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상실된 언어를 찾아서
어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는 건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봐도 티가 너무 났다. 말쌀하게 입만 다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자신을 없애는 것뿐이었다. 입을 꾹 닫아 버리거나 숨으려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부스스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푸시시한 머리를 긁적이는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는 과도하게 상냥하다거나 어제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덤덤하게 그날 여정을 준비했다. 첫 일정은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캠퍼스와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캠퍼스 방문이었다. 실리콘밸리까지 왔는데 상징적 장소는 방문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플 캠퍼스에서는 연서 셔츠를 샀고 구글 캠퍼스에서는 알록달록한 구글 자전거를 타고 구글플렉스를 누볐다. 연서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회사들이 신기한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한결 나아진 기분은 스탠퍼드 몰에 갈 때까지 지속됐다. 아내와 연서는 신이 나서 니먼 마커스와 노스트롬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쇼핑몰 아케이드를 누볐다. 뒤따라 걷던 그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알렉산더 스테이크 하우스’를 검색했다. 그래도 미국까지 왔는데 연서에게 맛있는 음식 한번은 먹여 줘야 했다. 다행히 누군가 예약을 취소했는지 5시 반 슬롯이 하나 비어 있었다.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이런 데까지 가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헤어지기로 결심한 마당에 이 정도도 못 해 줄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안나푸르나 정상에 깃발을 꽂듯 예약석을 확보했다. 이 작은 성취감 때문인지 도파민이 분비되며 그의 얼굴엔 미소가 띠어졌다.
그의 미소를 본 아내는 슬며시 그 옆으로 다가섰다. 그는 어제만큼 무정하지는 않게, 하지만 특별히 다정하지도 않게 손을 폈다. 아내는 그의 팔 안쪽으로 손을 찔러 넣고는 그의 팔을 쓰다듬듯 내려 만지며 손깍지를 꼈다. 그녀의 가녀린 팔에선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어제 ‘이혼’이란 말에 받았던 충격과 그 충격을 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냉담함이 어디까지 진심이었는지 확인하려는 듯 아침부터 그에게 말을 걸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그는 마치 어제 일이 아예 없었던 듯 너무도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이었다. 말을 걸면 일상적으로 대답했고, 손을 잡으려 하면 한번 꽉 잡아 주고 놓는다거나 주먹을 쥐어 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어제 일은 다 잊어버린 듯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그걸 불안하게 느꼈을 거다. 그는 평소 거의 화를 내지 않았지만 한번 화를 내면 며칠이고 입을 걸어 잠그고 말도 제대로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는 겁이 날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는데 이렇게 빨리 스스로 알아서 풀어져 버렸다는 게 쉽게 믿길 리 없었다. 물론 내 기분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가 풀어진 척 행동하곤 있었지만 내가 풀어진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긴 했다. 아직 가면에 익숙해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다.
내 가면 놀이에 불현듯 위기가 찾아온 건 ‘알렉산더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면서였다. 그가 쿠퍼티노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 때 나는 은근히 기대감에 차올랐다. 전날 한식당에서 그 맛없는 저녁을 먹었던 아내와 연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했다. 주차한 그는 성큼성큼 식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아내는 다운타운 거리에 모여 있는 식당들을 보며 그래도 오늘은 좀 괜찮은 데서 먹나 보네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한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내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일 뿐이었던 아내는 스테이크 하우스에 들어서며 동공이 확장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하는 연서완 달리 입구 쪽 통유리 격벽 가득 쌓인 빈티지 와인과 그 옆에 건조 숙성하고 있는 고베산 와규 덩어리를 보며 이곳이 정통 아메리칸 스테이크 하우스임은 한눈에 눈치챘을 것이다. 검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웨이터가 빼 주는 진갈색 마호가니 가죽 의자에 앉은 그녀는 괜한 헛기침을 한번 내뱉었다.
“와, 연서 오늘 맛있는 거 먹겠네. 여기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야.”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메뉴판을 들었다. 그러곤 생선과 채식 메뉴가 있는 섹션을 펴 아내에게 건넸다. 고작 식당 하나에 갑작스레 세로토닌 샘이 터져 버린 티를 내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 아내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골랐어? 연서 스테이크는 내가 고르면 되니까 당신 먹을 거 먼저 골라.”
“난 연어 스테이크로 할게.”
아내다운 선택이었다. 그는 이미 인터넷으로 검색했던 메뉴들을 하나씩 되짚어 봤다. 메뉴 옆에 쓰인 가격을 보며 눈동자가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태연한 척 웨이터를 불렀다.
