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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May 11. 2024

불닭볶음면과 호로록

 나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 근 한 달 정도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뭔가를 계속 하긴 하는데, 이건 뭐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그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눈에 보이지 않아 모르는 상태였다. 꾸준히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 이 일이 어느덧 2년이 넘어 3년 차가 되었다. 늘 확신과 안정을 바라는 우리의 뇌와 마음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미래에 의구심을 던졌다. 가끔 찾아오는 이 미래의 불안이 봄바람 살랑 부는 4월에 나를 찾아와 꽃구경도 맘 놓고 못하게 만들었다. 하.


 상황은 언제나 같았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도, 1년이 넘고 2년 차가 되었을 때도 늘 같았다. 다만 그 과정이 즐거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나는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달래고 지속해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일은 꽤 즐겁다. 좋아서 한 일이고 여전히 좋아한다. 다만 내가 이 직업을 택할 때 미처 생각지 못한 힘든 부분이 점점 커져서 좋아하는 마음을 점점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래도 일회성 만남과 가벼운 만남엔 꽤 강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어려움은 없지만, 상대가 조금 깊은 관계를 원하거나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워지면, 난 바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경계를 한다. 나는 상대가 아직 친밀도 1단계인데 상대는 이제 3단계, 4단계로 가자고 하면 난 다시 출입구로 가 문을 닫아 버리는 사람이다.


 휴일이 되면 어김없이 집에 숨는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원래 동네순이었던 나는 이제 집순이가 되었다. 카페, 도서관, 서점, 미술관, 공원 등 혼자 노는 곳이면 어디든 갔으나, 이젠 어디든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고양이와의 삶이 중요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난 일하는 동안 사람에 치여서 휴일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이유가 크다. 맞춤 대화 상대를 자처했던 나이기에 휴일엔 그저 집에서 편하게 누구에게 맞춰주니 않고 긴장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싶음이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름 좋지만, 한편으론 활기차게 여기저기 다니며 나답게 살았던 과거가 그립다. 그땐 일할 때에도 그리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었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외출도 종종 하던 내가 가끔 생각난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고 그림과 책 구경을 하고 멋진 공원이나 동네를 찾으러 다니던 휴일이, 가장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던 그때가..!


 날씨가 따뜻했던 어느 휴일, 봄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방 구조를 바꾸고 대청소를 했다. 고양이들과 살아서 그런지 겨울엔 유달리 집안에 짐이 많다. 담요와 방석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먼지를 털고 돌돌이를 돌리고, 쓸고 닦으며 정신없지만 조금은 느긋하게 청소를 했다. 실컷 청소를 하느라 놓친 점심을 대신해 이른 저녁으로 불닭볶음면을 먹었다. 야채를 넣어 볶고 계란과 치즈를 첨가했다. 어제 사둔 와인과 함께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테이블 옆 냉장고에 제리가 올라갔다. 누워있는 모습이 퍽 귀여워 면을 먹다 말고 계속 제리를 올려다봤다. 그 어떤 유튜브 영상보다 재미있는 건 우리 집 고양이가 아닐까 싶다.


 내년 말, 지금의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다. 이 일이 싫어진 것도 아니고 아파서 쉬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다채로운 삶을 바랐는데, 지금은 삶의 중심이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때라고, 그러기 위해선 잠시 쉬어가야 한다고, 지금이 그럴 결심을 해야 할 때라고 머릿속에서 신호를 주었고, 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와인을 홀짝이며 해가 져 가는 창 밖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용기를 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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