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로 첫째 날
티토 하우스가 피로를 치유해주는 숙소였다면 껄로 시장은 없던 생기마저 불어 넣어주는 비타민같은 곳이었다. 옛날 시골 5일장을 닮아있던 껄로의 5일장은 사람도 넘치고 생기도 흘러 넘쳤다. 사람들의 차림새나 느낌에서도 양곤, 바간과는 또 전혀 다른 멋이 있어서 미얀마 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기 매력이 다른 세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마저 들만큼 독특함이 있었다.
5일장에는 강에서 잡은 생선, 채소, 과일, 불단에 올릴 꽃들까지 정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만물시장이었는데중심 도로 길을 사이에 두고 양방향으로 넓게 자리 잡은 그 규모 또한 상당했다. 이런 5일장을 모르고 숙소 방에 들어가 잠만 잤더라면 일어나서 땅을 치고 후회 했겠다 싶을만큼 껄로 시장은 재밌었다.
똑딱이 작은 카메라를 들이미는 나를 보며 상인들은 예쁜 미소로 때론 쑥쓰러워 오히려 경직된 표정으로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되려 모른척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본인들이 찍힌 사진을 보여줄 때면 무엇이 그렇게도 재밌는건지 깔깔대며 웃어댔다. 가끔은 무례하게도 먼저 사진을 찍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있는 자연 스러운 그들의 모습을 담아 보고 싶었다고 초라한 변명을 덧붙여 보지만 분명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사진은 꼭 당사자에게 보여주며
"내가 당신을 찍었는데 이 사진 제가 가져도 괜찮아요?"라는 의미의 몸짓, 손짓 동원 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서 그들에게 허락을 구하곤 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단 한명도 예외없이 허락을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찍은 본인들의 사진을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감사했고 사진 한장에 이토록 행복해하고 즐거워 하는 그 모습에 덩달아 나까지 행복해졌다. 즉석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있지도 않은 즉석카메라에 대한 아쉬움이 생겨났다.
미얀마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모두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란 인상이었지만 껄로는 특히 그런 인상이 더 강했는데, 시골 사람들 특유의 순박함과 깨끗함이 주름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 한 가득 만연하게 뭍어났다. 영어로 1,2,3이란 말도 못 알아듣는 시골 사람들이었지만 정이 넘쳤고 웃음이 넘치고 예쁜미소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이런 감상을 보고 어떤 이는 여행간 한낱 이방인의 시선에 씌워진 콩깎지로 바라본 자기만의 환상일 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지 않을까? 여행자의 콩깍지를 쓰고 바라 본다고 똑같이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다는 걸, 결국 그 본질은 콩깍지에도 숨겨지지 않는 법이다.
"밍글라바"
눈이 마주치는 사 람마다 인사를 건냈다.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밍글라바라고 화답해주는 시장상인들의 모습에 껄로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티토 하우스 때에 있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좋은 공기와 숲과 나무도 기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얻는 기운또한 못지않게 꽤 크다. 그 어느 때 보다 시작이 힘들었던 껄로지만 좋은 숙소와 5일장의 좋은 기운은 나를 힘솟게 해주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많은것이 재밌고 인상적이었지만 장사하는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들, 장보는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광경 또한 옛날 시골 배경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기에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자주 향하게 되었다. 