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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Sep 24. 2024

[SF 초단편] 심리상담

남자는 요즘 식욕이 하나도 없다. 

남자는 요즘 식욕이 하나도 없었다. 


복지가 좋아서 스트레스에 관련된 질환들은 다 회사에서 무료로 지원을 해 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미리 예약해 둔 H&R심리상담소를 찾았다. 


회사에서 도보로 10분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 회사 지정 심리상담소였다. 


3층짜리 단독 건물인데 1층 자동 문이 열리자마자 안내데스크가 있고 진료실부터는 2층에 위치해 있는 전면 유리 건물이다. 로비에 잠시 앉아서 예쁜 직원이 앉아 있는 안내데스크 쪽을 보니, 위에 나무 현판이 길게 붙어 있었다. 


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Honesty(정직)과 Reliance(신뢰)으로 고객을 모십니다.> 



점백은 금새 이해했다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는 아가씨는 영화배우 ‘케이트 업톤’을 흡사 닮았다. 


남자는 입구에서 주민번호와 이름을 말했다. 


안내데스크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간 상담실은 아늑하다. 


여 정신과 의사는 편안히 앉으라고 말해주었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여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네, 선생님께서 처방해 주신 약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어요?” 여의사의 눈이 점백을 향했다. 


여의사는 하얀 가운 아래의 스커트 입은 다리를 꼬았다. 


이미 그녀의 책상위에는 대형 모니터가 있었고,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환자의 파일 그리고 노란색 라미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상담할 때는 항상 라미만년필을 쓴다. 일회용이어서 편리하기도 했고, 맘에 안들면 쉽게 바꿀 수 있어서 좋았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서도 그녀는 이런 아나로그한 물건들이 주는 옛날 감성이 좋았다. 


여의사의 따스한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요즘 제가 생각해도 제가 좀 이상합니다.” 점백이가 입을 뗐다.


“뭐가요?” 여 상담사는 미소를 띄고 있다. 


“제가 요즘 식욕이 하나도 없습니다.”


“...............” 여 상담사는 책상위에 펼쳐놓은 상담 파일에 펜을 들고 뭔가를 써 내려갔다.


펼쳐진 종이 파일의 오른쪽 라벨 칸에는 ‘082 김점백’이라고 적혀 있다. 



[ 9월 15일 내담자, 식욕부진을 겪고 있음, 위장관 체크 필요. ]



이곳에서는 정신심리상담을 하지만 회사와 계약을 하고 있던 터라, 직원들의 정신 건강은 물로 신체에도 이상이 생기면 보고를 하기로 약속을 해 둔 상태였다. 꼼꼼한 메모는 필수다. 


“계속하세요.” 여자의 따스한 시선을 점백을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식사 관한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그야 뭐 요즘엔 식사가 귀찮다면서 식사 대용 특수 알약만 먹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저는 그런 종류의 특수 알약도 안 먹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드시고 피곤하지 않나요?”


“늘 피곤하지요.”


“잠은 어떠세요? 충분히 주무시나요?”


“잠도 한 다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습니다. 잠도 잘때는 침대에 눕는데 깨어보면 의자에 앉아 있을때가 많아요.”


“다섯 시간이면 좀 적네요. 한 두시간만 더 주무셔도 좋을 텐데요. 불면증 약을 좀 처방해 드릴게요.” 


여자는 또 적었다. 


[ 불면증 끼가 있음. 이 부분은 정밀 체크 필요 최근 FDA 승인을 얻은 신약 렘보어센트 처방 예정 ] 


여자는 익숙한 듯 화제를 바꾸었다.


“회사 생활은 어때요? 특별히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든지 하는...”


“회사에서는 재밌게 지내고 있습니다. 팀장이 주는 업무가 좀 과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퇴근시간까지 쉴 틈 없이 하다보면 대충 업무시간 내에 마치고는 있습니다.”


“참, 환자분 최근에 사건이나 사고가 없었나요?”


“아, 생각해보니 지난달에 오토배송 로봇이 운전하는 오토바이와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어이쿠 저런. 괜찮으셨어요?” 여의사의 눈이 조금 커졌다. 


