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 아름다운 인생살이

by Sabina


50 중반이 된 덕구는 경기도 수원 근교, 동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다. 주말에는 부업으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마당 넓은 기와집을 개조해 아내와 펜션으로 운영한다. 틈틈이 이웃들의 농기구 수리, 주택 보수 설비까지 철철이 사람 손이 필요한 농촌 살림의 다양한 일을 해준다.


덕구는 천성이 착했다.

그가 태어난 해 경부고속도가 개통되었다. 당시 많은 농민은 헐값에 삶의 터전을 국가에 넘기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수원 일대의 곡창지대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덕구네의 모든 선산과 논밭은 국가 수용 토지 대상에서 교묘하게 비껴가 있었다.


덕구 할아버지는 모두 조상의 은덕이라며, 이를 기려 장손의 이름을 아홉 가지 군자의 덕을 행하며 살라는 뜻으로 덕구라고 지었다. 그러나 덕구는 다 자라서도 9가지 군자의 덕이 무엇인 지를 정확하게 헤아려 보지는 않았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덕구는 어려서부터 동네 누구라도 ‘덕구야’라고 부르면 달려갔다. 동네 사람들에게 ‘덕구야’는 급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응급 호출 같은 거였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확실치 않다. 그냥 바쁘면 부잣집 장손을 불러내 잡다한 심부름을 시키거나 다급하게 일손이 필요하면 덕구부터 찾는 일이 마을의 자연스러운 관례였다. 덕구의 부모도 별 불만은 없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빈곤한 삶으로 내몰렸을 때, 자신들만이 고난을 피해 갔음에 대한 이웃과 세상을 향한 보은의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었다.


덕구는 책 읽기 좋아하고 공부를 잘하는 동생들과 달랐다. 체구에 비해 힘이 세고 다부졌다. 농사일도 잘하고 농기구 다루는 걸 좋아했다. 해서 덕구가 커 갈수록 동네 사람들이 덕구를 부르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덕구는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어려운 사람의 형편을 살피고 보살피기도 했다. 젊은 사람이 없는 노인네들 집에는 겨울이 오기 전 나무를 한 짐 져다 주었고 모내기나 추수 때면 남자가 없어 일손이 턱 없이 부족한 여자들만 사는 집에 가 알아서 일을 했다. 시내 약국에 나가 노인들의 약을 대신 지어다 주고 장날이면 내다 팔 물건들을 자전거에 잔뜩 실어다 주기도 했다.


남들의 어려운 사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덕구의 행동에 부모가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시내 양복점에서 맞춰준 모직 코트를 추위에 떨고 있던 길거리의 동냥하는 아이에게 벗어주고 온 날. 덕구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들에게 화를 냈다.


“이놈 덕구야. 정신 차려라. 너부터 온전히 살아남아야 남들도 도울 것 아니냐?”


자신의 도시락을 친구에게 주고 종일 쫄쫄 굶고 집에 오거나, 서울 사는 삼촌이나 고모들이 선물로 준 귀한 과자나 학용품을 곤란한 아이들에게 전부 줘버려 동생들의 원성을 잔뜩 듣는 날.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를 대신해 부모와 상의도 없이 자기 것을 내어주고, 벌서고 나머지 청소까지 하고 늦게 집에 온 날.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이타성을 부모가 나무랄 때면 덕구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인단 말이에요. 어떻게 그걸 못 본척해요. 그리고 내가 도와줘서 사람들이 기뻐하면 너무 행복해요.”



덕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타고난 박애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덕구는 경기도 수원의 지금은 나이 든 사람만 몇몇 남아 농사를 짓고 마을 근처에는 아파트가 생기고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선, 낳고 자란 동천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세월이 흐르고 덕구네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덕구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손자에게 유언을 남겼다.


“우리 집 장손 덕구야. 이름대로 잘 살거라. 이 땅은 꼭 지켜야 한다.”


