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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6. 2024

파티

크리스마스. 드문드문 손님이 왔다. 한가하다. 윤은 오지 않았다. 점점 날이 흐려진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나 싶다. 6시. 더 이상 손님은 없다. 

“짤랑~”

카페 문이 열렸다. 윤이다.  


“오빠~”


지는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양손에 내용물이 가득 찬 비닐봉지를 들었다. 


“저녁 안 먹었죠? 카페 문 닫고 우리 파티해요. 크리스마스잖아. 선영이도 오라고 했어요.”



“건배”

지와 선영과 윤은 와인 잔을 가볍게 부딪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영과 윤은 서로의 잔을 채워줬다. 지는 처음 잔을 반쯤 비우고 식물도감을 폈다. 와인 한 병을 다 마셨을 때 지는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려 했다.


“오빠 여기 그냥 좀 있어. 우리 취하면 오빠가 책임져야지. 옛날에도 그랬잖아.”


선영이 약간 취기가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지는 일어서려다 엉거주춤 도로 앉았다. 지는 선영과 윤을 번갈아 쳐다봤다.  윤이 발그레한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일 접을 거야.”


선영이 입을 뗐다.


“관리만 잘하면 평생 일 안 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더라고.”

“하긴 너 그동안 너무 일만 했어. 좀 쉬어야 해. ”

“그런데 지나는? 다시 연예인 한다면?”


윤이 물었다.


“관두려고 튄 거 아니겠어?”

“그런가? 하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일을 영영 그만두지 못할까 봐 그랬을 수도 있겠다. 퇴로를 차단하고 배수진을 친 걸 수도. 연예인이라는 일을 좋아하는 만큼 힘들었나 보네.”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의 속은 잘도 안다. 그러는 넌? 넌 괜찮아?”

“처음엔 걱정되고 무섭고. 다 내 책임인 것 같아 자책했다가 하나한테 엄청 화가 나다가 지금은 그냥 덤덤하네.”

“해탈했냐?”

“그냥. 그런데 하나가 어리지만 좀 대단해 보이기도 해,”

“뭔 헛소리?”

“그동안 자꾸 하고 싶은 게 뭐냐며 하나를 괴롭혔잖아, 그런데 요 며칠 가만 돌아보니까 그거 사실 내가 나한테 하는 소리더라. 이 나이 먹도록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망설이고 헤매는 나한테 짜증 내는 거. 하나는 그래도 답을 찾으려고 행동했잖아. 나보다 용감한 거 같아. 뭐라도 시도해 보는 용기?” 

“야! 집 나간 딸이 용감하다고? 정신 차려. 들어오면 혼을 내야지.”

“나는 겁쟁이야.”

“그래 그래. 너 쫄보야. 니 딸은 너 안 닮아 집 나가서 무지하게 용감하고. 됐지? 하나는 별일 없이 들어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나 돌아오면 작업했던 책이나 출판해. 지나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잔말 말고 계속 글 써.”

“일 접을 거라며?”

“하던 거 마무리는 해야지.”


선영은 단호하다.


“근데 하나만 묻자. 내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하거든. 운명적인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그거 입에 달고 살더니 갑자기 하나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은 왜 했냐? 선보고 몇 번 만나지도 않고. 지금도 이해가 안 돼. 뭐 하나 아빠가 남들 모르는 치명적인 매력이라도 있냐?”

“아니 그냥 미친 거였지.”

“맞네. 내 추측이. 너 미친 거였어. 흐흐”


선영과 윤은 서로 키득거렸다. 지도 보던 책에서 눈을 떼고 웃었다.


“야 윤아 우리 오빠 말문 트려나 보다. 방금 소리 내서 웃는 거 들었지?”


선영과 윤은 깔깔대고 웃었다. 윤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더 꺼냈다. 

“우리 오늘 오랜만에 달려 볼까?”


세 사람은 맥주를 한 캔씩 들고 건배했다. 


“그때 너랑 나랑 술만 먹으면 했던 약속 생각나? 네가 시나리오 쓰고 내가 그걸로 영화 만들어서 칸도 가고 베니스도 가자고 했던 거.”


선영이 들떴다. 


“술김에 말로 만리장성을 쌓은 거지”


윤이 장단을 맞춘다. 


“야 그래도 나는 우리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어. 영화사 막내로 들어가 아무리 힘들고 배알 꼴리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버텼다. 네가 배신 안 했으면 나도 사장 아니고 감독했지. 아깝다. 도망갔다 돌아오는 거야 네 특기 다 만 그렇다고 갑자기 결혼은 좀 아니잖아.”

“좀 말리지 그랬어?”

“미친년 또 남 탓이야?,”

“공모 당선되고 두려웠어. 한 번 잘했다 실패하면 더 힘들잖아. 시작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땐 미래의 불확실성이 그렇게 무섭더라. 그런데 처음 만난 남편은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사람이야. 직장도 성격도 취향도. 그냥 인생에 상수만 존재하는 사람. 그래서 결혼한 거야. 내 인생도 어디엔가는 닻을 내리고 싶었거든. 야 웃긴 건 자식이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네. 완전 바보 같지 않니? 결혼하지 말고 불확실성의 세계로 나를 확 던져 버릴 걸 그랬어? 흐흐.”

“소설 쓰고 있네.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어디에도 널 확 못 던져. 항상 망설이고 그러다 도망가고 나중에 후회하고. 그냥 선택해서 책임지는 게 싫다고 해라.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서 결혼했으면 그걸 누리면서 잘 살면 되지. 또 자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징징대고. 그만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하고 헤매다 인생 종 칠래?”


지가 윤과 선영을 번갈아 쳐다봤다. 


“선영야 네 말이 다 맞아. 그래서 이젠 그렇게 안 살려고.” 

“그래? 그럼 어떻게 살려고?”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선영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세 사람은 맥주 캔으로 힘차게 건배하고 남아 있던 술을 다 마셨다. 


‘띵동’

윤과 선영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지나와 하나가 함께 웃고 있는 사진.

‘엄마 아빠 나 지나 언니랑 지내다 개학 전까지는 들어갈게. 메리 크리스마스. 걱정하지 마.’

‘선영 언니 메리크리스마스. 나 잘 지내. 미안해. 곧 만나.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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