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 셋째 날
바간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이제 남은 거라곤 일몰 매니아의 마지막 일몰 구경의 피날레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첫 날 손목이 시큰거리도록 힘들었던 E-바이크 타는 것도, 체감온도가 40도 넘는 날씨도, 일몰 매니아에게 매일같이 새로운 곳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던 시간들도 모두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여행의 반절이 지나갔다는 소리기도 했다. 미얀마에 온지 벌써 6일째, 보통 휴가와 연차를 모아서 다니던 내 여행이었다면 다음날이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있어야 할 일정이지만 아직도 지나온 시간만큼의 여행기간이 남아있다는건 낯설지만 설레는 기분이었다.
바간을 떠나는건 아쉽지만 내겐 아직도 새롭게 만날 여행지가 두군데나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간에서의 남은 시간에 아쉬움으로 울상짓기 보단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고 떠나고 싶었다.
안녕...파잉파이
그 첫번째 마무리를 하기 위해 탓빈뉴 파야를 찾아갔다. 어제 아난다 사원이라고 착각하고 찾아갔던 파잉파이가 그림을 팔고 있던 사원의 진짜 이름은 "탓빈뉴 파야"였다. 마침 아난다 사원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파잉파이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번 사원을 찾았다. 학교가 끝나면 보통 3시쯤부터는 그곳에서 그림을 판다고 했으니 와있을거라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파잉파이는 그곳에 있었다.
"파잉파이"를 부르르며 손짓하자 산토끼마냥 폴짝폴짝 생글거리며 뛰어왔다.
"학교 다녀왔어?"
"네"
"잠깐 나 따라올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쫄래쫄래 쫒아왔다. 파잉파이를 데리고 근처에 있던 슈퍼로 향했다. 가져왔던 과자도 동이 났고 뭐 하나 주고 싶어도 줄게 없어 결국 슈퍼로 들어가 먹고 싶은 간식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파잉파이는 처음엔 주저 주저 하더니 결국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들었다.
"그거면 돼?"
"네"
음료수 하나로 얼굴 만연에 만족함이 드러난 소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좀 더 챙겨주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국에서 과자 좀 더 가져올걸, 나올 때 율무차라도 챙겨 나올걸 그랬나. 매번 이런 아쉬움은 무한 반복이다. 파잉 파이를 데려다 주러 돌아가자 파잉파이의 엄마가 와계셨다. 혹여나 자릴 비워 혼이 날까 싶어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파잉파이의 친구에요."
"안녕하세요"
"제가 파잉파이를 데리고 저기~ 다녀왔어요."
"바간에 여행 왔어요?"
"네, 그런데 오늘 떠나요"
"바간은 좋았어요?"
"네 바간도 좋았고 파잉파이가 재밌게 놀아줘서 더 좋았어요"
파잉파이를 통해서 오고간 이야기지만 파잉파이의 어머니는 이야기가 오가는 내내 파잉파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괜한 나의 설레발 선수치기였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젠 진짜 이별해야 할 시간, "파잉파이 안녕, 잘 있어. 다음에 또 봐~"
일몰:부파야 파고다
이제 진짜 마지막 일정 일몰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번 일몰 스팟은 '부파야 파고다' 이라와디 강을 등지고 커다란 종모양의 파고다가 있는 일몰 포인트라는데 바간의 서쪽 끝에 위치한 파고다였다. 부파야 파고다까지 보고나면 정말 이젠 바간을 떠나는 일 밖엔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내가 다시 이런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기분을 느껴볼 날이 과연 올까? 바간에 다시 오는게 아니라면 절대 없을 일이겠지..
우선 다른건 다 둘째치고 내가 사는 한국의 도시에는 이렇게 15km로 달려도 아무상관 없는 텅텅빈 도로는 없으며...면허를 따고 바이크를 살 수 있다 해도 이런 뻥 뚫린 기분의 질주는 바간이 내겐 유일무이한 곳이란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바간의 파고다를 더 못보는게 아쉬운게 아니라 더 이상 이 바이크를 탈 수 없다는게 가장 슬프고 아쉬웠다.
