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Round] 일단, 씁시다.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by 필화

잘 지내고 계세요, 필화님?


와… 노년 말씀이신가요..


저는 방향성만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전, 계획하고는 안 친한 사람이라서요. 일단 안 아프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요. 나이가 들어서도 저 역시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 밖의 소소한 바람이라면 친구들이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건강한 마음도 신체 못잖게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말이죠. 필화님의 지분은 상당히 크답니다. “오늘은 빵”이라고 하셨으니 베이커리 컨셉으로 말씀드리자면 필화님은 단언컨대 짭짤고소입니다. 이미 더없이 훌륭한(+든든한) 에이전트의 역할을 하고 계시니,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코드네임도 하나 드리겠습니다. Agent Pretzel,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뭐를?)


그건 그렇고 서점 주인이라, 멋져요. 언젠가 서점을 여신다면 구석에 책상 하나만 빌려주세요. 저 거기 좀 빌붙으려고요. 지금은 친구 카페에서 종종 빌붙습니다만 그게, 조금 멀어서. 어쨌거나 집 말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가득 쏟아부은 공간을 가진 사람들은 좀 많이 부럽습니다. 자, 그건 그렇고 말이에요.


지난 편지에서 인용해 주신 UFO와 USA의 발음 대결 한판은, 저 역시 기억하고 있는 문단이라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득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맙니다. 으응? 하지만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은 엄연히 나사인걸? 그걸 누가 엔에이에스에이라고 읽어? 아니 그렇습니까? ㅋㅋㅋ 역시 인간은 모순투성이입니다. 아, 엄청 즐겁네요. 제가 이렇게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한다고 지적당할 때는 난감하고 민망하고 짜증나던데, 반대 입장이 되니까 무지하게 신나요. 참 저란 인간도 덜 되었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웰던은 맛이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와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저는 안 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느긋하게 읽으려고요. 예전만큼 마음이 확 땡기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요…




필화 님은 미스터리를 좋아하시죠. 예전만큼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저 역시도 미스터리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일본 작가들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아주 좋아하고(혹시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읽어보셨나요? 미스터리 느낌이 강하지는 않지만,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고전 추리물도 많이 읽었죠. 제 인생 최초의 미스터리는 뜻밖에도 셜록 홈즈가 아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였어요. 초딩이에게 그 작품이 얼마나 쇼킹했을지는, 필화 님의 상상력에 맡겨 두겠습니다(씨익).


만약 필화 님이 미스터리를 쓰신다면, 정말 엄청나게 복잡한 설계도가 중첩된… 머리를 쥐어뜯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 필화 님은 논픽션적인 취향과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시니까요. 제가 보기완 달리(보기에도 그런가요, 혹시) 감성적인 비유 쓰기를 즐기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죠. 그러니까 필화 님, 빨리 열심히 단련하셔서 제게 머리 아픈 미스터리 한 편 선사해 주시죠.



쓰기는 시대의 트렌드

우리가 일전에 대화했듯, 쓰기는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이유 같은 걸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고… 그러니 쓰기에 관한 온갖 책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죠.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확인하려고 했는데 제가 때마침 엊그제 책들을 대량 방출한지라 ㅠ.ㅠ) 아마도 일본의 중년 여성 서평가였을 거예요(자신은 없음). 그분이 실용서의 목적이란, 그걸 소유함으로써 ‘뭔가를 만들겠다는 그 목표를 대리 성취한 기분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렇게 쓰셨거든요. 물론 곧이곧대로 듣지 마세요, 제 불완전한 기억력 따위에 의존한 거니까. 그러니 저 역시도 온갖 작법서를 통달하고도 모자라 괜찮은 글쓰기 안내서가 나오면 또 사 보는 몹쓸 병이 도지곤 합니다.


그 병은, 작가의 이름이 신뢰성 있는 브랜드일 경우에 더 심각하게 도집니다. 예를 들면 장강명, 곽재식, 등등등… 그리고 오늘 소개할 김민섭 작가.


