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Round] 읽는 맛, 아는 맛

《도서실에 있어요》《작지만 확실한 행복》

by 필화

책임지세요, 필화 님!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편지는, 제가 때마침 운동삼아 걷기 위해 근처 공원에 나가 있을 때 도착했어요. 대부분의 메일 앱이 그렇겠지만 제가 애용하는 그 메일 앱은 유난히도 은근한 사운드로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곤 합니다.


그냥 집에 가서 열어봤어야 했는데, 저는 그만 걷던 와중에 앱을 실행시켰을 뿐이고, 수사슴 씨가 등장하는 순간 저의 전전두엽피질 내 컨트롤 타워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는 이야깁니다. 다른 말로 해서 사회적 위신이니 뭐니 하는 건 내 알 바 아님, 의 상태로 광포하게 폭소했단 소리죠. 저 두 단어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됩니다. 제 경우엔 됩니다. 아무튼지간에, 저는 이제 산책 시간을 바꾸어야만 하게 생겼습니다.


별로 있지도 않던 나의 사회적 체면과 위신이여, 잘 가거라. 가시는 길 안녕히.


뭐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맞아요, 저는 정확히 트렙베르테르를 생각하고 인용한 거예요. 누군가는 그걸 ‘문학적이다’라고 표현한다니 의미심장하지 않은가요. 저는 이런 순간들이 좋습니다. 내가 갖고 있던 어떤 의미의 장에 새로운 결이 더해지는 찰나. 한껏 비좁고 편협했던 세계가 확장하는 순간이죠. 문학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이 경우 ‘주목받을 일이 없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도 빛을 비춘다’는 상냥한 렌즈로 볼 때 분명히 문학적인 것이 맞습니다. 했어야 하는 말을 곱씹으며 어떤 감정을 되새김질하는 사람은 제때 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감정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대해서라면…



의미찾기란 어쩌면 자기 확신과 인정욕구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뭔가를 ‘잘’ 하고 싶고, ‘가치가 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본질적으로 말예요(늘 ‘아님 말고,’를 주창하는 저조차도 그런 마음이 없다고는 말 못합니다). 혹은 내가 뭔가 대단한 것을 알아냈다라든가…


철학자적 본성으로, 의미의 의미를 심층 탐구하는 분도 분명 있겠지만 ‘이건 분명 괜찮은 일일 거야’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해서 의미의 바닥을 파내려가는 분도 있겠지요. 굉장히 거친 분류이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의미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진다고 봐도 괜찮을까요. 말씀하신 책에 나오는 수사슴 씨는 의미 따위 너나 가져! 의 새 ‘의미 場’을 여신 것 같긴 하지만.


우리 당당하게 이야기하자고요. 인정욕구는 이상한 게 아닙니다. 우리 다 정상이에요!

아니 뭐, 점잖은 말은 다 걷어내고 솔직히 말해서요. 관종기질은 자연적으로 발동되는 인간의 본성(...o_o)이란 말이죠. 아닌가, 본능인가. 암튼요…



그렇잖아도 요 며칠간 읽은 책 중에서 딱 맞춤한 소설이 하나 있거든요.

《도서실에 있어요》


《도서실에 있어요》



2021년 서점대상 2위 수상작이래요. 음, 서점대상 수상작들을 꽤 좋아해서 거의 읽었는데, 이 해의 수상작은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아직 안 읽었거든요. 근데 이례적으로 2위 작을 먼저 읽게 됐네요. 이 작가를 알게 된 경위가 안타깝게 생각나지 않아요,라고 쓴 순간 기억났네요.