물론 누굴 따라나온건지 모를 혼자 시장을 배회하던 아이도 있었는데 혼자 오토바이 번호판을 쓱싹 대며 닦고 노는 아이의 뒷모습을 찍어 아이에게 보여 주었는데 표정이 뾰루퉁한게 마음에 드는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동그란 까까머리와 통통한 볼살이 너무 예뻐 몇 컷의 사진을 더 찍어 아이에게 보여줘 봤지만 여전히 무반응, 밍글라바 인사도 해보고 계속 쪼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일어나 이제 가볼게라고 손을 흔들려고 하니 아이가 대뜸 내 두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버렸다. 응? 갑자기? 이렇게 내 다릴 붙잡는다구? "난 이제 가야해~" 아이가 알아 듣지도 못할 한국말로 아이를 달래 보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손을 끌어당겨 다시 주저 앉게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별다르게 뭘 하는건 아니었다. 자신을 찍었던 사진을 한번 더 보더니 또 오토바이 번호판을 만지작 만지작 그 와중에 내가 잘 있나 한번씩 확인해 보고 번호판 보고 날 보고 번호판 보고를 반복할 뿐
다리에 쥐가 날거 같아 다시 내가 일어나자 아이는 다시 나를 붙잡기 위해 다가왔고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아이와 계속 있을 순 없어 "미안해, 가야해"라고 인사를 하고 물러났고 아이를 아는 분인지 보호자 분인지 모를 근처에서 지켜보던 상인분이 아이를 붙잡아 주셔서 자리를 쉽게 뜰 수는 있었지만 발걸음을 떼면서도 아이가 내 다리를 붙잡던 순간이 멤돌아 마음 한 구석이 시큰거렸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꼬마를 내버려두고 떠난 뒤에도 나는 아이들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들은 정말 투명해서 있는 현재 기분이나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내곤 했는데 그 표정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무심하면 무심한대로 수줍으면 수줍은 대로 아이들은 모두 반짝거렸다. 나만 그렇게 느낀건 아니었는지 아이 사진을 보는 엄마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한 가득, 이 예쁜 아이들을 보고 그 누가 미소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시장구경과 아이들 사진 찍기에 몰두하느라 잊고 있는게 있었다. 시장에 온 진짜 목적, 시간 떼울 요량으로 온 무계획자 같아보였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한 목적 두가지를 가지고 내려온 시장이었다. 원래는 오후 나절에나 오려고 했었는데 조금 당겨졌을 뿐이었는데 그 첫 번째가 내일 떠날 트레킹 에이전시 예약, 두 번째가 트레킹 때 신을 트레킹화 사기였다. 껄로에 온 목적이 트레킹인 만큼 이 두가지는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었는데 노느라 정신이 팔려 본분은 잊은 채 골골골 대던건 다 어디로 가고 2시간째 기운도 좋게 시장을 다 훑고 다니는 중이었다.
정신 차리고 벌써 시간이 11시가 훌쩍 넘어 껄로의 햇살도 새벽의 추위는 거짓말이었던것 처럼 뜨거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12시가 넘어가면 이곳에서 아무리 좋은 기운을 받았다 한들 체력적으로 더 버텨내질 못할게 뻔하니 서둘러야 한다.
구글 맵으로 '엉클 샘'을 검색했다. 블로그에서 가장 많은 후기가 보였던 에이전시였다. 사실 그 주변엔 꽤 많은 에어진시가 있지만 블로그에 주로 리뷰된 에이전시는 엉클샘이 압도적이었다. 거의 독식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한국인들 사이엔 유명한 트레킹 에이전시였다. 이곳 트레킹 에이전시의 시초격인 에이전시라고 하는데 주로 농가, 학교 등을 도는 코스와 미얀마 소수민족에 마을을 돌며 설명을 덧붙여 주는 코스이며 숙박은 민가에서 한다고 한다.
5명에서 80명일 경우 30,000짯
4명일 경우 35,000짯
3명일 경우 45,000짯
2명일 경우 60,000짯
1명일 경우 100,000짯 등으로
엉클샘의 경우 내가 신청하려고 했던 1박 2일 기준으로 명수에 따라 차등금액이 매겨 지는데 내가 찾아갔던 시간에는 신청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우선은 내 이름을 첫번째로 올리고 신청 마감시간즈음인 오후 늦게 찾아가 모여진 인원을 확인 후 확정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고 엉클샘을 나왔다.
엉클샘을 나와 또 다른 에이전시를 찾았다. 엉클샘 이외에 유일한 2개의 후기를 갖고 있던 정글킹이라는 에이전시였는데 정글 킹은 인원 수에 상관없이 30,000짯의 고정금액으로 인원수에 상관없이 내일 아침 9시에는 출발한다고 한다. 솔깃하긴 한데 오후에 엉클샘 신청 인원까지 확인 후에 결정 내리기로 하고 다시 시장으로 나섰다.