하지만 땅 부자였던 덕구네 알짜배기 전답들은 서울로 공부하러 간 덕구의 삼촌 고모들, 이후엔 덕구의 동생들 교육비를 위해 팔려 그 규모가 점점 줄었다.

덕구 아버지는 조상 때부터 살았던 터를 지키고 있는 큰아들에게 선산과 과수원 얼마 남지 않은 논, 그리고 집 등 모든 유산을 큰아들에게 상속하고 돌아가셨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대학 학비와 유학 비용으로 이미 큰돈이 들어갔고 다들 유산 없이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서울에서 기반을 잡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그간 덕구가 자신들의 몫까지 부모님을 정성스럽게 돌봐드렸음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5시. 덕구는 늘 그렇듯 마루로 나와 창문을 열었다. 어스름하니 동이 텄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니 해 뜨는 시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덕구는 깊고 느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아직 자는 아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씻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 후 마당으로 나왔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생활하시던 한옥의 안채와 사랑채를 몇 년 전에 손을 본 후 주말에만 외지 사람들에게 대여를 해주고 있다. 대신에 마당 한쪽 볕이 잘 드는 곳에 아담한 남향집을 새로 지었다.

막내까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 취업하고 나니 아내와 둘이 살기에는 집이 너무 컸거니와 그동안 자신을 만나 고생 많이 한 아내를 이젠 좀 편히 살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부엌이랑 욕실이 예쁘고 편리해서 너무 좋다며 기뻐하던 아내를 보며 덕구는 뿌듯했다.


덕구는 아내를 군 생활 중에 만났다. 덕구가 강원도 화천 전방 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때,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향을 떠나 지낸 3년 남짓한 시간이었다. 수송 차량 운전병이었던 덕구는 휴가나 외출을 나가고 들어오는 병사들의 이송을 담당했었다. 부하에게 관대하고 인정이 많았던 상관은 덕구가 읍내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약간의 돈과 자유 시간을 주곤 했었다.


그때 늘 가던 간판도 없는 작은 백반집. 아내는 그 식당 주인 할머니의 손녀이자 유일한 혈육이었다. 활달하고 명랑한 아내는 사람 좋아 보이는 덕구에게 유난히 친절했다. 덕구가 주문한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 덩어리가 크고 실했다. 고등어자반은 특히나 두툼했다. 어떤 날은 초코파이나 꿀떡 같은 간식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 덕구는 나중에야 아내의 그런 행동이 자신에 대한 이성적 호감에서 나온 행동임을 알고 굉장히 멋쩍어했다.

덕구가 제대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내는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날 부대에 급하게 덕구를 찾는 아내의 전화가 왔었다. 춘천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가기 위해 외박을 신청하는 덕구에게 담당 소대장이 관계를 물었을 때, 덕구는 자신도 모르게 결혼할 여잡니다고 대답했다.

실지로 덕구는 장례를 마치고 제대하면서 아내를 집에 데려가 인사시키고 바로 결혼했다. 그때 덕구 나이 24살 아내는 22살이었다. 그리고 곧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간다.


요즘은 농사일도 많이 줄어 전처럼 힘들지 않다. 대신에 마을 입구에 삼삼오오 전원주택이 더 생기고 주말이나 휴가를 보낼 요량으로 부모들이 살던 농가를 개조하려는 자식들이 많아지면서 주택 설비 일이 늘었다. 농사지으며 농가에서 쭉 살아온 덕구에게 집을 고치고 심지어 새로 짓는 것까지 그런 건 일도 아니었다. 일머리가 좋고 친절해 덕구를 찾는 사람들은 많다. 정해진 시간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가 울렸다.


