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상실된 언어를 찾아서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난 그들은 짐을 싸고 샌프란시스코를 향했다. 연서는 이제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며 아침부터 앨커트래즈 노래를 불렀다. 아내는 어제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지 조금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난 어제의 혼란스러움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나’와 ‘그’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하루를 보내게 됐다.
산호세에서 고작 1시간 정도 차를 달렸을 뿐인데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이르자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우중충한 날씨에 먹구름 같은 안개가 자욱이 끼었고 날도 서늘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했던 그는 몸 관리도 제대로 못 했다며 아내에게 핀잔이라도 들을까 아침부터 나이퀼을 잔뜩 들이켰다. 그 덕에 알록달록하게 언덕을 따라 지어진 집들은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는 듯 보였고, 바다 안개는 향정신성 약품을 태운 연기라도 되는 듯 몽롱하게 느껴졌다. 제정신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듯싶었지만 오히려 이게 더 나은 걸지도 모른다. 그냥 이대로 물결을 따라 부유하듯 떠다니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망각 속에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호텔은 메리어트 피셔맨스 워프였다. 원래 코트야드 호텔로 하려다 웬일인지 특가가 적용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아내는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나쁘지 않네’하며 툭 하고 던졌다. 사실 그의 눈엔 서니베일에 있던 코트야드와 뭐가 다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이 조금 크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뭐, 비슷하네.”
“이게, 어떻게 비슷해? 방 크기가 이렇게 차이 나는데.”
방 크기가 그렇게 큰 문제였나? 그는 그녀의 말에서 여태껏 인지하지 못했던 조그마한 뉘앙스를 느꼈다. 그렇다. 아내의 공황장애를 잊고 있었다. 방 크기가 작아 다른 모든 게 눈에 거슬렸던 거다! 그는 아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자주 잊게 된다. 평소엔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게 없으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도 아무 장애없이 숨을 쉬고 있는 듯 흉내 내고, 몸이 무너질 것 같은데도 그냥 버티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에 다시금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오후였다. 아내는 서니베일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한 시간 이동이 버거웠던지 호텔에서 조금 쉬자고 했다. 사실 쉬는 게 쉬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연서 바이올린을 꺼내 1시간 동안 불같이 성을 내며 연서를 가르쳤고 불똥은 그에게도 튀었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운동을 하러 가겠다고 하며 연서 수학 좀 가르치라고 내뱉으며 나가 버렸다. 이별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는 별달리 싫다거나 짜증 나는 기색 없이 그녀의 날 선 발언들을 모두 흡수했다. 그녀는 화를 못 이겨 한껏 퍼부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마운틴뷰 다운타운에서 싸늘해졌던 그를 기억하며 겁이 덜컥 났던 건지 그를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화가 났다거나 기분이 나쁜 기색조차 없자 그녀는 마음을 놓은 듯 보였고 운동을 갔다가 왔을 땐 한결 기분이 풀어져 있었다.
그들이 호텔을 나선 건 저녁 시간이 다가왔을 즈음이었다. 눈이 가는 대로 이 가게 저 가게 들리는데 가판대를 하나 세우고 진주를 품은 석화를 파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진회색 망토를 걸친 게 백설 공주에라도 나올 법한 모습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 거리와는 오히려 잘 어울렸다. 연서는 옆에 있던 초콜릿 가게에 들어가려다 가판대가 흥미를 끄는지 노파에게 다가섰다. 그는 반사적으로 연서를 멈춰 세우려다 경계를 풀었다. 냄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허름한 옷차림과 달리 신경 써서 몸단장한 듯 깔끔하고 포근한 목화 향이 풍겼다. 연서는 가판대 위로 얼굴을 들이밀며 석화 속 진주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얘야, 참 예쁘기도 하구나. 넌 어디서 왔니?”
연서는 한 발짝 물러나 내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는 고개만 내밀며 답했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왔어요.”
“아, 한국인이구나. 할머니도 예전에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단다.”
“이건 뭐예요?”
“이건 오이스터라고 하지. 오이스터가 뭔지 아니?”
오이스터, 그러니까 석화였다.
“그럼요. 이게 오이스터잖아요.”
연서는 낯가림도 없이 척척 영어로 대화를 이어 가며 이게 진짜 진주냐고 능청맞게 묻기 시작했다. 노파는 연서와 얘기하는 게 재미있는지 쏟아지는 연서 질문에 귀찮은 기색 없이 상냥히 대답해줬다. 노파는 의외로 외투막이니 맨틀이니 하는 전문용어를 써 가며 어떻게 석화가 진주를 만드는지 설명해 줬고, 연서는 그녀 말에 귀를 기울이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였다. 한참 동안 노파와 대화를 나누던 연서는 진주를 사는 게 무슨 신의 계시라도 되는 듯 손으로 진주를 가리키며 날 쳐다봤다. 도리가 없었다. 십 분 넘게 연서와 영어로 얘기를 해 줬으니 레슨비라고 생각해도 아까울 건 없었다. 그는 눈짓으로 얼마냐고 물었다.
“이건 원래 10불인데 아이가 말을 참 예쁘게 하니 특별히 50센트 할인해 드리죠.”
지갑을 뒤적거려 보니 마침 10불짜리 하나가 있었다. 지폐를 건네자 할머니는 가판대 앞에 놓인 동전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스름돈은 됐어요.”