인★에서 팔로우하는 계정이 몇 있는데 그중 한 계정에서 번역출간된 이 책에 대해서 언급을 하셔서 찾아봤더니 국내에도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상을 받았던 이 책을 읽기로 했죠. 아니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데 때마침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무언갈 알고 있지도,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모두들 제가 드린 부록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죠. 책도 그래요. 만든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부분에서 그곳에 적힌 몇 마디 말을, 읽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연결 지어 그 사람만의 무언갈 얻어내는 거예요. -p.368


이건 어쩌면 독법과도 상관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책은 개개의 독자와 어떤 특정한 의미의 관계를 맺을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아놔 이놈의 의미 ㅋㅋㅋ)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하는 것도 그런 일이잖아요. 한 권의 책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서로가 남긴 어떤 문장과 어떤 풍경과 손을 잡았기에 그 책이 떠올랐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런 관계의 그물을 엮어가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사람이 생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결국은 그런 거죠. 여러 겹과 여러 결의 빛나는 그물, 혹은 직물을 엮는 거죠. 사람의 층, 책의 층, 친구의 층… 그리고 감정의 결, 인상의 결, 그런 것들 말이에요. 제가 아이디에 weaving을 유달리 많이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답니다. :D



“언젠가, 언젠가 하는 동안은 꿈이 끝나지 않아. 아름다운 꿈인 채로 끝없이 이어지지. 이루어지지 않는대도, 그 또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 계획 없이 꿈을 안고 살아간다 한들 나쁠 거 없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주니까 말이야.”


(...)

“하지만 꿈 저편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당연히 알아봐야지.” -p.98


어느샌가 이어져 있던 보이지 않는 실을 끌어당기듯,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할 일이 태산인데 ‘시간이 없다’는 변명 따윈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나갈 것이다.

‘언젠가’가 ‘내일’이 된다. -p.148


“뭐라고? 그렇게 따지면 내가 파는 책 중 내가 쓴 책은 한 권도 없어. 그런데도 내 마음에 쏙 든 책이 팔리면 무지 기쁘다? 그래서 POP도 열심히 만드는 거고, 내가 미는 책, 마음으로는 약간 내 책 같기도 해.”

(...)


“만드는 사람만 있으면 안 되잖아. 전달하고, 건네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책 한 권이 만들어질 때부터 독자의 품으로 가기까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 나도 그 흐름의 일부라는 데에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 -p.360-361



이 소설은 단편집 같지만, 막상 끝까지 읽어나가면 모두가 연결되어 있구나, 우리의 삶은 이렇게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가깝거나 멀게 이어져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자각이 듭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 꼭 그렇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런 다정한 사람들만이 가득한 공간이 현실에 존재하기에는 좀처럼 어렵다는 빈정거림이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누구나 알듯, 비아냥은 가장 쉬운 선택입니다. 자신이 책임질 일도 없고 운이 좋으면 비판적이라는 상찬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지점이라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성을 품을 수 있게끔 내가 어디에 발을 딛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오… 지금 불현듯 깨달았는데 이 작품은 예의 힐링소설 범주에 들어가는 소설이에요! 가끔은, 다정한 이야기도 좋은 것 같아요. 너무 녹아버리지만 않는다면요. 우리는 뜨거운 코코아 속 마시멜로우가 되어선 안 되니까요. 코코아 잔을 쥔 시지프스(오 이건 전위적인 걸 넘어서 굉장히 코믹한 이미지네요. 시지프스와 코코아는 진심 안 어울리지만, 그냥 넘어가 주세요)가 되어야 하는걸요!




하루하루의 (꽤나)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간간이 그 사이를 메꿔주고 녹여줄 위안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책일 듯합니다. 으아아… 사실 이거 두 번째 고쳐 쓴 거예요. 다 쓰고 보니 첫 번째가 나았나 싶기도 하지만 세 번째로 고쳐 쓰진 못하겠습니다… ㅎㅎㅎ 저는 이제 가볍게 토스트한 식빵에 가염버터를 바르고 캐러멜라이즈한 양파를 잔뜩 올린 다음, 로메인 상추를 몇 장 깔고 바싹 구운 베이컨도 올려주고 스크램블한 계란을 덮으러 가야겠어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와앙 먹어치울 예정이거든요. 귀찮아서 수프는 생략할래요.



그런데 필화 님, 그거 아세요?

캘리포니아 살 때, 우리 꼬꼬마 학교 친구들(+엄마들)과 매 수요일마다 학교 뒤편의 호수 놀이터에서 피크닉을 했는데, 제가 도시락 전담이었거든요. 독일+스페인+러시아+인도, 출신국가에 상관없이 대흥행이어서 나 나중에 할 거 없으면 음식장사나 할까 했다니까요. 물론 그 야무진 꿈은 제 부실한 팔 때문에 진작에 때려치웠습니다.


