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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r 20. 2024

+ 끝까지 읽히는 글

19화 감정 외부의 것을 채우려면?

- 끝까지 읽히는 글은 어떤 글일까?


읽는 이의 관심과 상관없이 무작정 자기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건 초등학생이 쓴 일기와 다름없다. 소통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하라.


매 순간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는 사람은 잠깐은 호의로 들어줄 수 있지만 오래 들으면 힘들고 지루하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글은 자칫 상대를 피곤하게 할 수 있다. 사소한 일상, 사소한 감정의 분출은 자신의 내면을 상대방이 무조건 수용해 주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출발하며 마음 가는 대로 쓰게 되며 지향점을 상실한 글이 되고 만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면 상대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감정을 토로하고 싶다면 감정의 이유나 배경, 정보나 질문을 덧붙인다면 상대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더구나 상대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였다면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글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면 쓸모없는 감정의 분출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은 중학생들의 세 줄 일기의 일부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시작할 때부터 세 줄 일기 쓰기를 권유했다. 형식은 지난 회차에서 안내했던 것처럼 오늘 있었던 안 좋은 일, 오늘 있었던 좋은 일, 내일의 다짐 또는 희망을 각각 한 문장씩 적도록 했다. 일기를 쓰는 회차가 늘며 단순한 일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심상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변화가 보였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에 대해 이어가고자 한다.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 하늘을 쳐다봤다.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눈부셔 카메라에 담았다.(학생 A)
체육시간에 피구를 했다. 남자아이들은 세게 잘 던졌는데 여자 아이들의 공은 그냥 데구르르르 굴러갔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체력의 차이가 있는 걸까? 운동신경의 문제일까?(학생 B)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교무실 쪽에 붙어 있는 칭찬스티커를 보았다. 지난주만 해도 꼴등이었던 우리 반이 어느새 잘하는 반과 비슷해서 놀랐다. 칭찬스티커가 적어 포기할까 했는데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학생 C)


A학생의 일기를 읽으면 옥상이라는 공간, 눈부신 하늘이 만들어내는 느낌이 다가온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쉬는 공간과 그곳에서의 안정감, 하늘을 보며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휴식 같은 시간의 느낌을 표현하는 듯하다.


B학생의 일기는 여학생과 남학생의 체력, 운동신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글이지만 같이 읽고 공감하며 더 깊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C학생의 일기는 학교에서의 일상이 그려지는 듯하다. 시간에 맞춰 이루어지는 수업과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복도를 오가는 학생들, 복잡하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찬 공간이 상상된다. 칭찬스티커를 통해 학급 학생들의 단합과 단결을 유도하는 학교의 방침과 그것에 무심하거나 혹은 열심히 따라가는 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 학생의 글은 모두 감정이 들어있지만 감정의 주변부를 건드린다. 일기지만 에세이로 바꾸면 훌륭한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다. 에세이는 결국 심상을 기술하는 저술 형식이다. 감정의 외부를 건드려서 심상을 끌어내고 흥미로 이끄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에세이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채우는 글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에서 작가의 생각은 아주 작은 부분이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그 작은 부분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해 충분한 자료가 채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생각을 보충하기 위한 자료의 조사가 요구된다. 자료조사 없이 '글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장'이라며 상상한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건드릴 수 없다. 


A학생의 일기에서는 주택의 옥상이라는 공간과 맑은 날의 하늘의 색, 구름의 움직임, 거리감, 미세먼지의 농도 등등의 정보를 파악한다면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는 외부의 자료가 준비된 셈이다.  


B학생의 일기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신체의 변화와 그 시기, 남녀 학생들의 기초 체력의 차이, 꾸준한 운동으로 그 이상을 보여주거나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이나 한계 등에 관한 자료 조사가 뒷받침될 수 있다. 


C학생의 일기에서는 단체, 결속력,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 교사들이 학생들을 다루는 방식, 경쟁심리, 리더의 역할이나 구성원의 특성 등에 관한 자료조사가 필요하다. 


자료에 기반해 알아야 할 팩트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할 일은 자신감 있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는 것뿐이다. 


자료조사의 범위는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할까? 구글,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인 만으로 자료조사를 마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터넷의 정보는 소문이 문자화된 것이다. 서점의 책도 에피소드를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다. 팩트의 파악은 그런 점에서 어렵고 중요하다.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글은 충분하면서도 정확한 자료조사에서 나온다. 


자료의 질과 양, 어느 것을 따지더라도 도서관을 이길만한 것은 없다. 공공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학교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을 적절히 이용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능력치가 상승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자료를 찾는지 문의하면 사서의 능력치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더욱 빨리 얻을 수 있다. 알아야 팩트를 정확히 파악했다면 남은 일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다. 


대상에 대해 어떠한 애정도 느끼지 못한 상태로 글을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자료조사를 통해 관심이나 애정을 끌 만한 부분을 찾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애정이 생기지 않을 때는 지루하고 알 수 없고 하기 싫고 재미없는지를 쓰는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부분을 있는 힘껏 어필할 필요는 없다. 이때,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밟아 온 과정을 순서대로 생각하고 써가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잘 마치게 되었을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탄생한다. 과정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지, 공감할지는 글쓴이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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