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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Apr 04. 2024

그 곳, 그 서점에서 누리는 행복.

《파리 스케치》

담화님~


안녕.. 드디어! 시즌2를 시작하며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봄이 되었네요. 다들 그렇겠지만 저 또한 봄이 되면 연초록빛으로 말갛게 솟아오르는 예쁜 잎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 고운 빛에 감탄하고, 정직한 시간에 고맙고, 다가올 따뜻한 날들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고 말이에요.



담화님의 다정하고 섬세한 편지 정말 잘 읽었어요. 뭔지 모를 감정이 찡-하고 가슴을 울렸달까요.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OST의 가사와 작품 설명, 그리고 지난 주에 읽으셨던 책 《심호흡의 필요》까지.. 모두 잔잔하고 친절하며 다정했습니다. 감사해요.




우리가 15주 동안 주고받은 편지들을 다 읽어보셨다니 역시! 기록의 달인! 담화님 캐릭터의 능력치로 치면 기록물의 수집과 보관도 한몫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모노노아와레’라는 단어 역시 담화님께 참으로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화님의 기록물과 기록물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뿜어내는 향이랄까요.


한 단어씩 적어두신 그 예쁜 말들도 참 좋더군요. 그 날을 기억하는 한 마디들.. 담화님은 그것이 문장이든, 단어든 가리지 않고 ‘언어'를 사랑하시고, 모으고, 해체하고, 소개하고 만들어내시니 그야말로 문장을 직조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우리 인생의 로그라인은 황혼이나 되어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만, 기대하는 대로 로그라인이 나와주길 바라며 살아야죠. 우리 이번 시즌에 얘기 많이 나누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음.. 아이돌의 팬처럼? 아니죠.. 음 성덕처럼? 음.. 그냥 담화님을 응원하는 친구로 남아 있을게요.




책 좋아하는 사람이 다 그렇듯이 저도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합니다. 저는 책 자체보다는 공간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문장에 몰입한 사람들 얼굴도 좋고, 잔잔한 음악도 좋고, 작은 웅성거림 가운데서 느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밀도가 있는 공기도 좋고요. 게다가 서점은 그 공간에 담고 있는 책의 종류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껴요. “그건 인테리어랑 책의 표지가 다르니까 당연하지!”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네. 당연지사입니다만, 그래도 대형서점이든 개인서점이든 어린이 그림책이 있는 곳과 역사책이 있는 공간은 공기의 질감이 다르거든요.


담화님의 집 거실도 참 좋았어요. 조용히 앉아서 따뜻한 햇살 받으며 책 읽기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첫눈에 반한 다락방도 좋았답니다. 이제와 말하지만, 그 다락방은 ‘아 여기서 책 읽다가 이 포근함에 잠들어도 너무 좋겠다.’ 싶었거든요.


저희 집은 어떨까 모르겠어요. 저야 익숙해서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문호이신 이 분도 서점을 좋아하셨더군요. 바로 이번 주에 읽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파리 스케치》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소제목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입니다.



그 시절에는 책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대여문고에서 책을 빌렸다. 그곳은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서점이자 도서대여점이었다. 겨울이면 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거리에 있는 그 서점에는 큰 난로를 피워놓았고, 테이블과 책장이 있었다. 창가에는 신간들이 놓여 있고, 벽에는 작고했거나 살아 있는 유명작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멋지고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곳이었다.(중략)

처음 그 서점에 갔을 때는 너무 쑥스러웠고 대여문고를 이용할 돈도 없었다. 그녀는 돈이 생기면 아무 때나 예치금을 내라며 도서 카드를 만들어주고 마음껏 빌려가라고 했다. (중략)

나는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 두 권과 D.H.로렌스의 초기 작품을 빌렸다. 아마 《아들과 연인》이었을 것이다. 실비아는 원하면 책을 더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콘스탄트 가넷이 번역한 《전쟁과 평화》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꾼과 기타 단편선》을 골랐다.



집에 돌아온 헤밍웨이는 부인과 함께 그날 오후에 서점에 가서 예치금을 내고, 산책을 하고, 화랑이랑 상점 구경을 하고, 까페에서 차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협동조합에서 와인을 사들고 와서 둘만의 시간을 갖자고 다정하게 의기투합을 한답니다. 그리고 그 대화 끝에 나오는 이 소박한 대화가 제 마음을 따뜻한 난롯가의 안락의자로 데려다주었죠.



“이제 이 세상의 읽을 만한 책들이 다 우리 것이 되겠군. 여행 갈 때 책을 가져갈 수도 있고.”

“정말요?”

“그럼!”

“거기에 헨리 제임스의 책도 있어요?”

“물론이지.”

“세상에, 그런 곳을 찾아내다니 우린 운도 좋아요!” p.32~34




문학을 사랑하는 한 가난한 젊은 작가가 따뜻하고 다정한 서점에서 책을 빌려와 두 부부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명히 그려지더군요.


헤밍웨이의 에세이답게 이 책에는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세이가 많습니다만, 여기에는 따뜻한 큰 난로가 자리한 서점이 있고, 언제든 와서 책을 빌려가라는 주인장의 너그러움이 있고, 마음껏 활자를 읽게 된 독자의 기쁨도 모두 어우러져 있어서 담화님과 나누고 싶었어요.


담화님 말씀대로 책을 통해서 텍스트 아래의 서브텍스트의 감각을 키워가면서 또 책과 호흡하는 공간, 또 사람들과의 내밀한 교류도 잘 만들어가 보아요.




지난 15주간 저희가 써내려간 이 서간문들이 독자님들께 그런 마음의 서점이 되어드렸을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저에게 담화님의 편지는 그러했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답니다. <책장담화>라는 곳, 그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담화님

시즌2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고마워요.

우리 다음 시즌3을 시작할 때까지 둘 다 건강하게 잘 지내보아요~


봄날에. 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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