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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주 김석민 법무사 Dec 25. 2021

 그 한이 산이 되고, 바다되어

2021. 8. 19. 오창 여중생 백일 추모제를 하다.

    


2021. 8. 17.  전쟁의 서막


미소 부친 박순원 씨에게 너무 갑질을 한 게 아닌가 싶어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최악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전투력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답변이 왔다.


“그러면 아버님이 미소 추모사를 써서 오시죠..”

“그거 법무사님이 써 주시면 안 돼요. 제가 딸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습니다!”

박순원 씨의 말이 너무 이해가 된다.

"그렇게 합시다!"     

오창여중생 100일 추모제를 위해 충북일보에 낸 광고



2021. 8. 18. 그 한이 산이 되고 바다 되어


아침에 걸어 출근하며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구상을 한다. 1시간을 걸었지만 글이 착상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를 켰다. 뚜렷한 착상은 없어도..     

그래도 직업이 ‘글쟁이’인데 대충 쓰지 않겠는가.. 희망을 갖고... (법무사라는 직업은 변론을 하지 못하니 글로 표현하는 글쟁이이다.)


자판에 손을 얹자..

눈물이 난다.

아무 생각도 없다.     


미소 아버지의 심정으로 글을 쓰려 하자 감정이 이입된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도대체 글이 나가지 않는다.


원래 눈물이 없는 성격인데...     

그렇게 3시간이 흐르고..     

어찌 됐든 박순원 씨에게 추모사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판을 두드렸다. 글이 나가는 대로 그대로 쓴다.

     

「추모사」

‘딸아! 딸아! 이쁜 딸아! 너의 추모사를 이 아빠가 읽을 줄은 몰랐다... 너를 성폭행한 그 사람은 술은 먹였지만 성폭행은 안 했단다... 수많은 아이들이 성폭행으로 너처럼 쓰러져 그 한(限)이 산이 되고 바다가 될 때까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너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형벌을 감수하며 아빠의 죄를 갚으련다..’     


박순원 씨의 딸 미소에 추모사, 박순원 씨도 이 추모사를 읽을 줄 몰랐다.

단 한 번의 퇴고를 할 힘도 없다. 그대로 박순원 씨에게 글을 넘겨주었다.
 ‘읽어 보시고 수정할 거 있으면 말씀해달라.’     

카톡이 왔다.

‘법무사님 못 읽겠어요. 그냥 내일 그대로 할게요.’


이제 청주시민에게 드리는 글을 쓴다. 역시 박순원 씨는 읽지도 못했고 그대로 확정했다.     


「청주시민에게 드리는 글」

‘청주시민 여러분....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바로 세워져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쁜 아이들의 영혼이 살인되는 성폭행 범죄가 더 이상 없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그런 세상이 되기를, 그런 세상이 오지도 되지도 않는다면 한 명 한 명이 손을 잡고 힘을 합쳐 억지로라도 그런 세상을 만들기를 90만 청주시민 여러분에게 피 끊는 마음의 호소를 드립니다.’     

100일 추모제에서 청주시민들에게 드리는글

2021. 8. 19. 백일 추모제


장소는 구제일은행 사거리. 충북은행 앙로 지점이 있던 곳에 영화관이 들어서 있고, 제일은행 자리에는 쇼핑타운이 자리를 잡고 있다. 25년 전 제일은행에서 업무 마감 후 본사로 송금을 하던 기억이 문득 난다.


택시를 타고 도착하여 몇몇 단체와  시 의원들과 함께 ‘기억할게’주제로 기자회견을 했다. 미소 부친 박순원 씨가 추모사를 읽는다.


기자들은 셔터를 누르고

박순원 씨는 눈물을 흘린다.

      

앞으로도 미소와 아름 같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생겨야, 아이들의 한이 산이 되고 바다가 되어야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고쳐줄지 의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회견도 끝나고 추모제도 끝나는 때,

박순원 씨가 묻는다.

“법무사님. 그런데 이 추모제 오늘만 하실 건가요?”

이런 여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추모를 하기 바라는 것이 정상인데 추모제를 며칠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처음 계획할 때는 피해자 유족들이 참여한다는 생각도 못했었다.      


급히 의견을 교환하여 추모제를 8월 19일부터 8월 22일까지 4일을 하기로 했다. 막상 해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21일부터 비가 내리고, 강풍은 불었다.


누군가는 지켜야 했고... 막상 지키는 사람은 없고...     

비도 내리고 강풍이 불어 전시대를 끈으로 묶어 놔야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2021. 8. 19. 이날 이 사건 해결의 최초의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서울에서 내려와 취재를 다. 담당 PD는 어린 왕자가 생각나는 스타일로 차분히 말을 다. 


담당 PD, 미소 부친 이렇게 셋이서 커피를 마신다. 언론에 노출을 꺼려하던 박순원 씨는 과연 ‘그것이 알고 싶다’에 촬영에 협력을 할까?

    

박순원 씨는 원래 걱정이 많은 소극적인 성향이다.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전투의지를 갖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언론에 노출이 되면 오히려 딸의 명예가 손상이 될까 걱정이 많다.

    

“아버님. 정의의 여신은 천칭 저울을 들고 있는 건 맞아요. 다만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오로지 저울 양쪽의 무게에만 반응을 해요! 즉 돈이든, 힘이든, 악이든, 깡이든 뭐든 한쪽이 더 많으면 그 저울은 기울어집니다. 정의의 여신은 기울어진 이유는 보지 않아요. 무게에 따라 그에 반응하는 것일 뿐 그게 법이에요!"


박순원 씨가 고민을 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버님이 증거를 찾을 수 없으면 언론이라도 증거를 찾게 하셔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셔요.”     

 

“PD님 동의서 주세요!”    

 

박순원 씨의 결정.. 이 결정에 조언을 한 책임

이렇게 해서 이 사건은 본격적으로 전쟁터로 달려가고 있다.
     

추모제 4일만(그중 2일이 공휴일이었으니 업무에 지장이 없다) 버티어 주면 되고, 적어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지만 4일은 버티어 줄 수 있지 않겠어...


이 생각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완전히 빗나갔다.

지나 보니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청주 여중생 #오창 여중생 #성폭력 #성폭행 #강간 #피해자 #법률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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