서서히 바간에서 보는 3번째 일몰이 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북적임에 좁은 공간탓에 진득하니 앉아서 일몰을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첫날의 일몰 장소가 가장 베스트 장소였다면 부파야 파고다는 일몰 포인트 장소로 그닥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장소로 꼽겠다. 공간도 협소한 탓에 느긋한 감상같은게 불가능 했다.
약간 아쉽긴 했지만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일몰이었다. 바간은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에 최상의 도시였었다. 사람이 사는 밀집 지역 말고는 숲과 파고다 말고는 없고 강까지 끼고 있고 이름 모를 파고다들까지 널려 있으니 관리되지 않는 파고다에 올라가 일출과 일몰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만큼 이 보다 더 일출, 일몰에 최적화된 도시는 없었다.
안녕...바간
일몰까지 보았으니 이제 나는 진짜 돌아가야 할 시간 마지막 바이크 주행을 끝으로 바이크 대여점에 바이크를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와 가방을 찾았더니 내가 묵었던 방을 아직까지 체크아웃 하지 않고 기다렸으니 방에 가보라며 키를 건내주셨다. 아...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하는 사장님은 보이질 않으셨다.
시원한 내방에는 내가 놓고갔던 위치에 그대로 내 짐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숙소를 운영하면서 체크아웃 시간에 민감할 법도 한데 무례한 실수만 저지른 여행객에게 이런 호의라니, 미얀마에 와서 도대체 몇번째 감동의 뭉클함인지 조차 세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선 가방부터 빼서 프론트에 맡겨놓고 샤워를 하고 뒷마당에 널어둔 빨래를 거두어 가방을 챙겼다.
이제는 날 데리러올 픽업 차를 향한 무한 기다림 8시가 좀 넘는차라서 7시 쯤엔 픽업차가 올거라고 했지만 픽업차는 그보다 20분은 지나서야 도착했다. 직원들이 함께 내 짐을 실어주고 사장님으로 착각했던 직원분은 마중까지 나와 다음 또 오라며, 여행 잘 하길 바란다며 크게 손을 흔들어 마지막 인사를 작별의 인사를 건냈다.
"감사했어요. 모두들"
하지만 픽업 차량은 나를 이별의 서운함에 오래 젖어 있게 놔두질 않았다. 포터 뒤에 위자와 손잡이가 달린 형태의 픽업차는 마치 도축시장에서 팔려가는 가축이 된 묘한 기분이랄까? 거센 바람에 머리는 사방 팔방 깨춤을 추어대는데 가방을 잡고 있어야 하니 손하나 까딱 할 수가 없고 커브라도 돌라치면 한손을 가방을 지키고 한손은 봉을 잡고 버티느라 이별의 서운함이고 뭐고 이 픽업차에서 온전히 잘 버티어 내는게 급선무였다. 버스터미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건지 30분을 넘게 달려서야 망나니 꼬락서니로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번 버스는 jj도 아니고 페이머스도 아니고 나도 처음 보는 회사버스였는데 같은 vip라지만 페이머스와 차의 퀄리티가 많이 차이났지만 이 차 역시 과도한 에어컨만큼은 페이머스에 뒤떨어지지 않게 틀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걸 발견했는데 말로만 듣던 화장실이 있는 버스였다. 물론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화장실이 있는 버스라니 오~ 조금만 더 용기 있었더라면 사용 한 번쯤 해봐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제서야 든다.
그 밖에도 차의 내부는 바간에 올 때 타고 왔던 버스보다 많이 낡고 오래되었고 담요도 너무 낡고 너무 진한 방향제 냄새가 진동을 해서 덮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앞 뒤 간격이 좁아 다리받침대를 올리면 다리를 쭉 뻗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지만 (그때문에 잠에서 여러번 깨야만했다.) 피곤했던 탓인지 금새 까무룩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아침이 될때까지 푹 자고 있으면 될줄 알았었다. 갑자기 기사님이 날 흔들어 깨우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