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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6. 2024

하이파이브

  

날이 더없이 맑고 깨끗하다. 장마 중에 이런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보다니 G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와 오믈렛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마당을 청소했다. 그동안 내린 비로 쌓인 정원 구석구석의 쓰레기를 한데 모아 정리하고 화분들도 오랜만에 양지바른 곳으로 잠시 자리를 옮겨줬다. 빗물에 젖어 축축해진 카페 간판과 현관문은 걸레로 닦아 냈다. 


“오빠”


대문을 들어서던 윤이 손을 흔들어 G를 불렀다. 

“대청소해요?”


G는 들고 있던 걸레를 양동이에 넣고 수돗가로 가면서 윤에게 고개로 카페를 가리켰다.


“알았어요. 커피 내릴게”


G는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걸레를 빨았다. 물기를 꼭 짜고 탈탈 털어 화분 옆의 돌계단에 펴서 널었다. 손에 묻은 물기를 한 번 털고 햇볕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오전인데 햇살이 따갑다. 


윤은 카페를 둘러봤다. 주방. 화장실은 물기 없이 뽀송하고 깨끗하다. 자신의 부재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부지런한 주인장은 혼자서도 뭐든 잘한다. 윤은 커피를 내렸다. 갓 볶은 신선한 원두의 향이 카페를 가득 채웠다.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짤랑’

문이 열리고 G가 들어왔다. 윤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정신이 들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온 G는 아일랜드 바에 앉아 윤이 내려 준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뭐 나 없어도 완벽하네. 내가 여기서 영향력 없는 존재라는 게 좀 기분 나빠. 하지만 날씨가 좋아서 다 용서!”


윤이 투정하듯 말했다. 윤은 생각보다 밝고 기분도 괜찮아 보였다.


“하나 고것이 오빠한테는 별 얘기 다 하죠?”


G가 웃었다.


“며칠 전에 아주 작정하고 부모를 들이받았어요, 청소하다 침대 밑에서 담배랑 라이터가 들어 있는 파우치를 발견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뭐 그 맘 때 호기심에 술 담배 이런 거 하고 그러잖아요. 그냥 모른 척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필 밤에 연락도 없이 늦게 왔어요, 남편도 그날따라 화를 많이 내고. 나도 무슨 일 있나 좀 캐물었어요.”

“나는 잘못했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너무 피곤하니까 자고 일어나서 더 야단맞을 거라고 하더니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남편도 나도 너무 황당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다음 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는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온 건 잘못했대. 그런데 자기도 할 말 있다며 아주 야무지게 일장 연설을 했어요.”

“자기 사춘기다. 어른인 엄마나 아빠가 이해해라. 공부는 정말 하기 싫다. 하지만 공부 대신 뭘 하고 싶은진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가르쳐 줄 거 아니면 좀 내버려 둬라. 정해지면 알려 줄 테니까. 그리고 화장하고 옷 짧게 입고 담배 피우고 좀 늦게 들어온다고 전부 비행 청소년 아니니까 요즘 애들이 어떤 지 공부 좀 하래요.”


윤은 다음 말을 잊어버릴까 봐 마음이 바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내 딸이 그렇게 말 잘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를 마셨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표정이다. G는 하나가 어떤 표정으로 말했을지 상상이 가 배시시 자꾸 웃음이 났다.


“오빠 웃지 말아요. 난 심각했단 말이야. 내가 왜 며칠 동안 카페에 안 왔겠어요? 휴우.~ ”

남은 커피를 마시며 윤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하나한테 세게 돌직구 맞았어요.”

“내 인생이나 행복하게 살래요. 자기는 공부 못해도 행복하게 살 자신 있으니까 엄마나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거 하면서 잘 살래, 자기한테 자꾸 물어보지 말고,

“하긴 이 나이 먹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면서 자식만 채근했으니 하나 눈에도 내가 우스웠겠죠?”


침묵이 흘렀다. 


“돌아보니 겁나서 도망 다니느라 진 빠진 인생이더라. 떠밀려 살아온 것처럼 남 탓하고 상황 탓하고. 며칠 반성 중이이에요. 근데 아직 해결책은 잘 모르겠어요. 오빠가 좀 가르쳐요. 입 다물고 있지 말고.”


윤이 장난스럽게 살짝 눈을 흘기며 G를 쳐다봤다. 


“며칠 하나 눈치 보느라 일부러 씩씩한 척 기분 좋은 척했어요. 자 이제 네 엄마 잘 살지? 너도 제대로 살아. 이렇게 보여주려고. 근데 시한폭탄 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자식이 스승이 래더니 하나 덕에 인생 수업 제대로 하게 생겼어요. 응원해 줘요.”


윤이 오른손을 들어 G에게 하이 파이브를 청했다. G도 오른손을 들어 응대했다.


오랜만에 카페에 나가 오빠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늘 그러하듯 오빠와의 대답 없는 대화는 내 안의 소란스러운 혼잣말을 잦아들게 해 줘요.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허락이나 동의 없이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어요. 보호나 양육을 이유로 하나를 통제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져요. 하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하나를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로 여기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더 정직하게 말하면 그저 딸아이가 나를 자신의 우주로 알았던 의존적이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로 그냥 머물러 있길 원했어요. 하지만 하나는 나를 보호자로서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살피고 판단하고 있었어요. 

자기만 보면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걱정만 하는 엄마를 보면 답답하대요. 마치 자기 때문에 엄마가 불행한 것처럼 행동하지 말래요. 자기 기억에 엄마가 행복했던 적이 별로 없대요.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 옆에 있으면 세상 살기 싫어지니까 자식 핑계 대지 말고 제발 엄마나 행복하게 살래요. 하나의 강펀치는 매섭고 강력했어요. 

항상 내가 보는 하나의 모습만 신경 썼지 내가 딸에게 모습으로 보일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음이 창피했어요. 

돌아보니 나는 늘 망설이며 선택하지 않는 것들에 미련을 갖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내 우울함의 원인이 이런 나의 태도에 있음을 알았어요. 딸은 나를 정신이 번쩍 나게 했어요. 하지만 통증이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하나가 나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엄마의 행복한 삶 자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부러라도 자꾸 행복한 척을 해요. 지금은 서툴러도 언젠가는 스스로 인정할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의도적으로 행복하게 살기! 오빠가 응원한다고 눈으로 말하네요. 오빠의 따뜻한 눈빛이 큰 힘이 돼요. 고마워요. 

    

윤의 가슴에서 햇빛에 반짝거리는 초록색 이파리들이 흩날리다 지의 가슴에서 환한 빛이 되어 퍼져나갔다. 


며칠 뒤 하나는 국어 학원을 제외한 학원과 과외 수업을 모두 그만두었다. 대신 일 주 일에 두 번은 국어 학원, 주말에는 미술 학원에 간다. 본인이 결정했다. 그 외의 시간은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학원가지 않는 날의 귀가 시간은 10시로 정했다. 하나의 의견을 들어보고 윤과 남편이 합의한 것이다. 하나는 약속대로 학원에 빠지지 않았고 귀가 시간도 잘 지켰다. 윤은 하나 일로 전전긍긍하지는 않았다. 에너지를 나눠 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지나를 만나 원고도 써야 하고 집안일과 카페 일까지 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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