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피로가 몸을 누르던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밥 달라고 보채는 우리 집 첫째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침대 위로 친히 올라와 얼굴 바로 옆에서 우는데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면 혹여나 내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시계부터 찾아보니 아직 알람 울리기 10분 전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더 자기 딱 좋은 날씨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2시간 빨리 나가야 하기에 서둘러 침대를 벗어났다.
6월 내내 제대로 쉬지 못해 피곤해진 몸이, 어제는 요가 매트 위에서 1시간가량 잠이 들었다. 요즘 계속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늘었음에 잠 시간이 줄어들고 나의 건강 관리에 소홀해졌다. 불안함과 걱정에 차라리 눈이라도 떠 있자는 심산이었다. 어제는 퇴근 후 고양이 화장실 청소까지 해 주느라 체력을 모조리 끌어 썼더니 평소보다 더 몸이 무거운 아침이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장마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어제 퇴근길엔 슬리퍼를 신고 내리막을 내려오다 방지턱이 미끄러워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었고 오른쪽 발등이 살짝 긁혔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내려오다 생긴 일이다. 오랜만에 넘어져서 어이없이 더 지쳤다. 그 비는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발등은 여전히 따끔거렸다.
뻑뻑한 눈을 부릅뜨며 가게로 도착 해 할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 가게의 정화조 청소를 하기로 한 날이어서 커다란 차량이 가게 앞에 세워졌다. 도착 시간을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건물주에게 조금 화가 났다.
'문 열어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말을 안 해주는 거지..?'
약간 신경이 곤두섰다. 청소 결제 건으로 건물주와 통화를 했다.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꾸 나에게 본인의 일을 넘기려 하는 태도에 또 나의 신경은 또 긁혔다. 월세를 내는 나는 관리인이 아닌데 왜 본인의 일까지 나에게 떠 넘기려 하는 걸까, 하는 쌓여있던 일들이 떠오르고 신경질이 났다. 말에 가시가 심겨졌다. 작은 일이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일 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고, 결국 약간 기분 상하여 통화는 종료되었다.
"청소는 다 마쳤습니다. 혹시 커피 되나요..?"
정화조 청소를 마친 직원분께선 커피를 주문하시며 새벽에도 왔는데 그때 못 하고 오픈 시간에 맞춰 오려했는데 오픈 시간을 몰라 지금 오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매번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세워져 있는 입간판과 주차금지 표지판을 옆으로 치워두어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가끔 가게 출입문을 막고 주차를 하는 차량 때문에 세워둔 입간판이 항상 옆으로 치워져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걸 보고 혼자 화를 낸 적도 있었는데 큰 차가 지나가기에 빠듯한 길에서 나의 입간판이 얼마나 귀찮은 존재였을지 생각하니 오히려 미안해졌고 평소 간판 치우시며 짜증을 내기보다 오히려 미안해하며 기회가 되었을 때 커피를 사 주시려는 그 마음이 되게 낯설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하루를 시작하신 분의 피로를 모를 수가 없었고, 몰래 화를 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해 커피는 무료로 드렸다. 비가 내려 습하고 더운 날씨에 아이스커피가 그분에게 조금의 피로라도 털어내 버릴 수 있길 바라며.
"저는 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하며 직원 분은 조금 수줍게 병음료를 건넸다. 피로해소, 자양강장이 쓰여있는 구론산이었다.
'아, 지금 내게 딱 필요한 것..' 속으로 말을 뱉으며 감사하다고 웃으며 받았다. 고생하세요, 수고하세요 인사하며 그는 돌아갔다.
짧은 대화와 작은 선물이 오늘 나의 기분을 완전히 바꾸었다. 난 아마 내가 힘든 것을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바쁘고 힘든데, 그게 혼자여서, 외로워서 마음이 조금 꼬였었었다. 그래서 오늘 전혀 모르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에너지 드링크를 받아 한숨에 입으로 털어 넣고 빈 병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었다. 다 마신 빈 병이지만 한동안 나의 에너지 채움 역할을 할 소중한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