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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조합원 프로젝트 (1)

전재산을 어디로 보내시겠습니까?

by 손프로

대출을 6억으로 제한하는 627규제가 나오고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듯 잠잠해졌다.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매수자들은 대출이 막히자 일단 관망했고 덕분에 시장은 일단 주춤했다. 하지만 매도인 역시 매일 호가를 올리던 뜨거운 시장 분위기를 쉽게 잊지 못했고 굳이 호가를 내리거나 가격 조정이 가능한 매물은 많이 없었다. 매일 매물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고 현장을 나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기축 아파트보다는 앞으로 신축이 될 정비사업지를 사는 방향성을 갖고 매물을 찾아 나섰다.


서울 신축을 공급하는 주체가 된다.
조합원이 되어 정비 사업의 사이클을 경험한다.
시간에 기대는 투자를 한다.

서울 정비사업지 중에서 한남 성수의 뒤를 잇는 노량진은 교통의 요지로 서울 어디를 가든 접근성이 좋은 지역이다. 게다가 이 좋은 위치의 땅에 신축들이 대규모로 들어온다면 마포에 버금갈 주거지로 각광받을 곳이었다. 지금은 고시원과 빌라가 즐비한 낙후된 동네지만 10년 뒤에는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변할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이미 사업이 많이 진행되면서 피가 많이 오른 상태였지만 서울 신축을 선점한다는 차원에서 매수하고 싶은 곳이라 꾸준히 임장을 다녔다.


5월

나 : 사장님, 노량진 1, 3구역 매수하고 싶은데 매물 좀 있을까요?

사장님 : 아이고, 왜 지금 왔어~ 2월달에 강남 토허제 풀렸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다 샀잖아. 피가 계단식으로 끝도 없이 오르더라구. 3개월 만에 피가 5억은 올랐어. 마진이 너무 없는 것 같아. 다른 사업장 찾아봐.


신당 8구역과 마찬가지로 노량진 역시 피가 많이 올라 사장님이 매수를 권유하지 않을 정도였다.


6월 초

나 : 사장님, 이 구역 매수하고 싶어서요.

사장님 : 투자금 얼마 가지고 있어요? 집은 팔았어요?

나 : 지금 매도 중이에요.

사장님 : 일단 팔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6월 중순

나 : 사장님, 저 매도 계약서 쓰고 왔어요.

사장님 : 오, 빨리 매도하셨네요. 그럼 이 매물 검토해보세요.

나 : 초기 투자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어렵겠어요. 초투 작은 매물 나오면 연락 주세요.


627 규제 후

나 : 대출 규제 나오고 나서 분위기는 어때요?

사장님 : 잠잠하죠. 그래도 호가는 안 내려요. 매수 대기자가 많다는 걸 주인들도 다 알아요.

나 : 그래도 가격 조정되는 매물 좀 없어요? 제가 잔금 빨리 치를 수 있어요.

사장님 : 주인들이 그렇게 급하지 않아서요. 빠른 잔금 조건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요.

나 : 네, 혹시 급매 나오면 연락 주세요.


규제가 나오고 급매가 좀 나올줄 알았지만 매도자들은 급하게 팔아야 하는 사정이 없었고, 매수 대기자인 나만 조급해져 갔다.


7월

나 : 규제 나온지 좀 됐는데 요즘 분위기는 어때요?

사장님 : 아직 시간이 더 지나야 해요. 매도인들은 지금 급할 게 없고, 시장 상황도 잘 몰라요.


다음날 전화가 왔다.


사장님 : 이 매물 새로 나왔는데 검토해보세요.

나 : 네. 제가 생각할 때 아직 비싼 것 같은데 가격 조정은 더 안되나요?

사장님 : 지금 이 가격에도 산다는 사람이 있어요.

나 : 네. 저는 더 기다려볼게요.




매수 우위 시장이 되려면 매물이 많아야 하는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손바뀜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매도하려는 물건 자체가 많지 않았다. 또한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거의 신축 가격만큼의 투자금이 들어 가격에 대한 확신도 들지 않았다. 속도가 빠르다 해도 이주, 철거, 공사까지 보수적으로 10년은 잡아야 할텐데 그동안 마음고생하는 거에 비하면 수익이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If~

정비사업은 리스크도 크지만 수익의 크기도 크다. 동굴에서 100일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며 버텼던 곰이 인생을 바꾸었던 것처럼 헌집이 새집이 될 때까지 수많은 시간을 인내해야 달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정비 사업에 대해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나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Tip. 급매 잡는 법

급매를 잡으려면 매도를 하고 현금을 들고 있는 게 유리하다. 당장 자금이 준비되어 매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매물 정보를 줘야 거래가 성사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방문을 하든, 전화를 하든 사장님과 래포를 잘 형성하며 강력한 매수 의사를 보여야 급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나 말고도 급매를 찾는 매수 대기자는 많기 때문에 사장님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급매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스스로 확신이 없으면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시장 안에서 가격의 흐름과 거래 양상을 꾸준히 지켜본 사람만이 급매를 낚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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