상과염이라는 생소한 질환과 친해진 담화 드림.











녕안 담화님.

오늘은 담화님이 포복절도하셨던 ‘훌륭한 수사슴’처럼 경쾌하고 엉뚱하게 인사해 봅니다.


어제 아침에 저는 눈을 뜨면서 ‘아 오늘은 비가 오는데도 이상하게 샌드위치가 먹고 싶네.’하고 일어났는데, 담화님이 편지에 쓴 토스트한 식빵에 가염버터,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 로메인,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를 올려 샌드위치를 만드신다는 몇 줄 읽고 마치 계시라도 받은 양 샌드위치를 사러 출동했었습니다.... 만 폭우 때문에 후퇴했다고 전화로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시나요? 그래서 오늘은 폭우에 밀리지 않고 도전하여 빵을 사왔고요,, (아는 맛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도서실에 있어요》라는 책도 빌려올 걸 그랬다며 약간 아쉬워하며 담화님이 보내신 편지를 또 읽어봅니다. 저는 사실 담화님 레터의 팬입니다. 참 좋은 글이라 생각하면서 그중에서도 두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생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결국은 그런 거죠. 여러 겹과 여러 결의 빛나는 그물, 혹은 직물을 엮는 거죠. 사람의 층, 책의 층, 친구의 층… 그리고 감정의 결, 인상의 결, 그런 것들 말예요. 이 문장을 여러 번 떠올렸죠.


일전에 담화님은 시간도 쌓으신다고 하셨고, 관계도 쌓아간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래 쌓인 결들이 저는 크로아상 같은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직조물도 있겠지만 오늘은 빵입니다) 겹겹이 쌓인 채로 발효되어 오븐에서 적당한 온도에 잘 구워진, 바삭한 소리와 함께 근사한 버터냄새 풍기는, 담백달짝고소한 맛을 내는 크로아상 말입니다.

담화님의 삶이 그렇게 정성스레 손이 가는 맛있는 빵처럼 잘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그 속에 조금 지분을 껴주시는 건가요? 저는 담백을 담당해도 될까요? 허락해 주시면 고소도 괜찮습니다만.



여튼, 또 다른 문장은 이것이었어요.

‘의미찾기란 어쩌면 자기 확신과 인정욕구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표현이었지요. 훌륭한 수사슴씨는 자기 확신이 필요해 몸부림치는 인간을 살포시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레터를 떠올려 보면 예술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자기 확신과 인정 욕구 사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줄다리기는 사실 ‘소통’의 정도에 영향을 많이 받겠지요. 이 줄다리기가 예술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의 근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 의미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 그만 ㅎㅎㅎ)



《도서실에 있어요》라는 책은 재미있어 보입니다. 상당히 일본어다운 표현이 가득합니다만, 그래도 한 때 서점 주인이고 싶었던 저는 인용문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는 서점 주인이 되면 여러 책을 들추어보면서 이리저리 마음이 앉을 자리를 찾는 손님들의 뒷모습과 손끝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또 작가와 결혼하여 밤새 적합한 한 단어, 한 문장을 찾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뇌하는 뒷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답니다.


그러니 “내가 미는 책, 마음으로는 약간 내 책 같기도 해.”라는 표현은 정말 제 맘에 쏙 들어왔어요. 담화님도 그러하시듯이 저도 여기저기 책 추천을 많이 해줍니다. 독후감도 쓰고 말이죠. 그런 책을 누군가 읽고 “그 책 재밌더라.”라고 한 마디 하면 정말 “그렇지?”라며 저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책맞게 또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소개하거나, 비슷한 다른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요. 이 정도 되면 제가 쓴 적도 없고, 작가를 만난 적이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내 책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저만 이런 거 아니죠?)


