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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Oct 18. 2019

엄마어도 통역이 되나요?

[대갱이] 당신의 투박함이 그리울까 봐

"대갱이 갖다 줄까?”


 대갱이. 엄마가 입 밖으로 내뱉기 전까진 조합조차 해본 적 없는 단어였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싶어 '댕댕이'나 '땡땡이'는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뚝심 있게 '대갱이'라고 답했다. 엄마가 어렸을 적 자주 먹던 간식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아, 사투리구나' 했다. 전라남도 영암이 고향인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다. 고향을 떠난 지 30년도 훨씬 지났지만, 그녀의 뚝심 있는 대답처럼 사투리는 쉬이 꺾일 생각을 안 했다.


 대갱이는 개소겡을 뜻하는 방언으로 망둥어목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주로 건어물로 식용된다. 자식 셋이 모두 독립한 후, 엄마는 그나마 본가와 제일 가까운 내게 종종 반찬이나 주전부리를 가져다줬는데 대갱이의 등장은 처음이었다. 하도 생경한 단어라 검색해보니, 바싹 마른 몸통과 큰 입, 조악한 이빨을 품은 몽타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생김새에 기겁하는 내게 엄마는 먹기 편하라고 대가리는 다 잘랐다며 애써 위로했다. 참형이라니! 흉측한 몰골에 딱 맞는 형벌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대갱이의 더한 미래를 알고 있었다. 녀석은 수령 즉시 냉동고로 수감될 것이라는 것을.




문제는 대갱이가 아니라 '엄마어'였다.


 '엄마어'란 비문으로 점철된 엄마의 대화에 각종 사투리와 은어가 섞여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비꼬는 나만의 용어다. 분명 한국어인데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제2한국어'랄까. 이를 테면 이런 상황이다.


<부모님이 고깃집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문자>
나: 엄마, 아빠랑 고기 드셨어요?
엄마: 못갔슴. 아빠가 고기 구워요.


 맞춤법 오타는 귀엽기라도 하지, 문제는 시제였다. "고기 드셨어요?"라는 질문에 "못갔슴"이라는 과거형을 답했으니 "안 먹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는데, 뒤에 아빠가 고기 굽고 있는 현재형이 붙으니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고깃집은 못 갔지만, 고기를 사서 집에서 구워 먹고 있다는 걸까? 아니면, 아빠를 만나러 가던 중 갑자기 약속이 생겨 엄마는 못 가고, 아빠 혼자 고기를 먹고 있다는 걸까? '엄마어' 통역을 위해 생고기가 탄 고기가 될 때까지 머릿속에서 한참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전화를 걸었다. 정답은 이랬다.


(아직 고깃집에) 못갔슴. (내가 분명 아빠한테 1시간 후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잘못 이해했는지 지금 고깃집 도착해서) 아빠가 (혼자) 고기 구워(먹고 있어)요.


 두 문장 사이의 블랙홀이 얼마나 큰지, 엄마의 전우주적 문장 구성력에 나는 “홀!” 하고 헛웃음 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엄마어'는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고.



나는 엄마의 투박함이 싫었다.


 엄마의 말은 서울살이를 꿋꿋이 이겨낸 사투리만큼 일터에서 배운 거친 은어들이 꽁꽁 에워싸고 있었다. 갱년기 이후 부쩍 열이 많아진 엄마는 유독 여름 식당일을 힘들어했다. 가뜩이나 땀도 많은데 냉방 장치를 끈 조리대 앞에서 12시간 넘게 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땀과 열로 범벅이 된 엄마는 피부가 제대로 숨 쉬지 못해 여름 내내 부어있었다. 그리곤 "얼른 다른 일 찾아봐야지. 후앙만 제대로 돌았어도"라며 툴툴댔는데, '흐앙'도 '우앙'도 아닌 저 의뭉스러운 두 음절은 아예 통역을 향한 전투력마저 상실시켰다.