김민섭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지방시"라고 말하면 대개는 알더군요. 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요. 저는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그분들이 나름 강하게 표방하시는 어떤 캐치프레이즈를 이름표처럼 붙여두곤 하는데 - 예를 들면 부사를 맹렬히 미워하시는 킹 작가라든가 - 제게 김민섭 작가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가입니다. 이분의 저작을 쭉 읽은 사람이라면 제가 왜 이렇게 기나긴 꾸밈말을 붙여놨는지 이해하실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제가 앞선 회차에 소개한 《도서실에 있어요》와 이 책을 잇는 작은 사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다유리예요. 저는 바다유리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님의 아이가 바다유리를 주우러 나간다는 일화에 저는 순간 엇, 이거- 하고 머리를 필사적으로 뒤졌죠. 분명 어디서 봤는데 하고(제가 한꺼번에 책 4-5권을 조금씩 돌려 읽는 타입이라 바로바로 트래킹이 안 됩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두 권의 책이 한 사람의 독자로 인해 미약한 인연의 끈이 닿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분은 꽤 뿌듯하답니다. 매치메이킹matchmaking까지는 아니더라도요, 어쨌든 책과 책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도 상당히 재미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그런 프로젝트도 하나 하고 있긴 한데 ㅋㅋㅋ 필화 님이 도대체 너는 뭘 하고 사는 거니, 하실 것 같아서 이건 비밀로 덮어두겠습니당!



애니웨이. 본문으로 돌아가죠.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네 김민섭 작가님이 글쓰기와 책을 내는 일에 대해서 책을 쓰셨어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하는가(원론적인 내용은 아니에요), 글쓰기는 어떻게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는가. 작가로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작게 시작한 물음표는 점점 커지고 멀리 가게 되죠. 저자 본인이 작가로서 시작한 계기와, 성장의 그래프를 풀어 보여 주는, 그런 책이에요.



석사논문을 쓴 이후의 나는 어떤 자신감이 생겼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서론, 본론, 결론, 그리고 연구초록까지, 하나의 글쓰기를 완성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이고 언제든 다시 나의 언어로써 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 일을 해낸 개인을 크게 고양시킨다. -p.66~67


여기서는 잠시 멈칫했답니다. 필화 님, 논문 쓰시고 그런 느낌 받으셨어요? 저는 1도 안 받았었거든요. ㅋㅋㅋ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논문을 탈고하자마자 해냈다, 끝이다, 영원히 안녕. 학문의 세계로 가는 문이여 이 자리에서 나의 모든 염원과 원념을 끌어모아 너를 봉인한다. 이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저는 그때부터 이미 사차원이었군요) 모든 자료를 모아 폐기처분했던… 네 뭐 그렇게 장엄하게 저의 학업은 쫑을 맺었던 것이었죠…



그러나 한 사람의 글에 달린 이름표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선배는 “예컨대”를 비롯해 자신의 고유한 표현을 여기저기 남발하지 않았고 누구라도 필요하다고 느낄 법한 그 부분에 그것들을 집어넣었다. 예컨대, 그는 문장을 참 잘 썼다. 문장만 잘 쓴 게 아니라 문장과 문장도 잘 썼고, 문단도 잘 썼다. 하나의 문장은 그대로는 별게 아니지만 여러 개의 문장을 이어나가는 힘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라 쉼표를 넣고 빼고, 조사를 붙이고 떼고, 어미의 반복을 피하고, 하는 여러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개인의 글쓰기 버릇이 한 사람의 이름표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스타일이라거나 작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p.98



이건 정말 글 쓰는 모든 사람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만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스타일을 갖는 거요.

