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gi Aug 16. 2024

퍼펙트 데이, 퍼펙트 데이즈

 지난 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누워 영화 예매를 했다. 전날 저녁에 영화를 보기로 하고, 인사이드아웃과 퍼펙트 데이즈 중에 고민을 했다. 결국 못 정하고 다음 날 아침에 정하자며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 퍼펙트 데이즈를 봐야지! 싶었다. 아는 사람 중 3명이 내게 추천을 했다. 사실 나도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것 같았다. 영화를 예매하고 나서 조금 더 늦장을 부리다가 일어나 집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영화를 보기 전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갈 예정으로 집을 나섰다. 시간은 거의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해 커피를 마셨다. 사장님들과 친분이 있어 인사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곧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슬슬 준비를 할까, 했더니 사장님께서 마침 혹시, 고민 없냐? 고 물으셨다. 아, 사실 난 고민이 있다. 계속 내 맘 속에 있던 고민. 사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기도 했고, 이왕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기도 했기에 다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의견을 지지해 줄 것 같았기에, 난 좀 응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영화 시간이 임박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뛰어가면 금방이니 얼른 출발을 했다. 절반 정도 왔을 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꽤 굵은 빗줄기가 뚝뚝. 올여름의 특징 중 하나라면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는 것. 그 짧은 10분에 내가 밖에 있다니,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건물 아래에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나는 뛰었다. 아! 비를 이렇게 맞아 본 게 얼마만이야, 심지어 뛰는 중..!


 헐레벌떡 영화관에 도착을 했다. 다행히 무사히 입장 가능. 잠시 아까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닦고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다행히 극장 안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지 않았다. 너무 춥지 않았고 옷은 참 잘 말랐다. 차분하게 시작하지 않고 조금 격하게 시작했더니 오히려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 오늘 뭐 한 건지.


 영화는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가득 나왔다. 단정하고 규칙적인 일상, 자전거를 타고 가는 단골 식당, 공원에서 먹는 간단한 점심, 사진 찍기, 서점에서 책 사기, 휴일 루틴 등 화려하고 뛰어난 영상미와 스토리는 아니지만 나에겐 감탄이 나오는 멋진 영화였다. 다만 내가 비를 맞고 뛰어서 에너지를 소모했더니 영화가 끝날 즈음엔 갑자기 타코야끼가 먹고 싶었다. 그 뜨겁고 고소 짭조름한 타코야끼. 지금 먹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가 끝났다.


 영화를 보고 나와 뭔가를 사러 가는 길에 작은 공원을 만났다. 진분홍의 꽃이 예쁘게 핀 배롱나무와 아래엔 보라색의 맥문동이 보였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오후 4시, 차분하고 볕이 예쁘게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목욕탕을 다녀온 듯 상쾌했다. 나무 사이로 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코모레비 구나! 하며 나도 사진을 찍었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은 늘 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며 나무 사이에 비추는 햇볕을 찍는다. 영화가 끝나면 쿠키 영상으로 코모레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코모레비 -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빛...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아, 주인공은 그 순간을 소중히 살아가는구나. 지금을 사는 사람이다.


 저녁은 본가에서 먹었다. 타코야끼대신 엄마가 끓여 준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먹었다. 허기진 배가 엄마 밥으로 가득 채우고 나니, 속이 데워진 만큼 마음도 데워졌다. 엄마가 싸준 반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하게 비를 맞았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좋은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나의 생활을 돌아보고, 따스한 밥으로 위를 채웠다. 사소하지만 좋은 것들로 가득 채운 날이었다. 끊임없는 불안과 걱정은 늘 나를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단단한 삶을 만들어 갈 테다. 단단한 삶이란 매일 조금씩 다져가는 것, 좋은 날은 좋은 날들이 된다. 그것이 이날의 교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