첫번 째 목적은 해결했는데 문제는 없는거 빼고 다 있는 시장에 도통 신발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에이전시에 물어봤지만 시장 안에 있을거라고만 이야기 하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질 않는게 제대로 아는것 같지가 않아보였다.. 분명 인터넷에서 신발을 현지에서 사서 신었다는 후기를 봤는데 어디서 산건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정작 사야 할 신발은 구경도 못한채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잔뜩 사고, 길거리에서 파는 코코넛가루와 찰밥을 나뭇잎에 쪄서 파는 찰밥 하나와 생수 쇼핑만 해버린 상황이었다. 다행히 길을 찾고 자 하는 이에게 길은 나타나기 마련인건지 어렵사리 찾아낸 신발가게에서 그 와중에 예쁜거 고른다고 1000짯 더 비쌌던 5000짯 짜리 트레킹화까지 사고나서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시장에서 사온 과일들을 까먹으며 처음 시도해보는 길거리 음식인 바나나 잎에 싼 찰밥을 코코넛 가루에 찍어 먹는 순간, 왜 달랑 저것 하나만 사온건지 후회가 밀려오고 당장이라도 시장으로 달려가 열댓개는 사오고 싶은 심정이 들만큼 너무 맛있었다. 새벽 국수 한그릇 이후로 먹는 첫 음식이었어서 유난히 더 맛있었던건지도 모르겠지만 귓가에 천사의 종이 울리는 맛이었다.(슴슴한 음식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에 따른 맛평가이다. 굉장히 주관적임)
아쉽지만 찰밥으로 배를 채울 순 없어서 과일 몇개를 더 까먹고 샤워를 하고 아침에 입고 온 옷을 빨아 내다 널고 나니 이젠 정말 티토하우스와 시장에서 받아 끌어올린 기운도 정말 바닥이 난건지 맥이 탁 하고 풀려버렸다.
때 마침 갑자기 내리는 빗소리는 자장가 같고 비를 머금고 더욱 진해진 창가 너무 나무 냄새는 고된 피로를 살살살 녹여냈다. 그렇게 스르륵하고 잠이들어버렸다.
그렇게 세 시간쯤 잤을까? 미얀마에 온 이후로 이렇게 달콤한 꿀잠을 자본적이 있던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으로도 피로는 꽤 풀려 있었지만 너무 오랫만에 자보는 단잠이라 꼼짝도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벌써 4시가 다 되어 있으니 해가 지기전에 에이전시에 찾아가 예약 확정을 지어야 했다.
다시 산길을 내려가 에이전시를 찾기전에 아끼 샀던 찰밥부터 찾아나섰다. 어지간히도 맛있긴 했는지 일어난 이후로 내내 내 머릿속에 찰밥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찰밥은 빨리 쉴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이른 오전에만 팔아서 지금은 살 수 없다는 주변 상인의 슬픈 전언만 들을 수 있었을 뿐. 내 찰밥은 그렇게 떠나갔다.
찰밥은 물건너 갔으니 엉클샘으로 가서 예약목록을 확인하니 여긴 또 외국여성 2명만이 추가 되어 있을 뿐 더 이상의 예약자는 없는 듯 했다. 이대로 3명이면 45000짯인데 좀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사실 이 때 쯤엔 내 마음 속 언저리엔 트레킹을 포기하고 껄로에 하루 더 머무는건 어떨까하는 유혹이 자꾸만 꿈틀대던 중이었다.
