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감각 지도
어릴 시절, 아버지는 전세계를 누비셨다.
당시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는 출장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그 도시의 풍경이 담긴 엽서나,
특색있는 기념품을 가져다주셨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지구본 위에 찍힌 작은 도시 하나가 갑자기 생생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먼 도시를 만나지만,
나에게는 그 엽서 한 장이 그 도시의 첫 인상이었다.
엽서를 통해 도시를 이해하고, 넓은 세계를 상상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여행이 일상이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자란 나는 대부분의 미국 도시들과 캐나다의 여러 지역을 다녔다.
공휴일이 낀 주말이면 가까운 도시로 소풍처럼 짧은 여행을 떠났고,
여름에는 아빠의 휴가 일정에 맞춰 미국 반대편으로 로드트립을 하거나, 유럽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흔히 말하는 ‘관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감각’을 기르는 시간이었고, 내 세계를 넓혀가는 성장의 기회였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이 감각은, 훗날 어떤 시련 앞에서도 나를 지탱해주는 자신감으로 자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새 나는 25개국 120여 개 도시에서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감각은 머리로 배우기보다는,
몸으로 스며드는 경험을 통해 확장된다고.
하지만 나의 성장기는 잦은 이별의 연속된 시기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보냈기에,
한곳에서 오래된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집에서 수다를 떠는 평범한 일상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늘 새로운 곳에서 처음 보는 얼굴들과, 처음 접하는 문화에 적응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랫동안 실용적인 감각으로 나를 보호하며 살아왔다.
어딜 가도 금세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빠르게 스며들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둘 곳 없는 이방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한국을 좋아하지만 그 너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감각’보다는 ‘지성’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나의 감각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난 순간은, 스페인 말라가에서였다.
교환학생으로 선택한 도시는,
피카소의 생가와 무어족의 알카사바,
스페인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얽혀 있는 남부의 소도시였다.
주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살라망카로 떠나는 친구들과 달리,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작은 항구 도시로 향했다.
말라가는 지중해의 햇살과 풍요로운 역사, 예술, 먹거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거리마다 문화의 온기가 흐르고, 낯선 언어조차도 정겹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감각의 힘을 실감했다.
도시의 색을 읽어내듯, 나는 그 풍경 속 색과 감정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제2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유럽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 감정은 마침내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확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익숙한 미국이 아닌, 감각이 깨어날 수 있는 도시를 향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2월 런던의 어느 날은 생각보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낯선 냄새 속에는 어릴 적 엽서에서 맡았던
도시의 향이 어렴풋이 스며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강렬한 붉은 이층버스,
부드러운 질감의 연한 회갈색 건물,
지하철 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모든 것이 감각을 깨우고 있었다.
런던에 살면서 느낀 소소한 행복은, 유럽의 도시들을 주말마다 짧게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차를 타고 간 파리, 저가항공을 타고 날아간
피렌체와 헬싱키, 이스탄불과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색상, 공기 속 도시 향기, 오래된 건물 넘어 소리까지.
도시마다 마주한 경험들은 하나하나 차곡차곡
나무의 나이테처럼 쌓여 나만의 감각 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이제 나는 그 지도를 따라, 내가 모은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려고 한다.
어린 시절 엽서 속 풍경을 상상하던 그 아이는,
이제 그 도시들의 감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품은 어른이 되었다.
그곳에서 배운 감각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고자 한다.
전세계를 모든 도시를 만나보는 그날을 기대하며.
이 감각의 지도는 앞으로도 내 마음 한켠에 계속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스한 엽서처럼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