“싱크대가 막혔어요. 지붕에서 물이 새요. 변기에 물이 안 내려가요. 전기가 안 들어봐요, 보일러가 안 돼요. 잔디 깎는 기계가 고장 났어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일을 다른 이의 손을 빌려 해결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곳의 생활은 자꾸만 덕구를 찾게 했다. 덕구는 좋았다. 고장 난 것을 고쳐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는 것도.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이제는 농사일이 없으면 남편과 서울에 자식들도 보러 가고 동네 여자들처럼 비행기 타고 외국 여행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덕구는 도움을 요청하러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전화가 그 무엇보다도 제일 반갑기만 하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 시내에 나가 아내가 가보고 싶다고 했던 새로 생긴 스파게티집에 가기로 했다. 사실 덕구에게도 계획은 있다. 몇 달 전 아내가 텔레비전 앞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나오는 여행 프로였다. 그때 아내를 보며 덕구는 마음먹었다. 저곳에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내년 아내의 생일에 맞추기 위해 지금 비용을 모으는 중이다. 그래서 들어오는 일을 더욱 마다하지 않는다.


덕구 부부가 오랜만에 나란히 집을 나선다. 미정은 막내가 취업했다며 서울 백화점에서 사준 잔잔한 꽃무늬가 퍼져있는 화사한 베이지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한껏 멋을 냈다. 얼굴에 살짝 화장도 했다. 미정은 거울 속 자기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보기 나쁘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어서 가자고.”


아내가 해주는 집밥을 가장 잘 먹는 덕구지만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갑자기 덕구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전화기 벨 소리가 크게 울려댔다.


“형수 님하고 제주도 가셨다면서 어째 전화래요?”


덕구하고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시내의 건설 업자였다.


“오늘은 안 되겠는데….”


덕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말이 길어지고 쉽사리 통화가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덕구의 입에서 알았다는 말이 나왔다. 전화를 끝내고 덕구가 낙담한 표정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마을 초입에 얼마 전에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 있잖아. 그제부터 주방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제주도에 있는 형님한테 엄청나게 전화했대. 요즘 시내에도 전기 설비 해줄 만한 데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본데. 내일까지만 좀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더니 당장 조처해 주지 않으면 부실 공사로 고소할 거라고 난리래. 주인 여자가 독이 잔뜩 올라 있나 봐. 잠깐 들여다보고 올게. 당신 먼저 가서 먹고 있을래?”


미정은 헛웃음이 나왔다. 착한 남자랑 살면 자주 겪는 일이다. 가족 말고도 남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화를 내봐야 소용없다. 미정은 그러라고 했다. 부부는 대문 앞에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은퇴한 부부가 제법 오래 살다가 병원 가까운 서울로 돌아가면서 팔고 나간 집. 젊은 부부가 사서 공들여 수리한 후 얼마 전에 이사 왔다. 부부가 외국 생활을 오래 했고 특히나 주인 여자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이 잠깐 돌았었다. 종종 동네에 외지인이 들어오면 은근한 텃세 비슷한 것을 이런 식의 근거 없는 소문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창백한 얼굴의 몸에 살이라곤 하나도 없는 얼핏 보면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현관문을 열어줬다.


“주방만 전기가 안 들어….”


덕구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여자의 날카롭고 신경질적이 대답이 돌아왔다.


“몇 번을 말해야 하죠?. 그렇다니까요. 지금 3일째 커피 한 잔도 못 마시고 있다고요.”


“전기 제품은 거실에서 쓰지 그랬어요?”


덕구의 말에 여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그럼 내가 거실에서 커피를 내려 남편한테 주면 될걸. 3일씩이나 남편 눈치를 본 게 다 내 잘못인 거예요?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요! 내가 이 집수리하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다 필요 없으니까 그만 돌아가세요. 손해 배당 청구할 거예요”


주인 여자는 덕구가 뭐라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영문을 잘 모르겠으나 주방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남편에게 아침에 커피를 주지 못한 일로 여자가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고 있음은 분명했다.


“모닝커피 따위가 이혼 사유가 되냐고? 당신 동업자의 늦장 서비스와 무사 안일주의가 한 가정을 파탄 낼 수도 있다고? 어쩔 거야? 도대체 어쩔 거냐고? 책임지라고!.”


