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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Nov 09. 2019

애써 혼자가 될 용기

[삼각김밥] 혼자서도 잘 먹어요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동안 나를 지탱하던 가장 큰 축은 '소속감'이었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주어진 과제를 해내는 데 충실히 사는 것. 초중고 12년과 대학 4년까지, 다들 그렇게 사니까 이 외에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채, 학생 신분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가정형편 상 재수는 꿈도 꾸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 따라 무조건 합격할 것 같은 학교들로 원서를 썼다. 그렇게 입학한 곳이 독어독문학과였다. 관심도 애정도 심지어 일상에서 본 적도 없는 과였지만, 막 스무 살이 된 새내기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공부가 뭐 대순가, 술이 있는데! 성인이 되어 만난 유흥의 세계는 실로 방대했다. 그 반짝이는 삶을 뒤로한 채 당시 살던 반지하집으로 꾸역꾸역 기어 들어가는 내가 비참해서, 더더욱 술에 취해 살았다.






 이런 무탈한 삶에도 경로 이탈이 생겼는데, 바로 '전과'였다. 복수전공으로 듣던 국어국문학에 애정이 생기면서 2학년 2학기에 느지막이 전과를 강행했다. 어떤 집단에서 내 발로 나와 다른 길을 개척한 첫걸음이었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전과생은 같은 전과생이나 편입생과 친해진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혼자 학교를 배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들과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더 이상 독문과 친구들 시간표에 맞춰 점심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좋았다.

 문제는 새로운 무리와 친해지기엔 삶의 온도가 너무 달랐다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부모님께 용돈을 지원받는 입장이었다. 학생식당에서 겨우 한 달 식비를 해결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학교 밖 맛집 투어에 더 애정을 쏟는 부류였다. 줄어드는 지갑에 위기의식을 느끼긴 했지만, 홀로 밥을 먹느니 한 끼 식사에 일주일치 식비를 들이붓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며 버텨냈다.

 어느 겨울방학, 함께 스키장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과 생활수준이 차이 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던 터라 분명 불편한 자리일 거라 걱정했지만, 혼자가 두려운 내게 거절할 용기는 없었다. 계절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긴다는 그들은 개인 스키복을 챙겨 왔고, 생전 처음 스키장에 간 나는 흡사 단무지를 연상케 하는 누루딩딩한 옷을 대여했다. 눈발 흩날리며 설산을 휘젓는 사람들 사이로, 서 보기라도 하겠다며 끙끙 앓는 단무지 한 덩어리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울의 어느 역에서 각자 헤어지려던 찰나,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고작 하루 못 본 딸이 그리워 직접 데리러 가겠다는 아버지의 전화였다. 마침 그녀와 같은 방향이었던 나는 그 차를 얻어 타게 되었는데, 검은색 세단의 앞코에 동그라미 네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좋은 차에서, 안정적인 승차감을 업고,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녀 사이가 그렇게 부러웠다. 순간,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덜컹이던 아빠 차가 떠올랐다. 몹쓸 비교를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솔직히, 나란히 앉은 부녀를 보며 '나도 저랬으면' 하고 아빠와 나를 빗대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불편한 찰나마다 아빠를 미워하는 내가 싫어, 용기를 냈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을 용기. 아마 그들도 서로 다른 생활수준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독문과 친구들과 점심시간을 맞췄고, 마음 편히 학생식당에 갔다. 이제 일주일치 식비를 한 끼에 쏟아부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맞지 않을 때면 매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아직 혼자 밥 먹을 용기는 없을 때였다. 삼각김밥의 양대산맥이라는 '전주비빔밥'과 '참치마요'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전주비빔밥'을 골랐다. '참치마요'는 소가 한가운데에 모여있는 반면, '전주비빔밥'은 모서리 끝까지 고루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암모니아 냄새 풀풀 나는 변기 위에 앉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포장지를 벗겼다. 알차게 비벼진 '전주비빔밥'을 한 입 베어 물곤, 차가워도 맛있어서 다행이라며 훌쩍였다.

 그러다 뒤늦게 광고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관련 대외 활동을 하느라 2년을 휴학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학교 안에 갇혀 있던 내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다. 주체적인 삶에 흠뻑 취한 휴학을 마무리한 후 다시 학교를 찾았다. 2년 동안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우선 캠퍼스가 이전했고, 새 건물 냄새가 진동하는 학생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일 따위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학교 밖엔 더 멋진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6학년 왕고'에게 혼밥도, 혼강도 별 일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히, 긴 휴학 기간과 맞물려 그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제 더 이상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그거면 됐다.


 소속감에 얽매이던 여린 소녀는, 3번의 이직과 3개의 전직 끝에 아예 프리랜서가 되었다. 소속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 위태로운 나날들을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화장실에 숨어 눈물 젖은 삼각김밥을 먹던 그녀는, 이제 혼자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술도 먹고 여행도 간다. 애써 혼자가 될 용기를 내지 않아도 혼자가 익숙해진 요즘.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가나 보다.







브런치북 <글러 먹긴 했지만 말아먹진 않아서> 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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