제가 서점 주인이 되었다면(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만) 오지랖 넓은 시장통 할머니처럼 손님들에게 책을 막 소개하고 POP 만들고 들이밀고 그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더욱 《도서실에 있어요》를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이 힐링 소설에 다름 아니라는 말씀을 보고 저도 좀 다정하고 따뜻한 책을 찾아보려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네.. 제 서가를 두 번이나 돌아보아도 다정하고 상냥한 책 따윈 없습니다. 실용서, 인문서, 과학서, 종교서 그 외에 우울과 진지를 넘나드는 소설들 뿐이에요... 반성합니다. 이래서야 제가 만들어갈 크로아상은 담백만 있고 달짝은 없을 것 같네요. 아 그러면 바게트인가..


그래도 눈에 불을 켜고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나마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눈에 띄어 들고 왔습니다. 이 책은 아주 짤막한 심상을 적은 단편들의 묶음집인데, 그 와중에 <내 독서 이력서의 서막>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내 독서 이력서의 서막>

요컨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나 할까, 최초의 유연한 만남이나 환경에 의해서 인간의 취향이 대충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만일 그 당시 우리 집에서 주문해 보았던 것이 《일본문학전집》이나 《일본의 역사》이고, 맨 처음 읽은 책이 《파계》였다면 나는 지금쯤 딱딱한 리얼리즘 소설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인생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P.171


제가 언젠가 저의 첫 독서 이력은 어린이동아대백과사전이었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저의 오늘날의 독서 취향을 확정지었다고 말해도 되겠군요. 하지만, 이 책에는 이런 단편도 있습니다.



<아내가 UFO를 ‘유포’라고 읽을 때>

그러나 어쨌든 간에 ‘BOAC(비오에이씨)’를 ’보아크‘라고 읽는 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된다. 어째서 BOAC를 ’보아크‘라고 읽는 게 엉터리냐 하면, 그건 얼른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BOAC는 어디까지나 “비오에이씨”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아내는 “당신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잔소리만 해대면, 나이를 먹어서 모두한테 따돌림을 당한다구요.”하고 말했다. 분명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UFO’를 “유포”라고 읽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UFO’는 역시 “유에프오”다. 죽어도 “유포”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U.S.A’를 “유사”라고 읽으십시오. 안 그렇습니까? P.96



입으로는 “아니 이게 뭐람?”하면서도 한참 웃을 수 있는 구절이었습니다. ‘유사라니...’


번역가는 이 책을 하루키의 ‘삶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하루키가 좋아하는 것들과 추억에 잠겼던 일들과 일상에서 느꼈던 소소한 심상들을 옮겨둔 것이니까요.

좋아하는 두부에 대해서 네 꼭지나 글을 쓰고, 차표를 잃어버리는 과정에 대해서 혹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세 꼭지나 쓰고, 함께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 세 꼭지나 농반진반으로 이야기를 쓰는 걸 보면서 ‘아 이 아저씨 참 엉뚱하네’를 연발하며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의 상상력과 현실의 중간 지점, 펜이 만나는 곳에서의 글들을 읽으며 그의 유쾌함과 상상력이 오랜 시간 작가로서 살아오게 된 원동력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이 책을 샀던 즈음에 이런 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무인도에 책 한 권을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져갈 것 같다. 아사다 지로의 책은 신나지만 읽고 나면 사람이 너무 그리울 것 같고, 요시다 슈이치를 읽으면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어디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면 의심할 것 같고, 에쿠니 가오리라면 아마도 너무 허무해서 무인도에서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음을 택할 것 같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읽으면서 '그래, 사는 게 그렇지. 사람은 다 다르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덤덤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어요. 그의 상상력과 유쾌함 덕분에 무인도의 삶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 말이죠.

예전에는 ‘새벽기도를 가는 꼬부랑 할머니’로 늙어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책장담화를 시작한 이후로 새벽기도를 가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수영을 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는 할머니로 늙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저는 거기에 더하여 유쾌하고 늘 상상력이 그치질 않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퍽퍽한 바게트 인간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담화님은 어떤 노년을 그리고 계신가요?

부디 상과염 따위는 다 없어지고 건강하고 팔팔한 노년은 추가해주시길 부탁드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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