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크역에서 내려 풍차마을로 걸어서 갔다. 암스테르담 번잡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평화가 눈에 들어왔다. 간척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풍차를 직접 보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조하고 비옥한 땅 놔두고 왜 늪지를 개간해야 했을까. 한편, 공예품 판매점에서는 네덜란드인들의 상인 정신 일면을 체험하기도 했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풍차마을은 지구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처럼 네덜란드만의 고유한 풍치를 찾아온 것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특히 많이 보였다. 이태리, 미국인 가족, 독일인 단체 관광객, 일본인 개별관광객도 많았다. 세계를 누비며 탐험 중인 한국 배낭여행자와도 적지 않게 마주쳤다.
목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 무리도 보인다. 이곳이 낙농업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치즈 가공시설도 있어 들어가 보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즈를 만드는 도구를 살펴볼 수 있었고, 시식도 했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네덜란드는 왜 10,000개나 되는 풍차를 세워야 했을까
네덜란드인들이 풍차를 도입한 것은 1200년대이었다. 451km에 달하는 북쪽 해안선이 북해(North Sea)와 접해있다. 1년 내내 북해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의 나라다. 풍차는 바다를 메워 땅을 개간하는 간척사업에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 이유는 북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많은 양의 바닷물을 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둑을 쌓아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다음, 풍차로 둑안의 물을 빼 땅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땅에 사람들은 가축을 사육하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해안선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더 건조한 땅이 있었을 것이다. 농사에도 적합한 토지 말이다. 초기 네덜란드인들은 해수면보다 높은 지대를 포기하고 왜 하필 물이 많아 질퍽한 늪지로 가야 했을까 궁금해졌다. 농사에도 부적합하다. 홍수와 범람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지대다.
네덜란드 치즈가 유명해진 이유
기원전 800년 경에도 네덜란드인이 치즈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은 농사보다는 가축사육을 더 우선시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토양의 특성에 있다고 한다. 저지대 토양은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 축축했다. 대신 소와 양, 염소를 위한 목초지로서는 완벽할 정도로 적합했다. 중세에 낙농업자들은 치즈를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치즈시장이 1266년에 할렘(Haarlem)에서 문을 열었고 점차로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나갔다. 네덜란드 치즈가 국제적으로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소위 말하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였다. 네덜란드인들은 세계 모든 곳으로 떠났고 치즈도 함께 가져갔다. 긴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의 식량으로 치즈를 실었다. 딱딱하고 장기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고다(Gouda)나 에담(Edam) 같은 네덜란드 치즈가 점차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원예산업이 발달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고 한다. 간척지 토양, 즉 점토와 모래, 흙이 섞인 토질에서도 잘 사는 식물이 튤립이다. 사질토는 물 빠짐이 좋아서 튤립 재배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치즈 (사진 출처 : pixabay)
공예품판매점에서 들은 반가운 우리말 ‘주석’
풍차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갔다. 정교하게 만든 물건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금속으로 만든 잔이 궁금해졌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물어보았다. 매장을 지키고 있던 주인은 술잔이 “tin, 주석”으로 만들어졌다고 답했다. 영어와 우리말 단어 ‘주석’을 섞어 설명한 것이다. 순간 놀랐고 동시에 반가웠다. 주인은 고객이 한국인임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답을 할 때 상대방 국가 단어를 섞어 사용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방문 고객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이 상업과 무역에 성공한 비결이 바로 이런 데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엇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가방에 공간이 허락하지 않아 결국 물건을 구입할 수는 없었다.
참고 :
- 바람이 가득한 곳, 네덜란드 킨더디지크 엘슈트 풍차망. 2012. 9.11. 국가유산청
- 네덜란드는 어떻게 바다에서 땅을 만들어냈는가(How the Netherlands Reclaimed Land From the Sea) 2019. 9. 8. 매트 로젠버스. Thought Co.
- 네덜란드 치즈 문화의 발견 : 요리 여행 (Discover the cheese culture of the Netherlands : A culinary journey) hol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