“네, 다행히 저도 그때 많이 놀라서 바로 인근 병원에 가서 이런 저런 검진을 받았죠. X레이도 찍고 다행히 그때 의사선생님께서 괜찮다고 단순 타박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놀라서 집에 와서 후유증이 있으면 보험처리 받으면 되니까 하고 있는데 뭐 그 이후로 딱히 교통사고 휴유증이 나타나거나 하는 별도의 증상이 나타나진 않았습니다.”


“점백씨는 건강체질이네요.”


“그러게요. 저도 신기할 정도로 안 아파요.” 남자가 미소 지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성욕도 점점 떨어지는 데 이젠 식욕까지 그러니, 살짝 우울하기도 하고 내심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해서요.” 남자의 눈에 걱정이 서렸다. 


“원래 그래요. 보통 4,50대가 되면서 겪게 되는 공황장애 같은 것이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직종 같은 경우는 30대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요. 업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자들에게 이런 일이 많이 생기기도 해요. 환자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셨잖아요.” 여의사가 살짝 미소를 보였다. 


“네 맞아요. 제가 벌써 40대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요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죄다 아련하게만 떠올라서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도 가물가물해요.”


“아직 혼자 사세요?” 여의사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남자쪽으로 향했다.  


“그쵸, 박봉에 저 혼자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요. 무엇보다도 누구랑 말도 섞기가 싫어요. 점점 저 혼자 매몰되는 느낌이에요.”


“가볍게 사람들과 같이 좀 어울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쉴 때는 주로 뭘 하세요?”


“보통은 전날 보다가 만 넷플릭스 틀어놓고 보기도 하고, 유튜브 보고 뭐 그렇게 지내는 거죠. 아, 저녁엔 과자 한 봉지씩 먹어요. 그게 취미네요.”


“에이, 그 봐요. 과자를 드시네요.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여자는 다시 노트에 아까 적어 놓은 것을 붉은 색으로 긋고는 그 바로 옆에 이렇게 적었다. 



[ 9월 15일 내담자 점백, 식욕부진을 겪고 있음, 위장관 체크 필요. 저녁에는 과자를 한 봉지씩 먹음. ]



“위장에는 이상이 없는 듯 합니다. 과자를 드신다는 것은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너무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불면증 부분은 체크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점백은 여의사의 머리 위에 시계를 보고 있다. 


점심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점백의 그런 시선을 느끼고 여의사가 말했다. 


“아, 환자분,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 하면 되겠네요. 이제 다시 회사 들어가 보셔야지요.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도 있고요. 수면제를 넣어서 처방전 써 드릴테니까 받아가시고요. 너무 걱정마세요.”


남자가 나간 후 여의사는 환자 파일에 몇 가지를 더 적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곳이다.

지금 막 상담한 남자같은 환자를 통합관리하는 곳이다.  


“네, 환자번호 081939393번입니다.” 여의사가 숫자를 한번에 빠르게 말했지만 음성인식 AI 상담사는 금방 찾아냈다. 


“김점백 환자군요. 무슨 일인가요?”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목소리다. 


“불면증인데요. 아마도 지난달에 배송오토바이와 충돌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때 응급 케어를 잘못 받은 것 같습니다. 바로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여의사 말했다. 


“네네, 일단 1박 2일로 입원을 시키라고요? 아, 저번에 그 국립의료원쪽으로요? 동부지점인가요? 서부지점으로요. 네 알겠습니다. 병실 지정되면 네네..문자로 주세요.” 여의사는 다른 손으로 만년필을 들어서 종이 파일에 몇 단어를 더 추가해서 메모했다. 



[10월 10일 시스템 재부팅 예정. 배터리 부분에 문제로 100%완충이 안되고 있음. 소켓 부분 교체 필요.]


기재를 마치고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종이 파일을 접었다. 


시간을 보니 늦은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약속시간이 채 10분 밖에 남지 않았다.


회사 1층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화장실까지 들렸다가 내려가려면 빠듯할 것이다. 