“하마치샷하고 에어룸 토마토 샐러드 주시고요. 이게 부라타 치즈 들어간 거 맞죠? 메인은 포터하우스에 사이드로 트러플 맥앤치즈 그리고 연어 스테이크 주세요. 포터 하우스는 반은 웰던으로 하고 반은 미디엄 레어로 할 수 있을까요? 커팅해 주시고요.”
웨이터는 그의 말에 호응을 해 주고 자잘한 설명을 곁들이며 주문을 받았다. 시종일관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게 역시나 고급 식당 웨이터다웠다.
“와인 할래?”
그는 아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괜찮어. 당신은 운전해야 하고 나도 속이 좀 안 좋아.”
그가 웨이터에게 메뉴를 넘기며 고개를 까딱하자, 웨이터는 여유로운 웃음으로 답하며 자리를 떴다. 아내는 곧장 그를 향해 목을 쭉 빼며 물었다.
“너무 많지 않어? 그리고 하마치샷, 이건 뭐야? 무슨 애피타이저가 50불이나 해?”
“그게 여기 시그니처 애피타이저야. 오늘 한번 먹는 건데, 뭐.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괜찮어.”
“뭐야, 웬일이래? 우리야 맛있는 거 먹으면 좋지 뭐. 그치, 연서야?”
“아이 러브 스테이크, 와앙.”
연서는 고기를 앞에 둔 사자 새끼마냥 입을 쩍 벌렸다. 자기 모습이 웃겼던지 혼자 낄낄대며 웃음보를 터트렸고, 아내도 따라 웃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연서는 어제오늘 봤던 것들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원래 하버드에 갈 생각이었는데 오늘 보니 스탠퍼드도 괜찮은 것 같다며 스탠퍼드 북스토어에서 산 후드티를 걸쳤다 벗었다 했고, 갑자기 코딩 수업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가 하면, 뜬금없이 ‘아이 러브 캘리포니아’를 외쳐 아내를 웃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식전 빵과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단연 눈길을 끄는 건 하마치샷이었다. 엷게 여민 빙어회를 칠리, 아보카도, 생강, 실란트로와 함께 샷잔에 담아낸 하마치샷은 작은 포크로 재료들을 트러플 폰즈 소스에 버무린 후 데킬라를 마시듯 단번에 들이켜야 했다. 그럼 씹을 때마다 빙어의 부드러운 식감에 허브와 향신료의 풍미가 더해지며 입안에서 폭죽을 터트린 듯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맛과 향이 느껴졌다.
아내가 하마치샷을 맛보는 사이 샐러드 플레이트도 나왔다. 탱글탱글한 부라타 치즈를 가르자 생 모차렐라가 수란 터지듯 흘러내렸고 그가 토마토와 치즈를 적당히 배분해 아내와 연서에게 소담스레 서빙해 주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즐겼다. 맛의 향연은 노릇하게 구워진 포터하우스가 서빙되며 고조됐다. 갈색으로 먹음직스레 구워진 고깃덩이에선 단백질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고소한 냄새와 함께 침샘을 자극했다. 게다가 맥앤치즈에서 아지랑이처럼 트러플 향이 피어올라 코앞에서 축제가 펼쳐졌다. 턱이 빠진 듯 입을 벌리고 있던 연서는 표정만 봐도 침이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엔 알렉산더 스테이크 하우스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솜사탕 디저트까지 서빙됐다.
감각은 끝없이 나를 자극했고, 자극이 더해질수록 ‘그’와의 분리는 힘들어졌다. 오전만 해도 나는 ‘그’와 확고한 거리를 두고 관찰자적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지만 감각은 육중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날 끌어당겼다. 하지만 나보다 더 이상 증상을 보이고 있던 건 연서였다. 연서는 과다한 당분 섭취 덕인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마치 어떤 축제의 전조를 보듯 어깨를 들썩이고 실성한 듯 혼자 실실 웃기 시작했다.
식당 밖으로 나온 연서는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 폼을 취했다. 그리곤 두 팔을 벌리고 신나게 뛰기 시작했다.
“아빠, 나 지금 떠다니고 있어. 공중에 뜬 것 같아. 나 좀 안 날아가게 잡아 줘.”