그렇지만 뭐랄까요, 역시 엄청난 볼륨의 연습 없이 유니크한 스타일이 나올 수는 없는 거죠.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기나긴 패션 테러리스트의 시절을 지나오는 것처럼, 이건 지구를 지배하는 물리학 법칙들만큼이나 엄정한 진리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요! 역시 양질전화밖에 답이… (쿨럭)



모 작가가 나의 신간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서평을 쓰면서, “오랜만에 김민섭의 정규 앨범 같은 책이 나왔다”고 한 일이 있다. 나는 따로 댓글을 달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거기에 깊이 공감했다. 2015년에 출간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2016년에 출간된 『대리사회』와 2018년에 출간된 『훈의 시대』를 잇는 다음 책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p.179



이 말도 참 좋았어요. 정규 앨범 같은 책이라뇨. 그렇게 쭉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 그 또한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을 뿐더러, 굉장한 창작의 동력이 될 것 같아요. 필화 님,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일저질러’ 분야에서는 탑파이브에 드는 사람이고, 이미 제 머릿속 기획실에선 필화 님과 함께 만들 온갖 재미난 일들이 매일같이 새롭게 쓰여지고 있답니다. 무섭죠? 걱정되죠? 그리고 조금은 기대도 되죠?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아니라고 해봤자 이미 도망가긴 글렀거든요. φ(゜▽゜*)♪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니겠습니까.


답장 빨라서 무섭죠? 받는 건 즐거운데, 쓸 생각하면 스트레스 받죠? ㅎㅎㅎ 천천히 주세요.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기약 있는 기다림은 즐거운 법이니까요.










잘 지내고 있나요, 담화님?

Agent Pretzel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작품 쓰시는 와중에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 앞에 별칭을 붙이고, 책과 책을 링크해주는 포인트를 만들고, 세계관을 정리하는 사전을 쓰시고, 저랑 또 뭘 하실 거라고요? 담화님. 어디 가서 ‘난 계획 따위는 없어’라고 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알았죠?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걸 보니 에너지가 거의 청춘이세요!! 노년의 계획 따위는 아직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지난 번 담화님의 편지는 미묘하게, 아니 대놓고 “필화야, 어서 글을 써라!”라고 저에게 채찍질을 하시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는데, 느낌만은 아닌 거죠? 아 예...


제게는 미스터리의 사분면이 있습니다. 초체험으로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고, 감각으로는 컬러리스트들이 손 본 아름다운 화면 배색과 구도, BGM으로 가득 찬 BBC의 셜록홈즈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익숙함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감탄으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차지하고 있죠.


세상의 수많은 미스터리를 고작 사분면 어치 밖에 경험하지 못한지라 공부를 좀 더 하고 뵙도록 해요. 이 분들의 탐구와 다작, 혹은 필력 그 사이 어디에도 들이 밀 밑천이 없는지라 어느 세월에나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저는 제가 쓸 수 있는 것을 써보도록 할게요.



위에도 언급했듯이 저의 첫 번째 미스터리도 역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도일의 작품 중 어떤 것이 국내에 먼저 소개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어릴 때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이 대대로 출간되었고 밤을 새워 가며 두근두근 읽었던 것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어쩔 줄 몰라하며, 한 장 한 장 밤을 새 가며 책 읽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이제는 밤이면 자야 하거든요. 담화님은 무슨 책을 그렇게 읽으셨을까요?




여기까지 쓰고 김민섭 작가님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 어떤 책인지 목차와 인용 문구를 살짝 살펴보았습니다. 음... 저는 읽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지방대 시간강사를 했고, 빈곤한 박사생활을 했고, 연줄이 없는 박사지망생에게는 얼마나 교수들이 박한지도 경험했고, 이래저래 소득 없는 생활 끝에 종국에는 병을 얻어 학교를 휴학하고, 그 길로 영영 학위와는 멀어지게 되었으니까요. (잠시 눈물 좀 닦고..) ‘아니 내 현실은 더 박했는데, 이걸 또 책으로 읽으라고?’라는 심정입니다..


하.지.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지식이 단정하게 정리가 되고, 질문이 쏟아지며 더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통합과 통섭이 이루어지는 재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학문의 깊이를 더해갈수록 무딘 칼이 벼려지듯 연구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세와 몸의 감각, 메타인지는 쌓여가게 됩니다. 또 빼앗길 수 없는 몰입의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죠.