그녀는 종이파일을 다시 벽에 꽂기 위해서 섰다. 


H칸에 꽂았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자신이 곧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방금 꽂은 파일을 빼서 R쪽에 꽂았다.


그 순간 그녀의 방문이 확 열렸다.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뭐야, 그냥 1층에 있으면 지금 내려가려고 했는데.”


“에이, 보고 싶어서 올라왔지. 자기야.”


“방금 R쪽에 꽂던데 저건 뭐야?” 남자는 벽 전체가 서류장처럼 꾸며진 방에서 상단에 크게 쓰여진 H와 R이 궁금했다. 


“뭘까요? 맞춰보세요.”


“흠...심리상담을 하는 곳에 H와 R이라....잠깐 잠깐 정말 말하지 말아봐. 내가 꼭 맞출거야. 입구에서 현판을 사실은 봤어요. H는 Honesty(정직)이고 , R은 Reliance(신뢰)이고 라는 것 맞지? “


“흠, 컨닝을 잘 했네요. 하지만 제가 파일을 구분하는 뜻에는 전혀 틀렸답니다.”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 곡조를 붙였다. 그건 마치 오페라에서 배우들이 하는 대사처럼 들렸다. 


“그럼 뭔데?”


“ H는 Human (인간)이고 R은 Robot(로봇)이야.”


“방금 들어온 사람은 그럼 로봇이야?”


“어 맞아요.”


“헐, 대박, 그런데 심리상담을 받으러 온거야?” 말하면서 남자의 눈이 커졌다. 


“당연하지. 요즘 AI로봇들은 자신이 로봇인지 잘 몰라, 프로그래밍 자체로 자신이 스스로 인간인 줄 알고 있어. 법이 그래. 본인이 로봇인 것을 알면 충격을 받아서 이젠 그걸 본인에게 직접 알려줄 수가 없어. 저번엔 한 정신과 전문의가 함부로 환자가 사실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서 로봇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일이 있었어. 그 이후로 절대로 알려주거나 주변 지인에게 말해도 불법이지.”


“그래? 신기하네.”


“아무래도 다들 AI가 일을 하니까. 회사마다 생산성 향상에 목숨걸잖아. AI가 스스로 자신이 로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생산성이 뚝 떨어지더라고. 그걸 우리가 다 밝혀내고는 이런 법이 만들어진것이지. “


“그럼 로봇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없어?” 남자가 물었다. 


“뭐 요즘엔 로봇이라고 해도 식사까지도 하니까. 왠만해서는 금방 눈치채기는 힘들죠. 바이오 에너지로 돌아가는 얘들은 충전도 필요가 없어. 완전 음식물로 돌아가니까. 부패된 음식도 걔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안 돼. 랜덤한 시간에 소변도 보고 심지어 똥도 싼다고요. “ 세희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래? 와 대박이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마 같이 살게 되면 알게 될거야. 아무래도 생리현상이고 뭐고 티가 조금씩 날테니까. “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혹시 세희, 너도 로봇 아니야?” 


“그건 비밀인데 후후 맞춰보세요.”


“그래, 내가 아무리 봐도 당신은 로봇이 아니야. 로봇이 이렇게 예쁠리가 없지”


둘은 사무실을 나서서 먹자골목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세희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연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핵전쟁 이후 유전자의 변형 덕분에 남자가 사라진 지금의 시대에 있어서 이런 반려 로봇들은 여성들의 인생을 풍요롭고 즐겁게 해 주고, 힘든 사회의 업무를 대신해 주면서 새로운 사회의 활력소가 되고 있으며 가격도 그렇게 높지 않아서 일반 직장인들도 선택이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오늘 점심 뭐 먹고 싶어요?” 세희가 말했다. 


“글쎄, 그대가 원하는 것으로 먹으러 가요.” 남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여자친구를 바라보았다. 


‘ 아, 그때 매장에서 추천하는 눈동자 색을 푸른 에메랄드색으로 할 걸 괜히 돈을 아꼈나, 아냐, 한국에서 괜히 눈에 뛸 지도 몰라. ‘


세희는 사이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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