연서는 지그재그로 몸을 틀고 방방 뛰며 쿠퍼티노 다운타운을 헤집고 다녔다. 그는 연서를 쫓아 숨을 허덕였고 연서는 그런 그를 돌아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낄낄댔다.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리고 혀를 내밀다가 제 모습이 웃겼는지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자지러질 듯 웃었다. 그도 덩달아 웃었는데 웃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웃었다. 그렇게 주의를 했는데도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진짜 웃음이 지어졌다. 웃음은 자동차를 폐차할 때 쓰는 거대한 롤링 압착기처럼 나를 분쇄했고 나는 그의 몸에 빨리듯 흡수됐다. 나는 다시 그에게서 떨어져야지 하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했다. 설탕이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손을 벌려 비행기 날개를 만들고 나를 피해 도망 다니는 연서, 연서를 뒤쫓으며 웃음을 참지 못해 숨을 허덕이는 나, 그리고 그런 우릴 보며 미소 짓는 아내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뇌리 깊숙이 각인됐다.
가끔이긴 하지만 아내는 지금처럼 예전 모습을 찰나의 순간처럼 내비칠 때가 있다. 그럼 난 마법 같은 순간에 도취되어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매년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 황홀한 순간이 언제 다시 도래할지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아니, 확신한다. 어느 순간 아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 행복을 깰 거다. 아내는 활짝 웃으며 내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아내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그녀를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오늘 하루, 딱 지금, 이 순간만 이런 기분을 즐기면 안 될까?
하지만 그는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회사 이메일 앱을 열어 메일을 확인했다. 답장을 해 줘야 할 만한 메일 하나를 골라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아내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제길. 이게 아니었는데. 내가 정말 나와 헤어졌다면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 손을 잡고 천방지축 날뛰는 연서를 보며 마냥 웃고 있어야 했다. 아직 훈련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도 첫날치고 이 정도면 무난히 넘어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난 대부분의 시간 동안 평정심을 유지했고 아내가 다가오는 걸 거부하지도 않았고 아내와 함께 웃는 걸 애써 멈추려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연서와 아내의 웃는 모습에 도취되어 선을 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무난히 방어한 거라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나’와 ‘그’ 사이를 오가며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하루를 갈무리했다. 어디까지가 진짜 ‘나‘의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일까? 아니, 진실과 허상이라는 경계나 나와 그 사이 구분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걸까?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나 자신조차 혼란스러웠다. 사실 ‘나’라는 게 그런 것 같았다. 내 몸은 현실의 흐름에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고, 난 내 자아가 몸을 장악해 의사결정을 내려 움직이고 행동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난 한낱 몸이 하는 행동의 관찰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모든 건 이미 운명의 서판에 쓰여 있지만 나 혼자만 그 노예 같은 삶을 수긍치 못해 나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라 착각하고 사는지 누가 알겠는가? 내 자아가 내 몸을 장악한다는 건 내 몸이 내 자아를 의식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할 따름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무리 원한다고 한들 심장 박동을 관장하는 신경신호를 차단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린 우연하게 진화한 총체적 정신의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헤겔이 말한 가이스트 내지는 거기서 신비주의를 걷어 낸 마르크스 유물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정신이 어떤 무작위로 한 선택으로 하나의 육체에 착상해서 분열된 의식을 가지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육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의식이란 철저한 허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육체가 하나의 세포에게 그렇고, 국가나 사회가 하나의 육체에게 그렇듯 말이다.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질 않았다. 아내는 나처럼 싱숭생숭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는 건지 아니면 잠투정하는 건지 가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럴 때면 ‘그’ 역시 그녀의 뒤척임과 동조되기라도 한 듯 몸을 비틀거나 이불을 잡아당겼다. 어쩌면 내 혼란은 그녀에 대한 내 심정을 표상하는 건지도 몰랐다. 헤어질 수도, 헤어지지 않을 수도 없는 모순적 심정을 말이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아스라이 펼쳐졌던 오늘의 모든 순간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해 본 오늘의 그녀는 여전히 소녀의 앳됨과 예전의 순수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은 건 이 놀이를 통해 그녀의 본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나오게 한 건 내가 아니라 ‘나’를 연기한 ‘그’였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가면을 썼기 때문에 그녀를 더욱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볼 수 있었던 거고, 그녀는 그런 눈빛에 반응하며 자신도 모르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숨겨 왔던 예전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연기로 나 자신을 감추자 그녀가 숨겨진 모습을 드러냈다고나 할까? 내가 ‘그’에게서 한층 더 나 자신을 지워 버린다면 그녀는 더욱 행복할까? 어쩌면 이런 게 플라토닉 이별인지도 모르겠다. 삼류드라마처럼 난 그녀의 행복을 빌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져 주는 거다. 그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우스웠다. 사실 내가 하는 짓이란 얼토당토않은 말장난에 불과했는데 그런 장난에 빠져들수록 삶에 대한 내 생각은 더없이 깊고 진중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