그는 던지듯 말하고 몸을 틀었다. 순간 거적 같은 망토에서 손이 툭 튀어나와 그의 손목을 덜컥 붙들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착시현상이라도 인 듯 노파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지랑이가 피듯 공간이 일그러졌고 속이 울렁였다. 노파는 그의 손목을 꽉 잡은 채 지압을 하듯 엄지손가락을 세워 손목 어딘가를 눌렀다. 열림 단추를 누른 듯 딸깍하고 손바닥이 펴졌다. 노파는 그 위로 25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올려 놓았다.
“잔돈일세. 가져가시게. 언제 어디서 잔돈이 필요할지 알겠나, 한국 신사 양반.”
노파는 듬성듬성 이가 빠져 하부죽한 입을 활짝 열며 말했다. 그는 순간 닭살이 돋아 오르는 것 같아 숨을 죽이고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하며 노점에서 물러섰다. 그렇게 두세 걸음을 걷고서야 마법의 공간에서 빠져나온 듯 숨이 쉬어졌다. 노점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노파의 기괴한 웃음이 메아리치듯 귓가에 울렸다.
그는 연서 손을 잡고 길을 따라 피어39까지 걸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둘러보고 피에로 한 명이 웃는 듯 우는 표정을 지으며 펼치는 꼭두각시 공연을 구경했다. 공연장을 지나 부둣가로 나가니 멀리 앨커트래즈가 보였다. 연서는 그의 손을 잡고 부둣가를 거닐었다. 부둣가 옆에 바다사자 떼가 보였을 땐 바다사자를 만지고 싶다며 손을 뻗고 떼를 쓰는 통에 그와 티격태격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 진을 빼고 돌아가려는데 연서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허름한 창고 분위기가 나는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저기’라고 외쳤다. 오래된 아케이드 기계를 모아놓은 ‘뮈제 메카니크’라는 박물관이었다. 연서는 아내 손을 잡고 아스팔트 군데군데 지뢰처럼 떨어진 기러기 똥을 피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에 들어서자 박물관답게 수동 핸들이나 스핀들 따위로 조작하는 골동품 급 기구가 즐비했다.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주인님의 운명을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불이 켜지며 안개 밑으로 깔린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노랗고, 빨갛고, 파란 등이 번갈아 가며 반짝였고 기계 속 마법사가 턱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빅>에 나왔던 졸타 기계였다. 가뜩이나 노파 때문에 놀랐던 터라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설마’하는 생각에 기계 바닥을 쳐다봤다. 영화에서처럼 전원 플러그가 꽂혀 있지 않았다. 전원도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기계가 작동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직원 유니폼을 입은 한 청년이 지나가며 내뱉듯 말했다.
“풋! <빅> 생각하신 거 맞죠? 영화 개봉 후론 그렇게 나와요. 밑에 있는 건 가짜 플러그고 진짜는 뒤에 따로 꽂혀 있어요.”
“아!”
고개를 끄덕이며 기계를 지나치려는데 다시 졸타의 입이 열리며 소리가 나왔다.
“주인님의 운명이 제 손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졸타의 목소리에는 기계적인 무언가를 넘어 애원하는 듯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감기약 기운 때문인지 현란하게 울려대는 오락 기계들 소리 때문인지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기계 속 졸타가 <링>의 사다코처럼 기계에서 튀어나와 운명을 점칠 기회를 달라고 압박했다. 거절하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괴물로 돌변해 그를 집어삼킬 기세로 말이다. 등에선 그도 모르게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그는 움찔하다가 고작 졸타 기계에 겁먹은 자신이 웃겼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고개를 저으며 앞서 걷던 아내와 연서 쪽으로 몸을 돌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데 손끝에 무언가 금속성 물체가 부딪혔다. 노파가 줬던 25센트짜리 동전 2개가 그대로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쳇! 그는 어떤 운명적 자력에 끌린 듯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동전을 꺼내 들었다. 그가 동전을 집어넣자 졸타는 희뿌윰한 연기를 뿜으며 양피지처럼 둘둘 말린 종이 한 장을 뱉어냈다.
“당신에게 ’찰나의 순간’을 선물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고 현재를 찾으세요.”
ㅎ쉭쉭하며 졸타 입에서 나오던 바람 소리가 종이에 적힌 문자로 탈변하여 나에게 말을 거는 듯 들렸다. 이쯤 되면 약 기운을 탓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약에 취했더라도 그건 ‘그’의 신체일 뿐인데 그게 내 인지 작용에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건 그와 나를 완벽히 분리할 수는 없다는 물리적 한계와 이 놀이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 주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놀이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난 약에 취한 듯 몽롱한 정신 상태로 대기를 떠다녔고 그는 아내와 연서를 따라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나돌며 행복해했다. 아내는 어제 이후로 다시 평정을 되찾았고 연서는 샌프란시스코에 푹 빠져 있었다. 여행은 점점 내가 최초 상상했던 완벽한 여행과 비슷한 형태의 여행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나와의 이별을 선택한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건 운명일까? 내 행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나였던 셈인 걸까? 이대로 내가 사라져 버린다면 내 가족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정 헤어짐이란 무얼까? 사실 난 계속 말장난하고 있을 뿐 ‘그’는 사실 ‘나’와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난 이 언어게임을 즐김으로써 내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며 나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안개 자욱한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거적을 두른 노파와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쩍 벌리던 졸타의 모습이 중첩되며 마법이라도 걸린 듯 신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으로부터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영혼이 내 몸에서 그리고 대지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떠올라 운해를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먼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아내의 감정 기복도 없었고, 세상은 웃을 일도 울 일도 없이 고요한 평화로 뒤덮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이 고요함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자리 잡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