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쯤 여자아이들이 주인공인 청소년 소설을 우연히 읽었다. 등장인물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는 나이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무리 중 한 아이가 가장 먼저 생리를 시작하고 그 아이의 엄마가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어주는 부분이다. 친구들은 선물로 생리 용품과 편지를 가져오고 케잌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파티의 주인공에게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는데, 주인공은 조금 쑥쓰러운 듯 소감을 말해준다.
그때 초경 파티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첫 생리는 부러움과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다’라는 관념도 그때 접했다. 책 속의 파티는 특별해보였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이 되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다행히 소설 밖에서는 그런 요란스러운 파티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에게 꽃다발을 받았고 저녁 메뉴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랐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런 문화를 어디서 접했던 걸까? 나는 누군가의 초경 파티에 초대받은 적도 없었고,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제외하면 그에 관한 정보를 들은 적도 없었다. 어쨌건 우리 집에 암묵적으로 전달된 축화 문화 덕에 저녁에 맛있는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초경 파티를 어떻게 알게 되는지, 어떤 파티를 경험했는지도 궁금하지만, ‘왜 생리를 축하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근원적인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생리를 축하하며 꽂아주는 카드에 “진짜 여자가 된 걸 축하해!”라는 문구를 관용적으로 쓰곤 하던데, 참 이상한 이유다. 진짜 여자란 무엇인가? 그 전에는 가짜 여자이기라도 했던 것인가. 그러면 생리를 하는 우리는 비로소 진짜-여자가 되었다가, 생리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 가짜-여자로 돌아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걸까. ‘진짜-여자’인 상태는 가짜-여자인 상태보다 좋은 걸까? 왜냐하면 보통 축하는 새로운 도약을 할 때나, 중요한 일생의 과업을 마쳤을 때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진짜-여자가 일종의 도약이나 성취라면, 생리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 쓸쓸한 박탈감을 느껴야 하나.
조금 더 현실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보면 일종의 위로 파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리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고통스럽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 귀찮은 일이니까. 또, 이전까지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피를 뚝뚝 흘리는 경험은 호러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파티를 가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한달 주기로 컨디션의 변화를 겪을 거고, 평생 만 개가 넘는 일회용 생리대를 쓰게 될 거야. 가끔은 새벽에 일어나 이불을 손빨래해야 할 거고, 그 외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어쨌든 너무 놀라지 마렴, ‘이 세계’에 오게 된 첫 날을 축하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초경을 축하하는 문화가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생리라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이루어지는 것이든, 위로를 하고 정보를 주는 의미이든 ‘파티’는 파티다. 생리는 엄청나게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엄청나게 특별한 일만 축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믿지 않는 종교의 성인(聖人)의 탄생부터 과자의 생김새, 태어난지 1만일....... 온갖 것을 다 기념하는 세상이다. 내 몸이 어떤 변화의 단계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드는 일은 어쩌면 익숙한 파티들보다도 자기 자신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은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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