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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Nov 01. 2019

오늘도 최선을 다해 죽을 준비를 한다

[시래기국밥]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조직검사 해봐야겠는데요.”



 그의 메마른 한 마디에,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친한 친구 몇 명이 유방외과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건강염려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툭하면 병원에 가는 나이기에 마실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길이었다. 그런데 조직검사라니! 심지어 유방외과는 태어나서 처음 가 본 병원이었고, 그동안 어떤 병원에서도 내게 조직검사를 권고한 적이 없었다.


 탕탕탕. 생각보다 경박한 총생검 소리에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는 아닐까 기대했지만, 피멍으로 물든 가슴을 보고 나서야 장난 아니구나 싶었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음 날 있던 약속을 미루려 친구와 통화하다가 주책맞게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다. 이 와중에 배알도 없는 배는 자꾸 꼬르륵거려서 훌쩍이며 식당가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일절 눈길 한 번 준 적 없던 시래기국밥 집에 들어갔다. 왠지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구석에서 반주를 즐기고 계신 어르신을 봤다. 국물에는 역시 소준데 이제 술도 못 먹겠지. 그러다 불현듯 어떤 생각 하나가 핑 스쳤다.


 “나 지금 얼마 있더라?”


 한 달 벌어 한 달 버텨내기 급급한 부모님께 병원비를 부탁할 상황은 아니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여동생은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후 이제야 자기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남동생은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불확실한 생사 앞에서 확실한 미래를 그리는 동생들에게 나는 감히 손 벌릴 엄두도 못 냈다. 살아 있을 때야 생활력 강하고 독립심 강한 내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쳐도, 죽음 앞에서조차 경제적으로 기댈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러웠다. 얼마 전엔 지긋지긋한 월세 살이를 끝내고 처음으로 작업실 전세 라이프를 시작한 터였다. 그래서 정말이지,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나 이제 좀 살 만해졌는데.






 결과를 기다리던 일주일 중 삼일은 내리 울기만 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죽어 감’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편작 《모기를 준비하면서는 특히 더 그랬다. ‘나는 화장할 거야. 유족들에게 추모는 작게 했으면 좋겠다고 미리 말해 놔야지. 납골당도 필요 없고 산골 해도 상관없어.’ 주로 ‘장례’에 국한된 죽음만 떠올리던 내게 ‘죽어가는 과정’은 미지의 세계였다. 심지어 유방암은 더더욱 낯설었다. 가슴도 리콜이 되나요  연재 당시 주인공 ‘유빈’의 엄마가 유방암 투병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때 잠시 살펴본 적은 있다. 5년 내 완치율이 95%라는 통계나 일명 '착한 암'이라는 별명에 놀라기도 했으나, 대사로도 썼듯 “확률이 정답은 아니잖아, 그냥 숫자일 뿐이지.”라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나는 죽음이 두려워 운 것은 아니었다. 억울해서 울었다, 억울해서. 죽기엔 너무 어린 나인데, 애초부터 내 가슴살에 애착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예 없어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아직 못 해 본 게 너무 많은데......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는 지독한 악수를 끊어내려 얼른 침대에 누웠지만, 자꾸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아예 수건을 눈두덩이 위에 올려두고 잤다.



 넷째 날,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부릅뜨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최악의 경우, 치료비와 생계비 모두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가계부 엑셀을 켜고 당장 현금으로 융통할 수 있는 금액을 계수했다. 평균 암 치료비 기사를 보고, 재발은 몰라도 최소 한 번은 치료할 수 있겠다며 한시름 놨다.


 아, 일은 어쩌지. 마침 조직검사를 받은 날이 오늘도 꽐랄라라시즌1 마지막화를 업로드한 날이었다. 시즌1까지 깔끔하게 끝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검사 결과에 따라 작품은 ‘완결’이 아닌 ‘미결’로 남게 될 것이다. 담당 PD님께는 뭐라고 하지, 유가족에게 유료 수익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하나, 근데 나 왜 계속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지? 모은 돈으로나마 한 번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발버둥 치는 내가 가엽긴 했으나,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났다. 치료는 눈물이 아니라 돈이 해결해주는 것이므로.



 다섯째 날, 버킷리스트를 펼쳤다. 작가 지망생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버킷리스트는 커리어 및 자기 계발, 인생, 가족, 건강, 수입 안정화 총 5개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미처 체크하지 못한 목록을 살폈다. 운전면허 취득이나 취미생활 찾기는 차치하더라도 인스타툰을 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지금과 다른 그림체와 필명으로 ‘회색빛 일상툰’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가뿐한 걸음으로 세상을 마주할 때마다 나를 눅눅한 저 바닥 끝으로 지독하게 끌어당기는 녀석은 가난이었기에. 언젠가 이 버러지 같은 감정들과 정면 승부하고 싶다는 갈증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림 그리는 것이 일처럼 느껴지는 내게 원고 외 작업을 한다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 결과가 나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꼭 이겨내서 인스타툰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툰을 책으로 엮으면 나는 떠나도 인세는 남을 테니까. 그것이 부모님의 이사 유랑기를 끝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조직 채취를 한 부위가 오른쪽인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유방 절제를 하게 되면 팔 쓰기 힘들다는데, 그것은 오른손잡이인 내게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데, 그림이 아니면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글을 써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글은 그림보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방대했다. 무엇보다 태블릿 펜보다는 키보드를 쥐는 것이 오른쪽 가슴 근육에 덜 부담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검사 결과가 어떻든, 그때는 꼭 부끄러움 없이 내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하며 "에세이 출판 계약"이라는 새로운 리스트를 채웠다.



