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중학생을 위한 책쓰기 교실 시작하기
2023년 2월 교직을 마감했다. 이후로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들과도 드나듦의 확인 정도의 단순한 대화로 6개월을 살았다. 언어가 단순해지니 사고도 단순해졌다.
도통 책과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이 흘렀다. 말로 먹고살았는데 거짓말처럼 말이 지워지는 듯한 시간이었다. 침묵이 편했다. 단어 하나만 내어도, 끄덕임이나 눈짓으로도 일상의 대화가 가능한, 그야말로 묵언 수행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2학기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책 쓰기 수업을 시작하겠다고 신청했다. 국어 교사로 교직 말고는 글쓰기 지도와 관련된 별도의 자격증이 없었는데, 토요일 오전 시간을 온통 투자해서 책쓰기 지도자과정을 들었던 부천시의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길고 지루하며 촘촘한, 나름 힘든 강의 일정이었는데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 크게 한몫했던 것 같았다.
무기력했던 긴 휴식을 생각하면 수업에 앞선 긴장은 어쩌면 당연했다. 우선 목소리를 찾아야 했다. 한때 '솔' 톤의 음색, 매끄럽고 막힘없는 말솜씨로 아이들을 사로잡았던 기억을 소환했지만, 바로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잠을 부르는 차분하고 낮은 소리, 기억은 쇠퇴해 쓰던 단어도 즉각 떠오르지 않았고, 말을 이어가다가 엉뚱하게 얼버무리거나 멈추거나 하는 순간도 많았기에.
게다가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은 극복한 듯 보였던 소심한 성격은 쉬는 동안 빠르게 제자리를 찾기도 했다. 강의 시작을 앞두고 악몽도 종종 꿨다. 수업 중 하던 말을 잊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어수선해진 교실에서 아이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마주하며 잠에서 깨곤 했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강의를 한 주 앞두고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담당자에게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도 내가 당황스러웠는데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포기를 선언하기 직전,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용기를 줘 보자고 마음을 다스렸다.
일단 자아를 분리했다. 피하고 싶은 자아와 실행해야 하는 자아를 뚝 떼어 보았다. 두 자아를 분리하니 닥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사실상 못할 것 없는 수업이었다.
‘그동안 잘해 왔잖아. 교직 경험이 얼만데...
중학생 수업을 왜 걱정하는데.’
마치 서로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실행하는 자아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책 쓰기 강의에 재능이 있는지는 부딪쳐 보면 알 거고, 수업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던 대로 차근차근 준비하면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거라고. 불쾌한 꿈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꿈은 개꿈’이라며 무시하는 전략에, 매일의 운세에도 마음을 기대보았다. 걱정이 앞서면 결과는 의외로 순탄하게 풀리더라는 자기 암시적 통계까지 적용했다.
여러 노력 끝에 나쁜 생각을 겨우 수습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마지막 무기는 진심밖에 없다는, 고전적이고 나이에 걸맞은 마음까지 장착했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아이들도 잘 따라와 줄 거라는 믿음은 나를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수업인 줄 알고 간 첫날, 책 쓰기 반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과정을 소개하라는 학교 측 담당 교사의 말에 다섯 학급을 돌았다. 그리고 책 쓰기 과정을 소개했다.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말이 튀어나왔다. 다섯 학급, 다섯 번의 반복과 변주, 5분 정도의 수업 소개는 순탄했다. 담당 교사가 옆에 있기 때문인지, 새로운 어른에 대한 예의 차원인지, 다행히 아이들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과정에 참여하겠다고 스스로 손을 드는 학생도 여럿 보였다. 그간의 ‘짬밥’으로 가늠해 보아도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 의사 표현은 꽤 고무적이라고 판단했다.
모집이 끝나고 교과 교실로 돌아와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학기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결과물을 대강 훑어봤다. 책 제목에 부합하는 공통된 주제는 아니었지만, 아이들 나름의 개성이 보였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솜씨가 있어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한 학기의 글이 모여 완성된 책, 아이들의 책은 또 다른 아이들의 참여를 이끄는 힘이 있었다.
24명의 아이들, 48개의 눈동자, 실로 오랜만의 눈 맞춤이었다. 학급의 절반이 시작부터 고개를 숙이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고등학교의 수업에서는 볼 수 없는 맑고 초롱초롱한 긴장감이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모든 고민은 사라졌다. 시작은 괜찮았다. 마지막까지 이 분위기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긍정적 마무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만들어 가는 책 쓰기를 위한 수업은 처음이었다. 총 17차시, 책 쓰기와 관련된 책과 영상 등 이것저것을 참고해서 지도안과 프레젠테이션을 완성했다. 대상에 따라 적절한 변화도 가능하도록 이론과 사례를 다양화했다. 그간의 복잡하고 낯 뜨거운 고민이 무색하게 준비 과정은 순조로웠다.
모두의 주제를 모으기 위해서는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꼭 생각해서 와야 한다고 안내했다. 아이들이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은 글을 잘 쓰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무엇을 쓸지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서는 안도의 한숨도 새어 나왔다.
글이 아니면 그림도 괜찮고, 조금 더 세분화하면 4컷, 8컷으로 글과 그림을 나누어 친구와 협업해도 된다는 말에 서로 짝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며 무언의 손길을 내미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글이 아니어도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재료는 많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 같다.
한 주가 지났다. 수업 첫 시간, 책 쓰기를 향해 모인 아이들은 대체로 침묵했다. 톡 건드리면 뿜어 나올 것 같은 무한의 언어를 수줍은 침묵 속에 감췄다. 그럼에도 무수한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첫 실만 잘 뽑아 올리면 술술 딸려 나올 언어들이 삐죽삐죽 솟아 오르려 아우성 치는 침묵이었다.
<고삐>를 쓴 윤정모 작가는 인터뷰에서, 중학교 1학년 선생은 그에게 시나리오를 쓰라고 권했고, 고등학교 선생은 소설을 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접하며 교사들의 격려와 칭찬이 현장을 깊게 파고드는 글쓰기의 세계로 작가를 이끈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특출(特出) 난 재능을 가진 단 한 명이 아닌, 가장 보통의 중학생들의 책 쓰기, 저자 되기는 그래서 더 엄청난 도전이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시작이 용기를 부르고 격려가 부정적 마음을 다스리는 것처럼 아이들의 소중한 순간이 소중한 의미로 남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서로에게 긍정의 메시지가 통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