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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Dec 28. 2023

나는 이상한 아내가 될지도 몰라(1)

결혼을 앞두고 쓴 편지

결혼하기 전에 남편에게 고백을 했다. 살면서 처음 하는 고백이었다. 엄마 아빠에 대해. 우리 가족의 마음이 어떻게 알알이 흩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오래된 친구들은 내가 이혼가정에서 산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눈물부터 났다. 누구에게도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지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대상은 남편 될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면, 그는 알아야 했다. 나의 가장 위험한 부분을. 살다 보면 내가 아주 이상한(비정상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이상한 점은 바로 나의 엄마 아빠로부터 왔다는 것을.


얼굴을 보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편지를 썼다. 세 장을 꽉 채운 편지였다.




오빠에게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어쩌면 나는 결혼하고 나면 이상한 아내가 될지도 몰라. 우리 집이 생각보다 더 정상적이지 않거든.


부모님이 싸우기 시작한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어. 이전까지 사이가 좋은 줄로만 알았던, 어느 가정 못지않게 행복했던 집이라고 믿었었지.


엄마는 아빠를 의심했어. 바람을 피운다고 했어. 춤바람이 나서 콜라텍을 다니고 거기서 여자를 만난다고 했지. 더러운 새끼. 엄마는 아빠 옷을 흔들며 이거 보라고, 여자 분이 묻었다고 했어.


아빠는 인정하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 했지만 엄마의 의심은 끝나지 않았어. 그럴 때마다 아빠는 아니라고 우겼지.


집에 가면 엄마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어. 엄마는 소주를 마시다가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달려들었지. 둘이 드잡이를 했어. 괴성과 비명과 쿵쿵대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어.


나는 방에 숨었어. 언니와 함께 숨을 때도 있었고, 유치원생인 동생을 꼭 끌어안고 있을 때도 있었어.


되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어. 학교가 끝나면 친구 집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밤늦게 들어갔어. 엄마도 아빠도 내게 신경 쓰지 않았지.


그때부터 내 성적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어. 아빠가 대출받아 차린 고시원이 어려워지면서 내 학원비도 크게 줄었어.


고등학교 때는 오만 원짜리 단과 학원을 겨우 다녔어. 가난과 부모님의 싸움은 대학교 때까지 이어졌어.


엄마는 늘 우리가 클 때까지 이혼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제발 이혼했으면 싶었어. 집이 조용했으면 했어. 그래야 방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집은 내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전쟁터였어. 그렇지만 돌아갈 곳은 그 전쟁터뿐이었지. 늘 피곤했고 불안했어.


드디어 엄마 아빠는 헤어졌어. 집은 고요해졌지만, 아빠가 집을 팔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 내 방은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어. 그래도 좋았어. 드디어 집이 조용해졌으니까.


엄마 아빠가 싸운 오랜 기간 동안 악역은 엄마였어. 아빠는 자긴 아닌데 엄마가 의부증이라고 했지. 게다가 엄마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집안일도 내팽개치고 술만 마셔댔으니, 내 눈에도 엄마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어.


내게 낫지 않는 상처를 준 시기는 부모님의 이혼 후부터 시작됐어. 엄마가 집을 떠나자 베일이 벗겨진 거야. 엄마의 괴성과 드잡이 속에 가려졌던, 아빠의 민낯이 드러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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