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9.
새벽 3시, 난데없이 길가에 떨궈지다

껄로 첫째 날

by 오늘윤
껄로에 오긴 왔는데


"일어나요"

"에? 에?"

"얼른 내려요. 껄로에요"

"에? 껄로요?"


잠도 덜 깨서 멍해진 상태로 기사 아저씨의 재촉을 듣고 있었다. 다시금 얼른 내리란 소리에 놀라 다급하게 무릎에 두었던 가방을 챙겨 내렸다. 짐 칸에선 이미 내 짐이 내려져 있었다. 자다 말고 급하게 깨워져 후다닥 내리다가 핸드폰 충전기를 꼽아놓고 내린 게 떠올라 문을 닫고 떠나려던 버스를 붙잡고 자리에서 충전기까지 챙겨 오고 나서야 내가 처한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20191025_034438.jpg


주변은 캄캄하고 아무것도 없는 가로등 하나뿐인 도로 위에 짐 가방들과 함께 떨궈졌고 시간은 정확히 새벽 3시를 갓 넘어가고 있었다. 왜 이 시간에 내가 여기 이렇게 터미널도 아니고 호텔 앞 도로 한 귀퉁이에 떨궈져야 한다는 말인가? 순간 몇 년 전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서 허허벌판 공항 밖에 쫓겨났던 새벽시간이 생각나 그때의 그 공포가 다시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숙소에서 티켓팅을 할 때 8-9시간은 걸린다고 했기 때문에 해 뜰 무렵에 도착할 거라고 계산하고 했던 버스 티켓팅이었다. 버스 출발 후 6시간 만에 터미널도 아니고 길거리에 떨궈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후에 여러 상황을 유추해보기로는 아마 종점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을 중간에서 내려주는 껄로 시간으로 잘못 알려준 게 아닐까 싶다.)


미얀마 여행 이야기 중 뜬금없는 캄보디아 여행 tip.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은 24시간 공항이 아니므로 자유여행을 한다면 도착시간을 너무 늦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벽 1시쯤 마지막 비행기까지 착륙하고 나면 공항은 폐쇄하고 멋모르고 공항에서 밤새고 앙코르와트에서 일출을 보려고 하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가는 공항에서 쫓겨나는 수난을 겪을 수 있다.


글로 풀어놓으니 장황하지만 약 1분 동안의 상황 인지와 순식간에 몰려든 공포감이었다.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잠이 덜 깬 머리를 강제로 굴려보기 시작했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나와 같은 버스에서 내린 외국인 3명이었다. 아마 해만 떠 있었더라도 그들에게 말을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아니 그들을 봤다는 사실조차 잊었겠지만 그땐 부끄러움도 낯가림도 다 사치일 뿐, 무작정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지금 어디로 가나요?"

"카페요"

"나도 같이 가도 될까요?"

"그래요"


아.... 살았다. 그들이 가리키는 손가락 위치에 불빛이 들어온 유일한 간판이 보였다. 미리 알아보고 온 건지 그들은 당황하지도 않고 단번에 그곳이 카페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되었다.

새벽에 문을 연 유일한 식당 같아 보이는 곳이었는데 환한 곳에 들어오자 아까 그 뻔뻔함은 어딜 가고 낯가림 심한 샤이 동양인 여자로 돌변해 그들과 떨어져 가장 먼 자리에 혼자 자리를 잡았다. 새벽의 껄로는 꽤 쌀쌀했기에 따뜻한 짜이 한잔을 시키고 하염없이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 사이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등의 짧은 이야기를 내게 묻긴 했지만 그 이후엔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뭐 나도 몇 번 스몰 톡을 시도하긴 하긴 했지만 단답형의 대답만이 오고 갈 뿐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세명이 같은 일행이라고 생각했었으나 2명의 남녀는 20대 초반의 스웨덴 커플이었고 한 명의 여성 또한 25세의 젊은 이탈리아 여행자였다. 나이를 서로 밝히고 나자 더 어색해지던 그 분위기에 홀짝홀짝 짜이만 들이켰다.


20191025_030838.jpg
20191025_031218.jpg
나를 구제해준 식당 / 인도에서 보다 더 맛있던 짜이 맛집


스웨덴 커플이 먼저 해도 뜨기 전에 떠나고 5시 15분쯤 되어 나도 아직 해가 뜨기 전 자리를 먼저 뜨기로 했다. 남아있던 이탈리아 여행객에게 인사를 남긴 채 길을 건너 숙소 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숙소까지는 20분이면 간다고 하는데 6시도 안되어서 들이닥치려니 여간 마음이 찜찜한 게 아니었다. 물론 숙소 후기에는 아침 일찍 들이닥친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주인아저씨께 감사하다는 글을 보긴 했었는데 그래도 6시도 안된 시각 혹시 주무시고 계시면 어쩌나 걷는 내내 고민이 뒤따랐다.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더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춥고 지쳐있었다.



구세주 같은 국수 한 그릇


그렇게 5분쯤 걸어 코너를 돌았는데 새벽 장사를 시작하시려는 식당의 환한 불이 보였다. 마침 화장실도 이용하고 싶었던 차에 이번에도 대뜸 찾아가 화장실을 좀 이용할 수 있는지를 여쭸다. 따뜻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나를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주시며 이용하라고 허락해 주셨고 그냥 감사합니다란 인사만 하고 나오기도 민망해서 그곳에서 식사하며 시간도 때우는 방법을 택했다.


나를 구제해준 국숫집


1000짯짜리 샨 누들 1그릇, 진한 고기 국물에 독특한 미얀마의 향신료가 느껴지는 쌀쌀한 새벽에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었지만 따뜻한 국수가 들어가자 몸에 온기가 돌며 기력이 조금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국수 한 그릇에 배도 채우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기력까지 채우고 시간까지 벌었다. 1000짯으로 너무 많은 것을 얻고 있었다.


느긋하게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있자니 껄로를 잠재웠던 짙은 어둠이 걷히고 숨겨졌던 껄로의 모습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국숫집을 나서며 "감사합니다." 단 한마디의 인사를 남기고 왔지만 그 안엔 정말 덕분에 살았다는 내 진심이 담겨 있었다.


껄로의 새벽


내 짐은 처음부터 무거웠지만 껄로에서 처음 맞는 그 아침엔 그 어느 때 보다 무겁고 힘이 들었다. 뭐라도 꺼내서 버리고 갈까 싶을 만큼 짐 무게에 내가 폭삭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매번 속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인지 못했던 구글맵에서 걷는 시간 17분은 역시 이번에도 뻥이었다. 구글에서 테스트할 때는 발에 모터를 달고 했던 건지 숙소가 산속에 위치한 건 인지하고 계산을 한 건지... 아니면 내 다리에 보이지 않는 추가 달린 건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이젠 도저히 걸을 힘도 짐을 버텨낼 체력도 없어...라고 생각할 즈음 구글은 곧 도착지점에 도착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드디어 나의 숙소 티토하우스가 보이는데 새벽의 일출이 뒤에서 비추는 것인지 피곤해서 눈에 헛것이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 티토 하우스 뒤로 후광이 비추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행히도 티토 하우스의 사장님 티토 아저씨와 직원분들은 조식 준비로 모두 일어나 계셨고 너무 이른 숙박객의 방문을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이젠 정말 실신...... 직전이다.

티토 하우스






keyword
이전 10화미얀마 8. 안녕...파잉파이, 안녕...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