 남은 이틀은 왓챠만 봤다. 어차피 무얼 하든 진득이 집중하기는 어려울 테니, 마냥 심신을 멍청하게 놀리고만 싶었다. 울고 싶을 땐 슬픈 멜로, 웃고 싶을 땐 코미디, 심지어 평소 좋아하지 않던 SF까지 찾아보며 열혈 시청자 모드를 켰다. 개중에서 가장 몰입해서 본 건 애니메이션 《일하는 세포들》이었다. 질병에 대처하는 세포들의 일상을 의인화하여 풀어낸 의학 코미디물이다. 단연 눈에 띈 에피소드는 7화 <암세포> 편이었는데, 암세포에 맞서 싸우는 백혈구를 향해 연신 "간바레 호중구 센빠이!"를 외쳤더란다. 끝내 암세포가 죽는 엔딩을 보며 안도했지만, 그가 눈 감기 직전 “졌다고 해주겠어. 이번엔 말이지" 하는 순간, 냅다 육두문자를 날렸다. 제발 재발은 하지 마, 이 씨발놈아! 코미디라는 장르가 무색할 정도로 《일하는 세포들》은 내게 휴먼 드라마요, 다큐멘터리였다.






이윽고 다다른 디데이.



 덤덤하게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보면 예상할 수 있듯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초음파에 잡힌 못생긴 덩어리는 섬유선종이었고, 미세석회화가 있긴 하지만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태라 했다. 6개월 단위로 추적검사를 하라는 의사 말이 “어디 한 번 6개월씩 쫄리며 살아 보세요”로 들렸지만, 기분 탓이겠지. 방송국은 분기별로 개편 압박을 받는다는데, 반년마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최악의 경우를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했기 때문인지 “6개월 후 다시”라는 조건부 인생이 마치 인생 2회 차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다시 시래기국밥 집에 들렀다.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시래기가 시금치 같은 '타고난 나물'인 줄 알았다. 항상 식탁 위에 완벽하게 조리된 상태로만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 시래기를 사러 마트에 가고 나서야 무청을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배곯던 먼 옛날, 무 꽁다리조차 버리지 못하고 조리법을 고민하던 선조들의 지혜가 오늘까지 이어진 건 아닐까 싶다.


 마침내 모락모락 힘차게 김을 내뿜는 국밥 한 그릇이 내 앞에 차려졌다. 문득 오늘의 나와 참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린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바싹 말라비틀어지고 나서야 식탁으로 나설 채비를 하는 시래기. 반가워, 나도 오늘부터 인생 2회 차거든.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다행이야. 지금의 넌 그 어느 때보다 맛스러워 보이거든. 내 앞에 서기까지 견딘 그의 모진 시간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국물 한 모금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 그에겐 이것이 완벽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최선을 다해 죽을 준비를 하기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는 감히 '좋은 삶'과 같은 맥락에 있노라 답하고 싶다. 물론 그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죽음을 사유하던 지난 일주일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보장된 삶
 이러니저러니 해도 먹고살만해야 이상적인 가치들을 떠올릴 여유가 생긴다. 돈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제 몸 건사할 정도의 돈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삶

 내가 나를 배신할 리 없으므로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우선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시작했다. 심지어 술도 끊었다. 나는 작업하며 마시는 흑맥주를 사랑하고, 밤샘 마감 후 해장국에 소주로 자축하는 게 삶의 낙인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주변에 6개월 금주를 선언했다. 현재 5개월째인데 놀랍게도 술 생각이 전혀 안 난다. 아마 특별한 일 아니면 먼저 술을 찾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취미도 찾았다. 배움이다. 그것이 단순히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행위일지라도, 나는 새로움으로부터 오는 자극을 한껏 즐기기로 했다. 혹자는 암도 아니라면서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며 조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삶과 죽음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누가 대신 살아주지도 죽어주지도 않는다. 나는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힐지언정 생사의 방향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고 싶다.



마음을 나눌 이가 있는 삶

 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몇몇을 그리니 배시시 웃음이 났다. 그들과의 시간 속에서 난 늘 웃고 있었다. 덕분에 행복했구나 싶어 왠지 짜르르해졌다. 한편으론 그들의 배려를 당연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고마운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줘야지. 사랑하는 데 시간제한을 두지 않으리.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있더라도, 못 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는 삶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아니, 쓰고 있다. 그동안 글쓰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돈의 치졸함으로부터 비롯된 나의 삶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자신의 치부를 타인에게 말하는 순간, 그들에게 약점을 쥐어준 것과 다름없음을 깨닫게 된 어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로써의 글쓰기'를 위해, 동정받고 싶진 않지만 위로받고 싶은 마음으로, 태블릿 대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더 이상 과거의 치부와 미래의 막연함에 쫄지 않기로 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죽을 준비를 한다.

 미련 없이 뒤돌아 설 어느 미래의 나를 위해.







브런치북 <글러 먹긴 했지만 말아먹진 않아서> 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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