때도 우리 뒤에 서계셨다는데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부산 내외분들과 연락처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아... 이럴 수가 시간이 맞으면 함께 다니자고 이야기까지 했으면서 가장 중요한 연락처를 빼먹다니... 바보 티는 나라를 벗어난다고 함께 벗겨지는 게 아닌가 보다. 고된 하루였고 긴 하루였지만 여행이 만들어준 특별한 인연 덕에 그 고됨은 잠시 잊을 수 있었던 특별한 시작이기도 했다.



네온사인으로 한 껏 힙해지신 부처님


keyword
이전 02화미얀마 0. 퇴사자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