제 경우엔 여러 논문과 보고서를 쓰면서 자신감보다는 내면의 서가를 하나씩 채웠다는 보람찬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즐겁게’ 하고 있음에도 ‘내 것’이라는 감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 하고 싶은 연구를 했다면 조금 달랐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오히려 더 ‘내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추천해주신 책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정신으로, 자신의 몸으로 스스로를 반추하고 사회 속에서 타자와 자신을 돌이켜보는 이야기 같아서 지금 저에게는 더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엔 이틀 간의 고민 끝에,,, ‘그래,,, 이거지.’하며 슬며시 이 책을 꺼내봅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입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이 책은 나혜석의 일평생 적은 글들을 모아 출간한 책입니다. 당시 교육받은 여성이 적었고, 자기 의사를 이토록 공공연하게 밝히는 여성은 희귀했으니, 그녀의 글들은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사로도, 개인의 에세이로도, 시대의 남존여비사상에 반하는 여성인권에 대한 서술로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부분은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표지에 ‘한국의 페미니즘 고전 읽기’라고 쓰여 있으나, 이 것을 어떤 ‘주의’를 주장하기 위한 책으로 읽기보다, 한 인간의 고뇌와 투쟁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고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혜석은 부모의 혼인 압박에 맞서는 주인공을 그린 <경희>라는 소설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중략)

하느님! 하느님의 딸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내 생명은 많은 축복을 가졌습니다.

보십쇼! 내 눈과 내 귀는 이렇게 활동하지 않습니까?

하느님! 내게 무한한 광영과 힘을 내려 주십쇼.

내게 있는 힘을 다하여 일하오리다.

상을 주시든지 벌을 내리시든지 마음대로 부리시옵소서. 《여자계》(1918.3) p.65~66





글 쓰는 사람의 지향점


이 글로 자신이 부모가 정해준 혼사를 따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역사에 남을 이혼사를 겪은 후에 <이혼고백장>을 발표하기도 하지요. 저잣거리에서 자신의 이혼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왜곡되는 것을 저어하여 신문에 낸 <이혼고백장>은 파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럼에도 당당했던 나혜석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들을 거리낌 없이 적어 냅니다.


그 중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에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그렇게 쾌활하고 명랑하던 내가 소금에 푹 절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얼이 빠지고 어릿어릿하고 기운이 없고 탄력이 없다. 나이 마흔이라 그럴 때도 되었지만 그래도 심한 상처만 아니 받았던들 그렇게 쉽사리 늙을 내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여자가 되고 싶다는 이상만은 언제까지든지 계속하고 있다.

남이 이성으로 대할 때 나는 감각으로 대하자. 남이 정의로 대할 때 나는 우아로 대하자. 남이 용기로 나를 대할 때 나는 웅양(위엄)의 마음으로 남을 대하자.

나는 금욕 생활을 계속하자. 심령의 통일과 건강보존으로. 그는 나의 성질이 냉혹한 까닭이 아니라 오히려 정열적인 까닭이다. 나는 일견 엄격하게 보이나 그는 내가 냉정한 까닭이 아니라 가슴에 피가 지글지글 끓는 까닭이다. 나는 영적인 동시에 육감적이 되고 싶다. 자존심이 강한 동시에 진실하고 싶다. 나는 남의 큰 사랑을 요구한다. 아니 도리어 큰 사랑을 남에게 주려고 한다. p.216



저는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이 책의 제목<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에 가닿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글로 쓰고 표현해 내면서 ‘신여성’의 표본을 보인 것이지요.


글 쓰는 여자로, 신여성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했던 그녀는 행복했을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혹자는 그녀가 객사한 것을 두고 불행한 삶이라 하지만, 그녀는 감정과 이성에 충만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여하튼, 백 년 전 그녀가 몸소 선보인 ‘글 쓰는 인간의 삶’의 지향점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도 이 편지를 적으며 조금이나마 ‘어떤 책을 써야 할까?’하고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바람이 시원한 밤입니다.

새벽녘엔 춥기까지 하고 말이죠.

슬슬 환절기인가 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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