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

by Muswell

아이를 키우다 보면 원치 않아도 유전의 힘 또는 저주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눈, 코, 입, 손, 발 등 아이의 신체부위는 물론이고 이 녀석이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보통 아내와 나 둘 중 한 명을 그대로 닮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다른 취향을 가진 부분에 있어서는 과연 아이가 누구를 닮았을지 예측해 보는 재미도 있기는 하다. 아이가 미술과는 원수진 삶을 살았던 나의 취향을 물려받았을지, 아니면 미술에 어느 정도는 소질이 있는 아내를 닮았을지가 아이를 미술관에 데려가기 전 우리 부부에게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1. 내셔널 갤러리

정식 명칭: The National Gallery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입장료: 무료

위치: Charing Cross 역(Northern Line, Bakerloo Line), Embankment 역(Northern Line, Bakerloo Line, Circle Line, District Line)


이 미술관도 영국 박물관에 버금갈 정도로 런던에서 유명한 명소로 연중 관람객들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이 곳을 아이와 방문하게 된 계기도 어머니와 동생이 런던에 놀러 왔을 때 같이 구경할 겸 데려간 것이었다.


역시 관광객들과 같이 들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처음 내셔널 갤러리에 왔을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로 건물의 동선이 안내하는 대로 시대 순서를 따라서 관람을 한 것이었다. 이 경우 중세 종교화부터 보게 되는데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예수와 온갖 성인과 성모 마리아 등이 수없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다. 당연히 아이도 지루한 기색을 보였다.


아이와 같이 갔을 때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오히려 시간 순서를 거꾸로 하여 근대의 그림부터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반 고흐 등 익숙한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보다가 점점 시대가 멀어지고 그림이 익숙해지지 않을 때쯤 관람을 그만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본다.


전체적으로 아이는 거의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미술 취향은 불행하게도 나를 닮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렇지만 내셔널 갤러리가 아이를 데려가기 좋은 박물관이 아니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박물관과 비슷하게 관람객이 많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 이에 더하여 보통 박물관은 아주 조용한 편은 아닌데 미술관은 아이가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 눈치가 보일 정도로 조용한 경우가 많아 어려움이 더했다.



2. 테이트 모던 미술관

정식 명칭: Tate Modern

홈페이지: https://www.tate.org.uk/visit/tate-modern

입장료: 무료

위치: Southwark 역(Jubilee Line), Blackfriars 역(Circle Line, District Line)


테이트 모던은 유학 첫 해에 살던 지역에서 가까워서 꽤 자주 간 곳이었다. 템즈 강변의 발전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00년에 개관한 미술관으로 현대 미술을 테마로 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미술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뭐 이런 것까지 미술이라고 하나 싶을 정도인 전시물도 많았지만 몇 번 가다 보니 전시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끔씩 현대미술 작가들을 주제로 한 기획 전시를 보다 보면 처음에는 그럭저럭 멀쩡한 작품들을 생산해 내던 사람들이 후기에는 점점 난해해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역시 일단 성공하고 나면 막살아도 용서가 된다는 인생의 교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은 아이를 데려갔을 때 내셔널 갤러리에 비해서는 호기심을 보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엄숙한 내셔널 갤러리보다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자유로웠고 여러 가지 신기한 전시물에 흥미를 느껴서 그런 모양이다. 그림 외에도 온갖 조형물이 많아 아이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어 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미술 알못인 내 피가 어디 가지는 않아 금세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테이트 모던도 유명하지만 주변 지역에도 온갖 명소가 산재해 있다. 바로 앞에 템즈 강이 있고 걸어서만 건널 수 있는 밀레니엄 브리지가 있으며 이 다리를 건너면 세인트 폴 대성당이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시야가 탁 트인 날에는 동쪽으로 타워 브리지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 좋은 여름날 방문한다면 런던의 정취를 느끼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테이트 모던 6층에서 보는 템즈 강변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해가 짧은 겨울날에 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



요약

미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화가 지망생이 아니라면 굳이 미술관에 아이를 데려가지는 말자.


* 이 글은 영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인 2020년 2월 이전에 아이와 미술관을 방문했던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timeout.com/london/news/the-tate-modern-and-tate-britain-reopen-in-london-today-07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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