여자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대며 고함을 치다 엉엉 울었다.


“나는 현준 없이는 못 산다고. 지금 내 전화를 안 받는다고. 고작 모닝커피 한 잔 때문에 오전 내내 연락이 안 된다고.”


덕구는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마침내 아이처럼 우는 주인 여자가 안쓰러웠다. 화를 내고 있지만 실상은 잔뜩 겁먹고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무슨 사정이 있길래 건드리기만 해도 맥없이 픽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체구의 작은 여자가 성난 용처럼 입에서 불을 뿜어낼까?


덕구는 여자가 진정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눈물 콧물이 범벅인 여자에게 휴지를 건네고 수리 가방에서 자신이 마시려고 챙겨 온 생수도 한 병 따서 주었다.


작은 몸뚱이에서 남아 있던 한 방울의 기력까지 전부 짜내 분노를 쏟아 낸 여자에게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

주변은 적막하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여자가 누그러진 것 같이 덕구는 조용히 일어나 지하실로 내려가 주방 전원 시설을 점검했다. 수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은 소켓이 헐렁해져 주방 누전 전원이 저절로 내려갔던 것이 원인이었다.


덕구가 거실로 들어서자, 여자는 미안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절 구원하셨어요.”


여자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다행입니다. 주방의 전기는 이제 잘 들어오니, 내일부턴 남편에게 모닝커피 내려주고 두 분 앞으로 계속 행복하세요. “


덕구는 마지막으로 덕담까지 해주고 현관을 나섰다. 아까는 큰일이라도 벌어질 참이었는데 하늘이 도왔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지런히 시내의 스파게티집에 가니 아내는 식사를 이미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덕구는 아내가 골라주는 대로 먹고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덕구는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마을 초입을 바라보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오늘 자신이 아니라 성질 급하고 욱하는 춘호 형님이 그 집에 갔으면 아마 큰 싸움이 나고 무슨 사달이 나도 났을 터인데 무던한 자신이 가서 이쯤에서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싶어 웃음이 났다.


봄은 짧고 벌써 더워지려고 한다. 올해 모내기는 작년보다 빨라질 것 같다. 아무리 농사짓는 땅이 얼마 되지 않아도 농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준비할 것이 많아진다. 해서 오늘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성당에 다녀오려고 한다. 신도가 얼마 없는 시골 성당에 수년 만에 새로 주임 신부님이 오신다니 인사라도 하러 갈 요량이다. 아내는 또 넋을 놓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있다.


덕구가 현관을 나섰는데 마당에서 누군가 서성이고 있다. 얼마 전 주방 전기 수리를 해줬던 집의 주인 여자였다. 지금 보니 꽤 귀염성 있는 얼굴이다.


”뭐가 또 고장 났어요? “


”아니요. 제가 그날 너무 실례를 한 것 같고 또 감사하기도 해서 선물 하나 드리고 싶어 왔어요. “


”아이고 무슨 그런 건 안 줘도 돼요. “


”아니요. 그때 말도 안 되는 제 화를 다 받아주셔서 남편이랑 별일 없이 잘 지나갔어요. 그날 이후 하던 일도 잘 풀리고. 너무 감사해서요. 이거 저도 회사에서 보너스로 받은 거라 부담 갖지 마세요. “


그녀가 하얀색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이아가라 관광코스를 포함한 캐나다 7박 8일 여행 상품권이에요. 저는 이미 많이 다녀와 별로 필요하지도 않아요. 받아주세요. “


덕구의 눈이 생전 처음 아이스크림을 맛본 아이처럼 휘둥그레졌다.


”여보 어서 나와 봐. 여보 준희 엄마! 미정아! “


덕구의 우렁찬 목소리가 저녁 하늘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자신의 소명을 다해 사는 덕구. 삶이 아름다운 이유지요. 당신의 신은 늘 다정하답니다.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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