 스무 번은 더 넘겼을 스무고개 후에 기어코 찾은 '후앙'의 정체는 '환풍기'였다. 어원은 잘 모르겠으나 분명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용하는 용어일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언어에는 그 사람의 삶이 녹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엄마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흡사 사용 설명서와 같다는 것을 체감하던 때였다. 누구나 알지만 대부분 한 번 펼쳐볼 일 없는, 외로운 종이 쪼가리.


 "뭐라는 거야."

 "엄마, 다시 정확하게 천천히 말해 봐요. 나중에 치매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세 살배기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아직 돼본 적도 없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녀의 다음 문장을 기다렸다. 이후 시간이 꽤 걸려도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는 엄마를 보며 이대로라면 '엄마어' 통역은 더 이상 필요 없겠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걱정을 빙자해 엄마에게 건넨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치졸한 방식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은 보험 때문이었다. 돈을 쓸 줄도 벌 줄도 모르는 부모님은 일평생 경제관념이 부족했다. 그래서 쓸데없는 보험료를 줄이려는 취지로 부모님 보험 관리를 자처했다. 중복 보장을 줄이고, 버리기 아까운 상품은 최소 금액으로 유지하고, 갱신형을 비갱신형으로 바꾸며 나름 흡족한 보험 설계를 하고 있는데, 아빠와 달리 엄마만 가입한 어떤 상품에 눈이 갔다. 치매보험이었다.


 10년 만기 해지 시 넣은 만큼은 돌려주는 보장형 상품이었다. 하지만 형편에 맞춰 납입한 금액만큼 보장도 쥐똥만 했는데, 경도 치매 진단금 고작 150만 원에 중증 치매 진단을 받아야만 겨우 매달 50만 원씩 지급됐다. 10년 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그다지 메리트 있는 상품은 아니라고 생각해 엄마에게 해지할 것을 권유했다. "몰라, 몰라!" 하고 고집을 피우던 엄마는 오랜 망설임 끝에 진심을 토해냈다.



"너네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 그래."


 식당을, 화장실을, 공사장을 전전하던 엄마는 30여 년의 사회생활만큼 눈치가 빨랐다. "엄마, 다시 정확하게 천천히 말해 봐요"와 "나중에 치매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사이에 "미안하지만 난 간병할 자신도 생각도 없어"라는 블랙홀을 금세 읽어낸 것이다. 엄마는, 걱정하는 척 자신의 안위를 염두에 두었던 나의 치졸함을 곧장 당신의 무력함으로 치환해버렸다.


 진심을 들킨 수치심 때문이었는지, 자식 눈치 보는 부모를 향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통화 너머까지 번졌다. 보험을 유지하기로 하고 서로 시답잖은 안부를 물은 후 통화를 끊었다. 이내 숨소리라도 빠져나가면 금방이라도 울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 꾸역꾸역 목구멍에 무어라도 쑤셔 넣어야만 할 것 같았다. 치열했던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무시한 나는, 미안함을 그 어떤 방식으로든 밖으로 드러낼 자격도 없었다.


 후다닥 냉동고에 수감되어 있던 대갱이를 꺼냈다. 녀석의 끄트머리에 달려 있었을 대가리를 떠올리다가 그 조악한 이빨이 생각나 얼른 고개를 돌렸다. 딱딱한 식감이 불편하다고 괜히 물에 불려 먹으면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나니, 식칼 뒷머리로 부드러워질 때까지 콩콩 쳐서 꼭꼭 씹어 먹으라던 엄마의 조언을 받을어, 그대로 해 먹었다.


 대갱이가 바싹 마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을 엄마의 시간이 너무 귀해서.

 그 흉악한 생김새에 깜짝 놀랄 딸이 걱정돼 하나하나 대차게 대가리를 쳐냈을 엄마가 고마워서.

 언젠가 투박한 대갱이만큼 투박한 당신의 사투리가 그리울까 봐.


 콩콩.

 꼭꼭.

 꿀꺽.


 녀석, 참 꼬숩다.







브런치북 <글러 먹긴 했지만 말아먹진 않아서> 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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