그 만큼 껄로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선은 엉클샘 예약은 취소하고 낮에 찾았던 정글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글 킹에는 내일 출발 하는 1박 2일 트레킹 예약자 목록에 독일 여성 두명이 예약돼 있어 출발은 확정된 상태였는데 문제는 선뜻 트레킹에 대한 마음이 굳혀지지 않았다. 낮에 즐거웠던 껄로 시장이나 하루종일 숙소에 머물러도 좋을 것 같은 티토하우스가 아른 거리며 정말 트레킹을 해야 하는걸까?에 대해 깊고 긴 고민에 빠져버렸다. 한참을 에이전시 앞 의자에 앉아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론은, 처음 그 계획대로 후회하더라도 한번 해보고 후회하자라는 심정으로 예약자 세번째 줄에 내 이름을 올렸다.
이 순간이 내 여행을 그렇게 뒤 흔들줄은 전혀 모른 채
정글킹 앞에서 내 고민 시간이 너무 길었는지 어느덧 해는 저물어 있었는데 정글킹 바로 아래에 있던 화실에 멋진 그림들에 둘러 싸여 작품 활동에 매진중인 아저씨를 발견하고 또 슬그머니 발을 들였다. 조용히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신 아저씨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너무 멋있어요. 훌륭해요."
"내가 다 그린 그림이에요."
"우와~ 대단해요."
"어떤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들면 찍어가도 좋아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아저씨가 그리신 화폭속 그림들을 훑어나갔다.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이 좋았다. 주로 미얀마 소수민족을 그린 그림이 많았는데 그림 속 얼굴 주름에도 웃음에도 그림자 하나에도 그 들의 삶의 흔적이 뭍어나 보여 무엇하나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파잉파이도 커서 화가가 된다면 이런 멋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될까?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유럽에서 착취 당하고 있는걸까?
여유가 된다면 그곳에 있는 그림 한 점 정도는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천천히 두 눈으로나마 그림들을 눈에 담아보았다.
에이전시 예약도 했겠다. 그림 구경하며 문화생활도 누렸겠다. 아까 먹은 맛없는 파이가 성에 안찼던건지 노점에서 볶아대는 국수냄새가 코끝을 넘어 위장까지 자극해댔다. 양곤에서까지만 해도 길거리 음식은 쳐다도 안봤는데 양곤을 넘어 바간을 건너 껄로까지 입성하며 꽤 많은게 변해 있었다. 배 앓이를 걱정해서 고집했던 생수양치물은 바간에서 수돗물로 바뀌어 있었고 길거리 음식 또한 이젠 거리낌이 없었다.
그냥 흔한 샨누들 집인줄 알고 찾은 노점 식당인데 알고보니 이 집은 화교가 하는 중화요리 집이었다. 앞에 담긴 야채와 재료들을 보여주며 못먹는게 있는지부터 물어봐 주셨지만 그런게 있을리가요. 다 넣어 주세요.라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씩 웃으시며 화통하게 재료들을 쓱쓱 담아 웍 위에서 화려한 불쇼와 함께 국수를 볶아주셨다.
수제 햄버거에 이어 중국식 볶음면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세상에 2000짯짜리 국수라곤 믿을 수 없는 맛에 감동이 밀려왔다. 정말 다시 돌아가서 트레킹을 취소하고 내일 다시 찰밥이나 사먹고 저녁엔 여기와서 볶음 국수나 먹다 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꾹꾹 눌렀다. 미얀마에 온 뒤로 가장 맛있던 음식을 껄로에 와서 하루에 연타로 두 번이나 맛보게 되다니 그 누가 껄로를 노잼의 시골마을이라고 했는가. 나는 파고다 100개보다 껄로 시장과 이 맛집들이 더 좋은데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딱 1박으로 마무리 해야한다는게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었다. 후에 이 맛을 잊지 못해 한국에 돌아와 중국식 볶음면을 찾아 몇군데를 찾아 다녀봤지만 저 때 먹은 저 국수의 비슷한 맛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흐르는 시간마저 아까워 붙잡고만 싶던 껄로의 첫날 밤이자 마지막 밤은 아쉬움만 더 해지게 하늘에 별은 왜 그리도 많은지...그저 모든 걸 잠시만이라도 붙잡아 멈춰있고 싶었던 너무 행복해서 아쉽기만한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